크게 의미 부여하지 맙시다.
여름휴가차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된 에이미 선생님의 부탁으로 대체수업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 앞에 서는 게 오랜만이었다.
꽤 규모 있는 유치원의 7세 방과 후 수업 40분씩 두 번이었다. ‘꽤 규모 있는 유치원’이란 말은 아이들이 바글바글한다는 뜻이다. 요즘 애가 없어 문을 닫는 어린이집이 늘고 있는데 여기는 26명 친구가 교실을 꽉 채워 앉아있었다. 보기 좋았다.
땜빵은 부담이 없다.
대체선생님에게 거는 기대는 크지 않다. 그 시간만 별 탈 없이 메꿔주면 된다. 진도에 구애받지 말고, 되는 대로, 하는 만큼만 하라고 하시니 얼씨구나다. 계속 봐야 하는 사이가 아니니까 가볍게 갔다 오면 된다. 치고 빠지면 끝이다. 단지 아이들 수업을 쉰 지 반년 정도 되어 감이 떨어졌을까 봐 그게 염려되었을 뿐이었다.
가기 전에 아이들이 낯선 선생님을 보고 당황해하지는 않을까 해서 소개 멘트를 간단히 생각해봤다.
“에이미쌤이 너희들 너무 잘한다고 칭찬해서, 잘하는 친구 찾으러 왔지.”
나름 시나리오를 짰다. 아이들의 예상 질문에 대답도 준비했다.
그런데 완전히 빗겨나갔다.
“선생님 바뀌었네.”
처음 아이들이 나를 보고 툭 내뱉는다. 예상했던 질문지에는 없는 말이었다. 에이미 선생님이 어디 갔는지, 왜 못 왔는지 답변을 준비했는데 아이들은 그런 건 일도 묻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이 교실에 있는 상황을 보고, 나름 결론을 짓고, 들으라는 식으로 혼잣말한 것이었다. 에이미 선생님을 못 보게 돼서 아쉽다는 마음이 담겨 있지도 않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어 보였다.
애들은 애들이다. 애들은 너무나도 현재에 충실하다. 여러 번 반복해도 그다지 지루해하지 않을뿐더러 새로운 것에도 즐겁게 반응한다. 그날 아이들은 에이미 선생님에 관한 질문 대신 처음 보는 내게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자기가 뭘 좋아하고, 어디가 아프고, 이가 몇 개 흔들리는지 다 털어놓았다.
다음날이면 나도 잊혀지겠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 아이들의 머릿속에 남아있지는 않을 거다. 돌아온 에이미 선생님을 반가이 맞이하며 폭 안기는 아이도 있을 테고.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픈 건 내 욕심일 뿐이다.
내가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착각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그만두면 회사가 망할 거 같아 애사심에 사직서를 꺼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지극히 내 중심으로 굴러가던 세상이었다. 근거 없이 과대하게 포장된 자신감은 슬슬 바람이 빠지더니 어느새 납작해졌다. 실제 현실에서는 내가 빠져도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더 잘 지낸다. 내가 없는 게 더 좋아 보일 때면 서글퍼지기도 했다.
'크게 의미 부여하지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저 내 자리에서 내 크기만큼의 역할이나마 감당하면 좋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