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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미 May 23. 2024

버리는 사람 따로, 줍는 사람 따로

당근마켓과 친구먹은 이유


내 핸드폰 기종은 Jean이다. 청바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나름 갤럭시다. 부모님이 아이에게 첫 핸드폰으로 부담 없이 사줄 만한 보급형 모델이다. 그 청바지 핸드폰을 나는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2020년 3월에 사서 지금까지 사용 중이다. 고장 날 때까지 쓸 참이다. 그런데도 어찌나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고장이 안 난다. 뛰어난 방수기능으로 한국산 핸드폰이 눈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 신빙성이 실린다.


기업으로서는 제품을 너무 튼튼하게 만들어도 골치가 아플 수 있다. 시장에 나처럼 소비자가 아닌 가끔 AS를 요청하는 '사용자'만 있다면 판매정체기가 올 테니까. 다행히 시장이 굴러가는 걸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소비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신문물을 가장 먼저 경험하고자 하는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이들. 새로운 기종이 나올 때마다 예약을 걸고, 한정판매 상품을 사고자 줄을 서고, 오픈런으로 새벽부터 대기하는 무리이다.     

 

또 다른 소비자, '변심 고객'이 있다. 금사빠처럼 물건을 구매했다가도 금세 싫증이 나서 다른데 기웃거리는 사람이다. 이들은 마케팅의 주요 타깃이 된다. 들쑥날쑥 왔다 갔다 하는 갈대 구매자는 쿡 찌르기만 해도 쉽게 넘어오곤 한다.     


변심고객이 버린 물건이 거래되는 곳, 당근마켓

거기서 나는 줍줍하는 중이다. 한바탕 유명세가 끝나고, 관심이 점차 줄고, 별 볼 일 없어 처분할 시점에 나는 슬슬 움직인다. 평소 눈치가 없고 뒷북치는 성격이 소비행태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당근마켓에는 단순 변심으로 뜯지도 않은 물건, 쓸 때를 놓친 철 지난 재고 물건, 얼마 쓰지도 못하고 물려버린 물건이 널려있다. 한창 쓸만한 물건으로 가득하다. 


종류 가리지 않고, 필요 한대로 담았다. 시장가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 가격이 소비를 부추겼다.  

올리브유, 굴 소스, 서리태 콩, 두유, 메밀국수, 커피 등 먹거리부터

옷 다수, 가방, 등산화, 운동화, 발열내의, 패딩, 모자 등 의류는 기본이고

마사지팩, 보습크림, 클렌징크림, 헤어 팩, 보디 크림, 쿠션팩트

에어프라이어, 공기청정기, 건반, 독서대, 우산, 선반, 서랍장, 이동식 욕조

컵, 거름망, 채칼, 조리개, 커피포트, 프라이팬, 밀폐용기

스트레칭 밴드, 요가 매트까지 

읽는데도 숨이 찬다.     


이걸 다 당근마켓에서? 구매 목록을 확인하는 데 한참이 걸린다. 이렇게나 많이 샀나 싶다. 별로 쓴 것도 없는듯한데 와장창 나온 카드 명세서를 받아 든 기분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후회 말고, 뿌듯함을 느낀다는 거다. 대다수가 새 상품급으로 구했기 때문이다. 만족도 200%이다.      


당근마켓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등급을 나눠보면 대게 이렇다. 

새 제품--- 철 지난 새 제품 ---  미개봉/ 미사용품 --- 한 두어 번 쓴 물건 --- 사용감 많은 물건         


4단계 등급부터 신중한 소비자라면 상품을 꼼꼼히 살펴보려 할거다. 본다고 해서 ‘사용감’ 이 금방 가려지지는 않는다. 손때가 버젓이 보이는 게 아니니까. 누구 손을 거쳤는지, 어디에서 얼마만큼 썼는지, 얼마나 묵히고, 방치되었는지 물건만으로는 모른다. 물건 감정사가 돋보기를 갖다 대며 본다 해서 연식 파악이 될까? 자동차는 주행거리를 확인하는 계기판이라도 달려 있지만 다른 것들은 알 도리가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손때 감식을 의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생각만 해도 바보 같다. 장난이 심하다며 한소리 듣겠지.

사용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면 애초에 당근마켓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거다. 그러니 괜히 시간 낭비 말고 ‘한 번 쓰고 보관했어요. 별로 안 썼어요.’라는 판매자의 말을 그러겠거니 믿고, 사는 게 낫다. 

     



한 번 구매한 물건을 마르고 닳도록 쓰는 걸 보면서 내가 수더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취향없음'이 주범이었다. 확실한 취향, 선호하는 바가 딱히 없는 것이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사람이라 물건도 기본기만 갖췄다면 충분하다. 부가 기능, 추가 요구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다. 사용감에 예민하게 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는 그저 OO에 쓸 물건이 필요할 뿐이다. 이러한 생각 덕분에 당근마켓과 나는 장단이 잘 맞는다. 홈플러스 말고 당근마켓에서 장보기도 한다. 거기엔 쓸만한 물건이 넘쳐나고, 브랜드 따질 것 없이 필요한 것을 할인된 가격으로 사서 쓰면 된다. 그래서 나는 당근 짝꿍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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