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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미 May 16. 2024

이때가 그때인가?

먼저 차지하면 임자

'4월 30일까지'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이 다가온다. 종소세 신고는 5월이다. 세무사를 이용할 경우 4월 30일까지 접수 신청하면 얼리버드 할인이 만 원 적용된다. 세금 신고 업무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분산해 보려는 뜻이겠지. 올해 세무법인에서 보낸 안내 문자를 보니 고새 수수료가 올랐다. 할인받아도 그게 그거다. 다른 세무사를 알아봐야 하나 하는데 벌써 29일이다. 

     

무슨 일이건 ‘적기’가 있다. 어디를 가나 ‘타이밍’이 중요하다. 직장인에게 업무 보고 기한이 있고, 작가에게는 원고를 넘길 마감일이 있다. 200mL 우유팩에 적힌 날짜가 지났다면 버리는게 낫다. 해 뜨는 시각을 확인해야 제대로 된 일출을 맞이하고, 배구 경기에서는 타이밍을 노린 시간차 공격으로 점수를 얻는다. 고백 타이밍이 맞지 않아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한 남자 사람 여자 사람도 적잖이 많다. 한 시간을 앉아 있는데 책 한 장이 넘어가지 않는다면? ‘공부도 때가 있음’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당근마켓에서도 구매할 때가 있다. 

평상시 당근마켓 속도는 시속 15km 정도다. 산책 삼아 따릉이(서울공공자전거)를 타고 설렁설렁 가는 기분이이다. 쇼호스트가 매진 임박 나팔을 불며 몰아대는 말을 타고 있는 듯한 홈쇼핑에 비하면 긴장감이 한참 떨어진다.


당근마켓에 물건이 새로 들어오면 차곡차곡 위로 쌓인다. 끌어올린 물건이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판매 상품만 보일 뿐이지 투명 인간 손님은 무슨 물건을 고르는지 알 길이 없다. 




알짜물건이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기서 알짜물건이란 당근 사전에는 없지만 ‘이사 등 긴급 처분의 목적으로 헐값에 내놓은 새 상품급 물건’이라고 나름 정의한다. 알짜물건의 등장과 동시에 눈독을 들이는 구매 희망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채팅방 수는 점점 올라간다. 사람들이 몰린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속도전이다. 앞뒤 따지지 않고 바로 낚아채야 한다. 한순간에 내 것인지 네 것인지가 결정된다. 피케팅(피가 튈 만큼 치열한 티케팅)을 방불케 하는 난투극을 벌어지고, ‘판매중’에서 ‘예약중’으로 신호가 바뀐다. 결과가 나왔다. 나와 예약했든지 아무개와 예약했든지 둘 중 하나다.


알짜 매물일수록 구매자를 지목하는 권한은 판매자에게 있다. 한 사람을 선택해서 예약을 걸기 전까지 공개 입찰이 가능하다. 보통은 ‘선착순 판매’를 따르는 게 관행이다. 그래서 선방을 날리는 게 유리하다. 간혹가다 앞사람이 변심으로 구매를 포기해서 불발되거나 거래 시간이나 장소 조율이 어려워지면 차점자인 다음 사람에게 차례가 오기도 한다.      


좋은 물건을 건지려면 손품을 팔아야 한다. 손과 눈을 놀리지 말고 부지런히 접속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필요한 물건을 키워드로 등록해 두면 새 글 알람이 뜬다. 그때 들어가도 늦지 않다. 굳이 실시간으로 들락거릴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사람의 물욕이 끝도 없다. 자꾸만 기웃거리고 엄지운동으로 새로 고침을 반복한다. 장보기 목록에 없던 물건을 ‘괜찮다’는 이유로 껴 넣는다. ‘언젠가 쓸 거야.’라는 꼬리표 달고 집에다 끌어다 놓는다. 



   

그날도 당근마켓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에 눈 떠서 물 한 잔 마시고, 끔벅거리는 눈으로 당근 그림을 꾹 눌렀다. 나이키 니트 조직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가격은 5,000원. 깨끗하고, 단조롭지 않은 색 구성도 맘에 든다. 근데 이상하다. 초야에 묻혀 지낸 듯 찾는 이가 없다. 조회, 관심 수가 높지 않았다. 나만 좋아 보이나? ‘나이키’라는 브랜드만으로도 알람을 걸어두고, 꽤 많은 이들이 볼법한데 그렇지 않다고? 벌써 팔리고 남았을 텐데. 찜찜하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근거 없는 의심만 쌓였다. 며칠을 고민했다. 그사이 혹시 팔렸나 하는 불안감에 멀리 가지도 못했다. 미련이 남아 보고, 또 보고, 다시 한번 보고. 흠을 잡아서 사지 않으려 했는데 볼수록 맘에 든다. 내 눈에는 예쁜데……. 내 눈에 예쁘면 그만이지. ‘사야만 하는 이유’가 떠올랐다. 따뜻한 봄날에 올림픽 공원을 거닐만한 가벼운 신발이 필요했었지. 


나름 과감함이 필요했다. 따지고 보면 큰돈도 아닌데 판돈을 거는 것처럼 베팅하듯 구매 의사를 밝혔다. 물은 엎질러졌다. 거래 장소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핑계 대기도 좋았다. 판매자는 헬리오시티에 계신 분이다. 요즘 대세인 비대면, 일명 문고리 거래를 한단다. 종이 가방이 문고리에 얌전히 걸려있었다. 떨리는 맘으로 살며시 운동화를 꺼냈다. 더도 덜도 아닌 사진으로 본 그대로였다. 깃털처럼 가볍고, 때 탐도 없고, 니트 조직감도 짱짱하니 살아있다. 맘에 쏙 들었다. 긴가민가 의심은 괜한 걱정이었다. 눈으로 보고 직접 확인하니 안심이 되었다. 볕 좋은 날에 신고 나갈 생각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먼저 차지하면 임자

당근마켓에서 이 말이 통한다.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으려면 우선 솔직해야 한다. 갖고 싶은 마음을 표현해야 가능성이 열린다. 당근마켓에서만 그런 것은 아닐거다.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게 있어도 말 못 하고, 안 그런 척 자신을 속이고, 숨겨버려서 기회를 잃어버린 적이 꽤 있다.  솔직함 못지않게 결단력과 순발력도 필요하다. 이때다 싶으면 뛰어들 수 있어야한다. 뭉그적거리고, 어물쩍 넘기다가는 다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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