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호박전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가신 저희 할머니 댁은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남해입니다.
갈 때마다 늘 양손 두둑이 돌아오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간 할머니 댁에선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아왔어요.
추석에 가면 날이 좋아 밖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밤하늘도 보고 시골길 산책도 합니다.
하루는 든든하게 저녁을 챙겨 먹고 소화시킬 겸 신랑과 산책을 하고 있었어요. 마당이 있는 카페였는데 추석연휴인지라 울타리 문으로 닫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울타리 사이로 아기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데 엄청 울고 있는 겁니다. 빛을 비춰보니 작은 아기고양이가 마당 중간에 앉아 있었어요.
“어머나 세상에! 너무 예쁘다.”
작고 예쁜 치즈냥이었는데 며칠을 굶었는지 배가 홀쭉하더라고요. 그 길로 그 고양이는 저희를 졸졸졸 따라왔고 다음날 차에 태워 저희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시골냥이가 도시냥이가 되었어요.
그때 귀여운 아기 고양이 말고도 데려온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늙은 호박’이에요.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크기도 엄청 큰 늙은 호박입니다. 다듬는 것부터가 일인데, 하루를 희생하면 충분히 다듬을 수 있어요.(웃음)
다듬을 때는 크게 호박죽용(큐브형태), 호박전용(채썰기)으로 다듬어둡니다. 호박이 크니 양도 어마어마하게 나와 냉동실에 보관해 두고 겨우내 먹어요.
늙은 호박전이 익숙한 분도 계시겠지만 아마 처음 들어보신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경상도에서만 먹는 음식이거든요.
이 늙은 호박전을 아직 못 드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한 판 구워 맛 보여 드리고 싶어요. 그 정도로 정말 맛있답니다.
호박의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데 그 맛은 달콤한 향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맛도 달콤해요. 노릇하게 부쳐내면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이 맛있는 늙은 호박전은 가을이 되어야만 먹을 수 있는 별미라 웬만하면 꼭 챙겨 먹어요.
만드실 때 주의점은 호박에 수분이 많기 때문에 부침가루 농도를 잘 맞춰 넣어야 한다는 건데, 처음 만들어 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완전 떡이 되었거든요.(웃음)
정말 이유도 모르겠고 아무리 부쳐도 떡이 되는데 난감하더라고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엄마 찬스!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아? 물을 넣으면 안 되는 거였어??”
호박 자체에 수분이 많기 때문에 물을 넣으면 당연히 질어져 떡이 된다는 겁니다. 진짜 속이 시원하게 풀리더라고요.
부침가루를 넣으면 당연히 물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도 있었어요.
요리엔 당연함이란 건 없나 봅니다.
[부침가루와 튀김가루 차이]
부침가루: 소금, 후추가 조미되어 있는 중력분 밀가루로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돼요.
- 부침가루 대신 밀가루: 밀가루로 대체해 사용할 수 있어요. 다만 밀가루에는 간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추가로 간을 맞춰야 해요.
튀김가루: 부침가루와 마찬가지로 조미가 되어 있어요. 바삭한 튀김옷을 위해 박력분 밀가루에 베이킹소다가 들어가는데 베이킹 소다는 튀김옷이 부푸는 것을 도와줘요.
- 튀김가루 대신 부침가루: 부침가루를 사용해 튀김을 할 수도 있지만, 바삭한 식감이 덜하고 묽다는 점이 있어요. 튀김은 튀김가루가 가장 좋으며, 부침가루로 대체해야 할 경우 반죽에 얼음을 한 두 개 넣어 바삭해질 수 있도록 해요.
경상도 사람만 몰래 먹지 말고
모두 함께 먹고 싶은 늙은 호박전.
레시피 남겨드립니다.
잠시 들린 야채가게에 늙은 호박이 보이면 꼭 사 와요.
작은 크기도 많으니 손질도 금방 할 수 있어요.
달콤한 호박향이 손에서부터 집안으로 퍼집니다.
노릇하게 구워낸 호박전은 향을 먹듯
아주 달콤하고 맛있어요.
여러분들의 식탁에도 달콤한 호박전 한 판이
올라가길 바라요.
• 재료
늙은 호박채 2 집게
설탕 1T
소금 한 꼬집
부침가루
• 레시피
1. 재료를 믹싱볼에 담아 부침가루를 넣어줍니다
2. 빡빡하거나 걸쭉한 농도로 맞춰주세요.
3. 기름 두른 팬에 앞뒤 노릇하게 구워줍니다.
• tip
- 호박에 수분이 있기 때문에 물은 넣지 않아요.
- 충분히 걸쭉한 농도로 되어야 단단하게 구울 수 있어요.
- 호박채는 한 번에 만든 뒤 냉동보관해 사용하면 편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