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지능 검사다. 우리가 살면서 보는 시험은 모두 우리의 지능을 테스트하고 평가한다. 오죽하면 IQ도 '지능 지수(intelligence quotient)'지, 기억력 지수가 아니다. 지능은 기억력보다 더 넓은 범위의 능력을 포함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기억력이 지능의 하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 기억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도 이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피해왔다. 이제는 그 질문에 답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까지 공부한 기억의 메커니즘은 어떻게 기억이 저장되고 불러오는 지에 대한 내용이었지, 그것이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고, 생물학으로 다루기에는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 자체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기억력이, 혹은 더 나아가 지능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있다면 우리의 노력은 의미가 있는가?
일반적으로 기억 중에서 재능의 영역이라고 흔히 말하는 영역은 장기 기억이 아니다. 단기 기억 중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 바로 그 재능의 영역에 주로 속한다. 작업 기억은 우리가 들어오는 정보를 잠시 잡아두는 기억이다. 넬슨 코완(Nelson Cowan)에 따르면 작업 기억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장기 기억을 불러와 잠시 잡아두는 종류다. 이 경우는 기억 용량이 정해져있지 않은 장기 기억에서 정보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허용 한도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재능이라고 하는 부분은 보통 두 번째 종류인데,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하여 관찰할 때의 기억이다. 이 기억은 용량이 정해져있고, 그 용량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알려져있다. 과거에 매직 넘버 7이라는 표현으로 이 용량을 표현하곤 했는데, 보통 사람이 7가지 정도만을 잠시 잡아둘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표현이 과학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작업 기억은 그만큼 한정적인 기억이다. 작업 기억 차이의 50% 정도가 유전적이라는 실험 결과가 있다. 그 정도로 작업 기억은 재능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기억이다. 이런 데이터를 보면, 기억력은 정말 재능인가 싶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억은 장기 기억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 장기 기억에 관해서는 그 용량이 정해져있지 않다. 우리가 죽기 전까지 써도 뇌를 다 사용하지 못 한다는 말처럼, 정말 죽을 때까지 장기 기억을 계속 쌓아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억을 쌓는 것은 앞선 글들에서 말한 것처럼 반복을 통한 시냅스의 패턴 강화다. 우리가 노력할수록 얼마든지 장기 기억을 쌓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장기 기억에서도 그 쌓이는 정도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느릴 수 있다. 그러나 장기 기억 능력이 결국 지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장기 기억이 잘 쌓이지 않아도 그만큼 역사나 지리 쪽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을 보라. 이들 중 암기력이 특출나게 좋아진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종합적인 학문에서는 오히려 일반인보다 떨어진다. 만약 장기 기억이 순수하게 재능으로 결정되는 영역이라면, 이런 사람들이 더 뛰어난 성과를 얻어야할 것이다.
지능이 얼마나 유전적으로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지능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다 밝혀내지 못 한 만큼 관련된 정도를 평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2017년 데이터로도 부모의 유전자 데이터로는 아직 자식의 지능 10%만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나머지 90% 중 얼마가 재능일지, 노력일지는 밝혀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 결과를 비관적으로 예측하는 것보단, 스스로의 두뇌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