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가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알고리즘에 속박되어 있는지 보라
자신의 인간다움이 남아있는지도 살펴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계속 줄고 있다
은밀히 선택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알고리즘에 포획되었다
중독의 역사를 기억하자
술, 마약 그리고 이제 우리는 IT에 중독되었다
환상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너무 깊게 중독되었다
우리는 지금 획일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획일화란 규격화, 정형화, 비개성화를 의미하며 개인의 독특한 성격이 제거된 상태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지키면서 홀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은 면에서 획일적인 삶을 살게 된다. 사회 구성원으로써 규칙을 지켜야 하고 통상적으로 서로 용인되는 선에서 소통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 받는다.
최근 인공지능, 빅데이터, 초고속통신 등 우리가 노출된 첨단 기술 환경은 과거 어느 시기의 문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당히 급진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환경은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획일성을 강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개성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개인은 그걸 자각하기 힘들다. 얼마나 심각하게 그런 급진적으로 변화된 첨단 기술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지 자각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들의 획일화, 무개성(無個性) 혹은 몰개성(沒個性)은 가속화되어 왔다.
1년 365일 내내 우리는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다양한 정보에 노출된다. 그렇게 우리는 외부 입력에 끊임없이 영향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입력에 따라서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 내린 의사 결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결정이 매일 우리 자신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휴대폰에 수시로 뜨는 팝업 정보에 따라서 구매를 하며 TV 홈쇼핑에서 24시간 송출되는 쇼핑 정보에 설득되어 물건을 주문한다. 이런 종류의 선택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런 정보가 여러 매체를 경유하여 우리를 먼저 찾아 온 것이다. 최종 선택은 우리가 했지만 사실은 선택하도록 조정당한 것이다.
특정 정보에 대한 반복적인 노출은 우리로 하여금 그 정보에 대하여 익숙하게 느끼게 한다. 결과적으로 그 정보에 공감하게 되고 그 정보에 따라서 생각하고 말하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특정 정보에 대한 노출이 그것에 대한 익숙함을 강화한다는 것은 언어의 학습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한 언어를 잘 하려면 그 언어에 대한 노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린아이들이 새로운 언어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 해당 언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어른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성인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면 일과 병행하던지 아니면 학습 과정을 통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배운다고 하더라도 절대적 한계가 존재한다. 잘 해야 하루 2~3시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루에 최대 3시간 동안 해당 언어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 외국 생활을 하더라도 해당 언어에 완벽하게 노출되기 보다는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경우가 많고 따라서 현지 언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국에서 20년을 살아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들이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해당 언어에 실질적으로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미취학아동이나 초등생들이 이민을 가거나 어학 연수를 가면 상당히 빠른 시간에 현지 언어를 익힌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이 접근하는 정보의 양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시간 동안 해당 언어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원어민 아이들과 공부하고 수업 후에는 현지 아이들과 놀아야 하고 집에 오면 해당 언어로 방송되는 만화를 봐야 한다. 언어에 노출 되는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고 그에 준하여 언어 능력은 빠르게 올라가게 된다. 언어에 대한 비자발적 노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당 언어에 대한 노출 시간이 길면 그 언어에 빨리 익숙해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끊임없는 외부의 입력은 우리로 하여금 그 입력에 따라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속성을 갖는다.
정보(외부의 입력)에 노출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언어 습득 과정에 대하여 설명을 했는데, 결국 노출이라는 동일한 메커니즘은 언어가 아니라 정보(외부로부터의 다양한 입력)에 대한 노출에서도 같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다양한 정보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다 보면 그에 익숙해지고 사고 패턴도 그에 준하여 프로그램되기도 한다. 우리 뇌는 반복적으로 노출된 정보에 따라서 일부 프로그램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Internet이나 TV를 통하여 보게 되는 뉴스와 다양한 매체로부터 송출되는 영상, 모니터 화면의 여기 저기에서 튀어 나오는 각종 광고, 시도 때도 없이 문자와 카톡으로 전송되는 다양한 ‘정보’의 형태를 한 원하지 않았던 스팸성 입력, 등에 우리의 선택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아는 것만을 가르칠 수 있고 가지고 있는 것만을 줄 수 있다.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도 없고, 없는 것을 줄 수도 없지 않은가?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주 인식하게 되고 빈번히 접하여 뇌리에 박힌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고 그에 준하여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미 꽤 오랜 전부터 상당히 강력한 알고리즘의 암묵적 명령에 따라서 우리의 '선택'을 매일 매일 하면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살고 있다. 아닌 것 같은가? 당신이 가장 최근에 한 결정들 몇 가지를 떠올려 봐라. 가장 최근에 구입한 물건 한 두 가지를 생각해 봐라. 왜 그걸 구매하기로 결정했는지 말이다. 당신의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을 뒤에서 나도 모르게 유도한 시스템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동화된 시스템 혹은 인공 지능화된 사회의 배터리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대부분의 급여 생활자들은 본질적으로 기업이나 국가의 배터리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에너지가 소모될 때까지 힘을 기울여 경제 활동을 하다가 완전히 소모되어 재활용이 불가하면 폐기가 되는 배터리 말이다. 너무 가혹하고 끔찍하며 불쾌한 은유지만 배터리가 맞긴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실제로 인간은 에너지 덩어리다. 인간의 에너지는 정신이나 氣 혹은 靈魂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질적 배터리를 상상해 보라. 그 형태가 떠오를 것이다. 원통형일 수도 있고 직사각형일 수도 있고, 작은 동전 만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형태적 배터리다. 그런데 그 속에 있는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 역시 몸 속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있고 그걸 통하여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다. 최근에 생긴 중대한 변화는 과거엔 그 에너지를 좀 더 인간 중심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산업화와 자동화 그리고 특히 고도로 발전된 정보 사회가 되면서 그 에너지를 비인간적인 형태로 소모하는 비중이 더 커진 것이다. 비인간적이라고 한 것은 우리 인간이 에너지를 주로 물질의 생산 활동에만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화 그리고 그에 따른 대량 생산 사회가 되면서 생산의 비중이 높아졌고 따라서 인간은 에너지를 거기에 쓸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 과정속에서 인간은 개성을 잃고 나날이 물질에만 치중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정치 체제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자본주의 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사회가 공산 사회라고 한다. 오히려 자본주의 보다 더 부패한 자본 주의의 성격을 공산 체제에서 자주 발견하기도 하니 말이다.
갈수록 인간성이 메마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조직 생활을 하는 직장인 이라면 그 조직 분위기의 변화를 보면 그런 현상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거는 옳고 지금은 그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지금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 후 집들이가 없어진지는 거의 10년 ~ 20년은 된 것 같다. 2000년도 무렵만 해도 결혼하면 집들이는 대부분 했었다. 다시 말하지만 집들이를 하던 과거가 옳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간의 접촉과 소통이 지금보다 더 긴밀했다는 의미이다. 한국 특유의 회식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왜곡된 형태의 회식 문화도 존재했지만 그와 달리 끈끈한 정으로 진행되었던 회식도 많았다. 아마 최근엔 찾아 보기 힘들 것이다. 이 또한 사람간의 접촉과 소통의 기회였는데 그런 창구가 희귀해 진 것이다. 야유회 문화도 과거와 달리 많이 줄었다. 미세 먼지로 인하여 야유회 갈 상황이 안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주변에서 야유회를 간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역시 과거엔 정기 행사로 진행했을 정도로 야유회라는 소통과 물리적 접촉의 기회가 있었다.
집들이든, 회식이든, 야유회든 이런 것들이 우리들의 인간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비인간적인 대상 말고 인간에 대한 노출 시간을 증가시키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인간간의 노출이 잦으면 좀 더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IT 디톡스’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IT 환경으로부터 발생한 엄청난 독을 빨아 내야 한다. 우리의 뇌는 수많은 정보에 절여져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과거에 TV를 바보상자라고 했던 것 같다. 당시엔 대중을 사로잡는 매체가 라디오, TV, 영화 등 몇 가지 밖에 없었다. 채널도 소수였다. 지금은 매체의 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채널의 수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수 십 수 백개의 바보상자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숏츠’에 빠져서 한 시간 내내 휴대폰을 스크롤 하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나도 즐겨보지만 Youtube에 몰입하여 종일 온갖 가상의 세계를 떠도는 사람도 많다. AR이나 VR만이 가상이 아니다. SNS 속의 남의 인생도 가상이나 다를 바 없다. Youtube 속의 남의 삶 역시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가상에 불과하다. 분명히 좋은 정보도 넘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것보다는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것이 좋은 정보일 가능성은 낮다. 일회성으로 아드레날린을 생성시키고 없어진다.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IT 디톡스에 효과가 있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글쓰기를 최고로 꼽는다. 짧은 삼행시 같은 것 말고 그래도 A4 한 장 정도 길이의 수필이나 일기를 쓰는 것이 가장 부담이 덜 되는 접근일 수 있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간혹 사색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냥 아무 말이나 쓸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은 무개성화 혹은 몰개성화에서 당신을 멀어지게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고 그 과정속에서 자신의 개성 혹은 자신의 가치관을 발견할 가능성이 대폭 증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양한 것에 중독된다. 좋은 의미의 중독도 있다. 글쓰기 중독, 기부 중독, 운동 중독, 등 등 중독이라는 부정적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좋은 행위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독'이 들어간 내용은 좋은 경우가 드물다. 술, 마약, 게임 중독이 그렇다. 모두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곤 하고 많은 사회 문제를 일으켜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게임은 상당 부분 양지로 나와 있기 때문에 제외할 수 있다고 하더라로 나머지 술과 마약은 어떻게 포장해도 예쁘게 표현하기가 곤란하다.
술과 마약은 쉽게 눈에 띄고 그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하는 정보의 중독, 독소를 품은 IT 환경에의 중독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위험성을 잘 알 것이다. 일산화탄소는 무색 무취의 기체로 체내로 들어올 경우 저산소증을 유발시킨다. 이게 일산화 탄소 중독이다. 맞다. 연탄가스 중독이 그것이고 최악의 결과는 사망이다.
우리를 둘러싼 IT 환경도 보이지도 냄새도 나지 않는다. Lan 선은 눈에 보인다고 ? 내가 그런 뜻으로 보이지도 냄새도 나지 않는 다고 한 것이 아님을 알 것으로 믿는다. 아무튼 '독소를 품은 IT 환경'은 일산화탄소로 가득찬 환경과 거의 유사하다. 큰 차이점은 IT 환경은 적당한 선에서 잘 활용하면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재미있게 하며 많은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경제적인 이득까지 얻을 수 있지만, 일산화탄소는 용광로에서 제철할 때 산화물인 철광석에서 산소를 빼앗아 철로 만드는 데 쓰이는 것외에는 용도가 없다.
이렇게 IT 중독은 형태와 강도에 있어서 일산화탄소 중독과 꽤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적당한 선에서 균형을 잡고 IT 환경을 이용해야지 거기에 매몰되어가면 갈수록 일산화탄소 중독과 같은 영향하에 놓이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산화탄소의 유일한 용도는 제철할 때라고 앞서 이야기 했다. 그리고 우리는 획일화, 무개성화 혹은 몰개성화에 절여진 쇳덩이가 아니다. 매일 하루에 한 발짝씩 당신이 노출된 '환상'에서 멀어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