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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동 화백과 다섯명의 여인들
09화
아픈 기억 속의 아름다운 희망
by
Siesta
Dec 19. 2024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이번 월말고사에서는 반에서 일등 했다는 사실을 빨리 말씀드리고 싶어 학교에서 집으로 단숨에 달려왔다.
반은 열려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왜 대문이 열려있지?"
이상한 마음으로 문을 조용히 닫고는 마당으로 들어오는 순간 마당에는 큰언니가 걱정에 가득한 얼굴로 뛰어들어오는 나를 맞이했다.
"언니, 무슨 일이야?
큰언니가 다가와서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배고프지?"
"왜 문이 열려있어? 그리고 엄마는 어디 있고 언니는 이 시간에 왜 집에 있어?"
큰언니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엄마 병원에 입원했어. 얼마나 병원에 계실지 모르니깐 너도 단단히 마음먹고... 일단 손 씻고 밥 먹어. 언니가 밥해놨어."
내가 초등학교 5학년, 그리고 큰언니가 19살, 큰언니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서 두 가지 세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던 시기였다.
보통 때 같으면 예식장의 피아노를 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토요일 오후 언니가 집에 있었다.
동생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 언니..."
큰언니가 동생을 끌어안았다.
" 배고프지? 얼른 들어가서 같이 밥부터 먹자"
이때부터 큰 언니는 어떤 순간에도 절대로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만 대처하는 철인이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공주 교육대학에서 근무하시던 때이다.
아버지는 일이 많으면 교통이 불편했던 그 시절에는 2주마다 집에 오시곤 했다.
집엔 전화기도 없어서 전화를 하려면 개천을 건너서 우체국까지 가서 공중전화를 해야 했던 시절이다.
큰언니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밥을 상위에 차렸다.
부엌엔 아직도 가스난로가 없던 시절이라서 작은 석유난로를 키고 김치찌개를 데워서 상에 올렸다.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큰언니가 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밥을 먹였다.
"나는 밥 안 먹고 계란만 먹을래."
먹는 것을 워낙 싫어하던 동생이 언니가 떠주는 밥과 김치쩨게의 김치 조각이 얹힌 밥숟가락을 떠밀었다.
"그럼 언니가 계란에다가 김치 색깔 조금 섞어서 밥을 그 위에 송송 뿌려서 주면 먹어볼래?"
동생 수현이가 커다란 눈을 깜박깜박 거리며 언니가 말하는 삼색 계란 김치밥을 상상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이때 둘째 언니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 엄마..."
남자 같은 둘째 언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구석에 던지고 우리 셋이 밥을 먹는 것을 놀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마 어디 가고 셋이서 밥 먹어?"
큰언니가 둘째 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 너도 일단 앉아서 밥부터 먹고... 엄마는 좀 시간이 걸려야 집에 오실 거야. 큰고모가 오신다고 했으니깐 일단 그때까지 우리끼리 있으면 돼."
둘째 언니 지현 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 엄마 또 아프구나, 어디 갔어? 노량진 아주머니네 댁으로 갔어?"
큰언니 성미 언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소란 피우지 말고 빨리 앉아서 밥 먹어. 별일 없을 거니깐 우리는 그냥 우리 해야 할 일 하고 있으면 모두 해결될 거야... 밥 먹고 자세한 이야기 할 테니깐 빨리 손 씻고 앉아서 밥 먹어."
" 에이 ... 지금 밥이 넘어가? "
큰언니가 동생을 무릎에서 내리고 일어나 둘째 언니 손을 잡고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앉아서 밥 먹고 막내 수현이 데리고 목욕하러 갔다 와."
큰언니의 조용하고 냉정한 목소리에 둘째 언니도 울음을 멈추고 상에 앉았다.
동생 수현이가 둘째 언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 언니, 울지 마, 내가 언니 무릎에 앉아서 밥 먹을게."
어머니가 가톨릭 정신병원에 입원하시던 3월의 토요일...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청명한 봄날... 그렇게 우리 네 자매의 등교 후의 오후가 시작되었다.
>>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프시거나 우리 네 자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종교화를 많이 그리셨다. 위 그림은 아버지가 그리신 삼위일체 중 하나이다. 이 중 하나는 천주교 절두산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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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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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동 화백과 다섯명의 여인들
07
아버지의 근원과 존재 원리에 대한 집착 -자화상
08
광란과 고독, 희망과 절망의 교차료 1980년대
09
아픈 기억 속의 아름다운 희망
10
흉기 책상에서 서울대 책상으로
11
어머니의 보물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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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나에게 너무나 멀고도 먼 나라가 되어버렸다.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아버지의 그림과 추억들 그리고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 그리고 어머니의 한숨섞인 옛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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