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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동 화백과 다섯명의 여인들
11화
어머니의 보물상자
by
Siesta
Dec 19. 2024
어머니가 또 깊은 우울증에 빠지셔서 창문을 모두 캄캄하게 커튼을 치고 눈에 수건을 덮고 이불에 누워 계셨다.
벌써 이틀째 누룽지 물만 마시시고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누워만 계신다.
갑자기 속삭이시는 소리처럼
"빨리 숨겨, 빨리 다 태워 빨리빨리... "
그렇게 신음 소리처럼 가늘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다가는 또 깊은 잠에 빠지시곤 했다.
큰언니 둘째 언니가 나와 내 동생보다 먼저 학교를 가야 했기 때문에 큰언니가 이미 차려놓은 밥상에서 물에 말아놓은 누룽지와 콩나물을 대충 떠먹고 동생을 불렀다.
먹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동생은 밥상만 보면 엄마 이불 속으로 숨었다.
어머니가 겨우 한숨에 섞여서 나오는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 오늘 학교 가지 마... 엄마랑 집에 있어..."
"그럼 개근상 못 타 엄마..."
내가 말하자 어머니가 물이 가득 고이고 깊고 깊게 파인 눈을 들어 나를 보시며
"개근상이 뭐가 중요해... 집에 엄마랑 있어"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을 엄마 이불 속에서 들쳐내서 물어봤다.
"오늘 학교 가지 말까?"
동생이 함박꽃처럼 웃으면서 어머니 이불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그래그래"
추은 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오는 11월,,, 안방에는 아버지가 놓아주신 작은 연탄난로에 아직도 밤새 타고 남은 연탄의 온기로 방안은 따듯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네 밤을 더 자야지 집으로 오신다.
그것도 날씨가 나빠져서 갑자기 눈이라도 내리면 고속버스가 끊어져서 오실 수 없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시면서 모깃소리같이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윤신아 엄마 좀 일으켜줘..."
어머니는 40킬로 넘는 것이 평생소원이셨던 분이다.
내가 가서 어머니를 이불에서 일으켰다.
동생은 그대로 이불에 누워 있었다.
" 동생 뭐 좀 먹여... 아무것도 안 먹고 누워만 있으면 어떻게 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 당신이 이렇게 이불에 누워 계시면서 동생이 밥 안 먹고 엄마 옆에 누워 있다고 책하면 뭔가..
어째서 어머니는 이렇게 사흘이 멀다 하고 아프신 것일까...
내가 동생에게 다가가서 목에 간지럼을 태웠다.
목에 간지럼이 많았던 내 동생은 킬킬 웃으면서 이불 속에서 도망치다가 결국 이불에서 나왔다.
" 언니가 밀가루 꿀떡해줄까?"
별 방울같이 크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내 동생이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
" 그게 뭐야?"
나는 부엌으로 가서 밀가루를 한 컵 퍼서 물을 섞고 반죽을 시작했다.
동생이 반짝반짝한 큰 눈을 밀가루 반죽에 집중하고 내 얼굴도 번가라서 보았다.
" 이제 손에 안 묻으니 딴 네가 반죽해"
동생이 작고 야무진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는 동안 나는 안방의 연탄난로 위해 오래된 프라이팬을 올렸다.
밀가루를 둥글게 만들어서 컵 뒤로 두르면서 작은 밀떡을 만들어 푸라의 판에 구웠다.
밀가루 굽는 냄새가 과자 냄새같이 느껴졌다.
수입과자가 대부분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
뻥튀기나 고구가 탕 같은 간식 말고 과자를 사려면 많은 돈을 내야 했기 때문에 사실 우리 집엔 가게에서 파는 과자를 사서 먹어 본 일이 별로 없다.
노랗게 구워낸 밀가루에 흑설탕을 앞뒤로 조금씩 뿌려서 동생에게 주었다.
동생이 어린 강아지처럼 입을 벌리고 밀가루 반죽 구이를 받아먹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이불에서 일어나셔서 내게 말씀하셨다.
"윤신아 부엌 뒤에 골방에 가면 엄마 나무 궤짝 하나 있지? 그거 열고 그 안에 있는 노리게 하고 수 놓아져 있는 천 조각들 다 가져와"
동생을 난롯가의 밀가루 떡과 함께 놓아두고 나는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상자에서 노리게 와 손수가 놓여 있는 비단 천 조각을 가지고 왔다.
" 난로 열고 집어넣어... 귀신이 자꾸 괴롭혀서 그것도 태워야겠어"
나는 얼마나 오래됐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 이상한 이 물건들을 손에 쥐고 망설였다.
"엄마, 이거 아주 오래된 것 같은데?"
"빨리 태워버려... 귀신들이 그 안에도 들어있어. 그래서 엄마가 맨날 아픈 거야..."
나는 난로를 열고 비단에 놓여 있는 학과 바위들 그리고 아름답게 물결무늬가 색색으로 수 놓아진 천 조각들을 난로에 넣었다 그리고 색색 매듭이 있던 노리게도 난로에 집어넣었다.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쉬셨다.
"귀신들 다 물러가라. 조상님들. 나를 좀 놓아주시오."
그렇게 말씀을 마치고 어머니는 겨우 이불에서 일어나셨다.
나무 막대기같이 마르고 긴 다리가 긴 치마 잠옷 밑으로 비쳐 보였다. 어머니가 천천히 부엌으로 가셔서 상자 안에 들어있던 사진들을 가지고 오셔서 난로에 모두 집어넣으셨다.
동생이 어머니의 품에 다시 안기면서 말했다.
" 엄마 ... 집에 있으니깐 너무 좋다."
우리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누구신지 전혀 모르고 성장했다.
어머니의 과거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어머니를 이북에서부터 알고 지내신 노량진 아주머니뿐이었다.
그 누구도 어머니의 자세한 가족사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가끔 하셨지만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토막 토막 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초상화를 많이 그리셨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을 가진 여인'
이라고 한번 우리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불행하게도 이 초상화들은 어머니가 모두 파손하셨다.
어머니의 보물 상자와 함께 파손된 어머니의 아름다운 초상화들...
역사를 지워야만 했던 부모님 세대의 슬픈 지성인들이 가졌던 아픈 현실들...
어머니를 평생 우울증과 피해 망상증에 시달리게 했던 역사의 보물 상자 안에는 무엇들이 들어 있었을까...
아버지가 그렸던 단발머리의 어머니의 아름다운 초상화가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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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동 화백과 다섯명의 여인들
09
아픈 기억 속의 아름다운 희망
10
흉기 책상에서 서울대 책상으로
11
어머니의 보물상자
12
무 선생님의 누드 멍석 춤
13
다섯 여인의 생쥐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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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나에게 너무나 멀고도 먼 나라가 되어버렸다.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아버지의 그림과 추억들 그리고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 그리고 어머니의 한숨섞인 옛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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