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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선생님의 누드 멍석 춤

by Siesta Dec 19. 2024
브런치 글 이미지 1


밤 11시 반이 넘어서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술이 잔뜩 취해서 집으로 오셨다.


12시면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아버지 귀 전시회가 진행 중이던 그 시절 아버지는 예술인 친구들과 이미 만취가 되어 집으로 오셨다.


나는 내일 있을 기말고사 준비하느라 머릿속에 수학 공식들이 줄줄이 지나다녀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갑자기 집으로 친구들 5-6명들과 같이 들어오신 아버지의 친구들 중에는 평소 보지 못하던 한 분이 계셨다.


대부분 집으로 오셨던 분들은 N 선생님, 최 선생님, 이 선생님, J 선생님 등이었는데 한 분이 더 오셨다.


전위예술가 무 선생님이셨다.


어머니가 큰언니에게 sos 신호를 보내고 같이 자고 있던 큰 언니가 신호를 받고는 잠옷을 벗고 옷을 입고는 엄마와 부엌으로 가서 몇 가지 안주를 상에 차려가지고 안방에 가지고 갔다. 


그리고 큰언니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에 수학공식이 왔다 갔다 하던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일어나서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안방에서 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아이고... 멍석에서 태어나 멍석에 말려가는 인생. 아이고아이고..."


내가 열려 있는 안방 문을 밀고 들어갈 때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는 피곤한 얼굴로 나를 방으로 끌어다 놓으시고 당신은 부엌으로 사라지셨다.


무 선생님이 발가벗고 곡을 하고 있었다.


바닥을 드르륵 드르륵 구루며 멍석에 몸이 말리는 시늉을 하시며 곡을 하셨다.


"멍석에서 태어난 내 인생... 멍석에 말려가는구나..."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 예술 지성인들은 이 안방에서 펼쳐진 멍석 공연을 비통한 얼굴로 보고 계셨다.


무 선생님이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시다가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숨을 헐떡이셨다.


모두 박수를 쳤다.


나도 박수를 쳤다.


그때 내 나이 10살 중학교 1학년 때이다.


1980년 광주 민주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때이다.


무세중 선생님이 바지를 입고 윗도리를 입으시고 내게 오셔서 물으셨다.


"재미있었어?"


내가 웃으며 말했다.


" 네... 그런데 멍석이 뭐예요?"


"시골에선 우리 농부들은 아기를 낳을 때도 멍석을 깔고, 잔치를 할 때도 멍석을 깔고 또 죽으면 멍석에 말아다 장래를 치렀지... 멍석은 민중의 인생 무대다. 온갖 인류의 역사가 다 이루어지는 것이 멍석이다. 지금 수많은 죽어가는 사람이 멍석에 말려 또 실려가고 있다"


아버지가 소리 지르셨다.


"어린애한테 쓸데없는 소리 마"


"아이, 진실은 진실이지..."


누군가의 목소리도 뒤에서 들렸다.


방에서 나와서 어머니가 계신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서 녹차를 마시고 계셨다.


"엄마 어떤 아저씨가 빨개벗고 춤췄어"


어머니가 잠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 밤중에 왠 난리들이냐... ?... 하긴... 저렇게라도 안 하면 이 세상을 어떻게 버텨..."


어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가서 자"


지성인들이 정말 마음이 맞는 친구끼리가 아니면 어떤 대화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인들은 특히 세대의 많은 비리들에 영혼의 상처를 입고 그것을 표현해야 하는 시대 사명감을 가진다.


그 표현을 글로 그림으로 춤으로 조각으로 그리고 또 도자기로 남긴다.


방에서 이 예술인들의 터질 것 같은 심장소리를 공유했던 나는 정말 천운을 가진 대한민국의 여인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만취가 된 예술가들의 곡하는 소리가 스페인의 지중해에 사는 나의 귓속에 아직도 메아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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