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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봉투와 나이키 신발

by Sie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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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봉투와 나이키 신발

큰언니가 영어가 잔뜩 쓰인 헌 외국 잡지를 한 자루 가지고 왔다.


"언니 이게 뭐야?"


큰언니가 말했다.


앞집 가게 아줌마가 봉투 만들어다 주면 100개 봉투에 50원 주신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너무 좋았다.


나는 언니가 가지고 온 외국 잡지책을 조심조심 한 장씩 뜯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둘째 언니는 봉투의 가장자리를 접어 풀로 붙일 수 있게 준비해 놓는 일을 했다.


그리고 가장 정교하고 집중력이 뛰어난 큰 언니가 종이 두 장을 맞추어 봉투를 완성하는 일을 했다.


우리는 이렇게 쉬지도 않고 숙제가 끝나면 1시간씩 봉투를 만들어 세 여인이 만들어낸 봉투는 하루에 500 개 정도 됐다.


하루에 250원 정도 벌은 것이다. 한 달에 매일 일해도 7500원...


그래도 우리가 합심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항상 돈이 부족했던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버는 월급으로 6명이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몸이 약한 어머니도 계속 피아노 수업을 하셨었다.


이렇게 같이 앉아서 봉투를 붙이면서 우리는 꿈을 키웠다.


시장에 나가면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물품이 얼마나 가지고 싶었는지...


그중에 내가 가장 사고 싶었던 것은 그 당시에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하던 나이키 운동화였다.


몸이 약한 어머니가 아침마다 조깅을 시작하셨다.


조깅을 마치고 교회에 가서 새벽 기도를 하고 오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고무신을 신고 조깅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게 꼭 이 나이키 운동화를 한 켤레 사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나이키 신발을 신고 조깅을 하면 어머니의 모든 병이 다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봉투를 풀로 붙이는 일을 했다.


하지만 나이키 운동화의 가격은 그 당시 15000원이 넘었다.


우리 세 자매가 쉬지 않고 봉투 붙이는 일을 2달 이상 하면 이 운동화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의 수업과 숙제 시험 등으로 한 달에 겨우 2000원 정도 벌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15000원을 벌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내가 13살 때의 일이다.


봉투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빨리 돈을 만들 수 없었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나는 우리 집으로 피아노를 배우러 오던 한 부잣집 아이 (2학년 학생)의 부모님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 네가 산수를 그렇게 잘하는 피아노 선생님 딸이야? 너 우리 딸한테 산수 일주일에 두 번 가르쳐 줄래? 그럼 내가 한 달에 삼천 원을 줄게."


한 달에 삼천 원을 벌면 5달이 지나면 나는 15000원을 가질 수 있고 그렇면 나이키 신발을 살 수 있고 어머니가 나이키 신발을 신고 운동을 하시고 기도를 하시러 가면 어머니가 건강해질 수 있다....


나는 이 아이에게 산수 가르치는 일을 그 이후 3년간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에게 20000원이나 하는 나이키 운동화를 사 드릴 수 있었다.

물론 봉투 붙인 돈도 보탰다.


하지만 이때 내가 깨달은 것은 인간의 두뇌활동에 인한 일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봉투를 언니들과 같이 만들며 보낸 시간은 돈으로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들이었다.


돈이 되는 일...


그리고 돈은 안 되지만 추억을 많이 만드는 일...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면서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이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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