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경고
흔히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라는 말이 현대인의 삶을 축약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나오면 대중교통이라는 거대한 몸통 속으로 던져져 이리저리 흔들리며 소화되기 위한 음식물처럼 치이다가 일터에 도착하면 인간관계라는 것이 원래부터 그렇게 사바나 초원의 ‘동물의 왕국’이었나 싶을 정도로 생존을 위한 눈치를 깔아야 하고 육식동물의 하악질에 움츠리다
괜스레 옆에 있는 무리에게 엄한 냥펀치를 한번 휘두르곤 결국 머쓱하게 꼬리를 내리며 뒤태를 보이는 내 모습이 어제와 그제가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지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전작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 내심 놀랐던 것은 1만 2천 년 전 인류의 큰 도약이었던 농업혁명이 사실 인류에게는 도약이 아니라 족쇄였다는 그의 관점이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흔히 인류의 역사는 “나무 위에서 살던 유인원이 초원으로 나와 직립보행을 하고 도구와 불을 사용하면서 집단 사냥을 하다 농작물과 가축을 키우며 드디어 문명을 일구어 생태계의 가장 꼭대기에 도달했다”는 성공 신화였다고 스스로 자부해 왔다.
인류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인류의 농업혁명이 인류의 번성을 이룬 혁신이 아니라 인류를 노동의 노예로 전락시킨 비극의 서막이었다고 말하는 책!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처음인 듯했고
나의 다람쥐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현재의 삶의 기원을 일깨워 준 책이기도 하다.
유발 하라리의 후속작 <호모데우스>는 사피엔스가 걸어온 길 이후 과학을 통해 신의 영역에 도달하게 된 인간이 결국 자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는 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현재를 걱정하며 그 보완책을 제시하는 한편,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미래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그의 최신작 <넥서스>는 사실 전작 <호모데우스>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이미 <사피엔스>의 말미에 생명공학혁명과 사이보그에 대해 언급했었고 <호모데우스>에서는 신이 된 인간이 인간이었던 시절 신의 영역을 데이터와 AI, 그리고 알고리즘과 네트워크로 정의하는 위험성을 경고했다면, 신작 <넥서스>에서는 주체성을 지닌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와 인류의 대처방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로 널리 알려진 ‘마법사의 제자’ 이야기로
시작하는 <넥서스>는 이를 통해 우리가 흔히 SF영화로 보았고 상상했던 AI의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AI가 주체성을 가졌을 때 내려질 AI의 결정에 대한 우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AI혁명에서 인류가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정보 네트워크의 질서와 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초기 기독교가 <성경>을 큐레이팅하고 교회가 이를 해석하고 통제하는
권위를 발휘한 것과 같은 규제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AI가 주체성을 가지고 내리는 결정이나 큐레이터가 조정해 내린 결정이나
과연 그 결정에 대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판단을 할 것이며 인간적이지만 무모한 결정과
AI의 현실적이고 통계적인 결정 중 어느 것이 과연 어느 쪽이 더 옳은 결정이었다고 판단할 것인가?
인류는 농업혁명으로 이룬 과실로 발생할 권력의 집중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농업혁명을 이루지 않았고, 산업혁명으로 발생할 부의 편향에 대해 예측하면서도 이를 수렵체집 시대처럼 나누려 하지 않았던 것처럼,
AI혁명이 초래할 미래에 대해 예견할 수 있는 여지를 애써 외면한 채 자신이 만든 허상의 <데우스> 자리 만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