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에세이: 미국 요세미티
요세미티(Yosemite)를 만나기까지의 별것 없는 일상과 드디어 마주한 다음의 내 마음의 미세한 변화는,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인 듯,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떠올리며 실감이 난다.
사소한 일탈 중에 꿈꾸는 인생 대서사 로망
의지가 비루해도 하고픈 일들은 많다. 의욕이 부족하여, 버겁다 싶은 일은 핑계를 주석(註釋) 달아 오지 않은(않을) 날들로 미뤄버린다. 그러고도 욕심은 나이 따라 커져만 간다. 소백산 능선 따라 비로봉 오르는 길조차 "죽을 것 같아." 컥컥 대고선,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은 또 되게 멋있어 보인다.
'슬릭백'이 어렵겠나 한적한 산책길에 따라 해 본다. (집이라면 '경멸'을 피하지 못하리라.) 오래전 공옥진 씨의 곱사춤을 추는 듯하다. 그날밤엔 허공을 걷는 꿈을 꾼다. 며칠 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았노라 기억을 왜곡한다. 사소한 욕심(로망)에 몰입한다.
70킬로미터 거친 바닷길 캐나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이나, 장장 300킬로미터 험준한 고봉을 넘나드는 '존 뮤어 트레일' 또한 사소하게 꾸는 꿈이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함은... 단지 (직장인이라)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라고 스스로를 기만한다. 그래도, 은퇴 후, 험한 길 곰이라도 만나면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무모한 용기라도 남았다면, 그 트레일을 걷고 싶다.
요세미티에 가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심장 '요세미티'가 바로 '걷는 자의 꿈' 존 뮤어 트레일의 시작점이다.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IT기업 창업자이자 치고 빠지기 대가들인) 인도인들과의 긴 다툼에서 연말까지 아껴 쓸 기(氣)를 다 빨리고 온 지 오래되지 않아 또다시 그 땅을 밟는다. 지난해 9월 중순의 어느 날, 주말을 통째로 빼내어, 지긋지긋한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벗어나려 애쓴다.
나파밸리 와이너리들의 포도주에 붉게 취하고 온 다음이라 훨씬 더 강렬한 자극이 필요하다.
게으름 충만한 토요일, 이른 오후나 되어 동진(東進)을 시작한다. 미지의 요세미티로 떠난다.
요세미티만 따로 떼어내 갈 생각이 있지 않았기에 계획이랄 것도 아는 것도 없다. 요세미티 웨스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로지(Lodge) 하나 겨우 찾아놓았을 뿐이다.
무작정 가면, 누군가 존 뮤어 트레일 체험기에서 말했던 '요세미티의 잠 못 드는 밤'이 너무도 당연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리고 차 달리는 길 옆이 개울인지 낭떠러지인지 당최 모를 깊은 밤에서야 숙소에 도착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4시간 반을 생각했다. 내비게이션 도착예정시간이 점점 뒤로 밀리며 몸이 고통스럽게 비틀린 후였다.)
어슴푸레 느껴지는 대자연의 실루엣 베일 속 은밀한 밤은 형언키 어렵게 황홀하다. 로지 작은 창 안에 오밀조밀 모여든 별들을 하나 둘 세다가... '요세미티의 잠 못 드는 밤' 꿈은 허망하게 꺾인다. 리듬 타듯 드르렁 거리는 소리만이 밤새 별들과 속닥거렸을 게다.
요세미티는 영혼이 있는 자를 부른다
"The mountains are calling and I must go." (산이 부른다. 가봐야겠다.) (존 뮤어)
산골마을에선 아침도 늑장을 부린다. 동이 트기도 전에 깨어나보니, 요세미티는 어서 오라 나를 부른다.
서울 보다 다섯 배는 더 큰 광활한 요세미티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가 뒤늦은 고민이다. '눈으로만 보고 말까', '화보 찍듯 해볼까', 아무래도 1박21일 일정으로는 무엇이든 무리다.
백만 년 전 빙하가 땅덩어리를 개먹어 들어 화강암 절벽과 U자 계곡을 만들었다. 빙하가 녹아내리며 폭포가, 호수가, 크고 작은 계곡들이 생겨났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최대치의 뷰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랜드캐니언의 매더 포인트(Mather Point)와 같은 곳을 찾는다.
글래시어 포인트(Glacier Point)로 방향을 잡는다. 요세미티 웨스트에서 사십 분만 필요하다.
요세미티의 영혼을 마주하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능선을 타고 오르다 보니, 이내 2,199미터 글래시어 포인트에 다다른다.
차를 대충 세우고, 놀라움이 있을 법한 방향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질 (막연하게 겁을 내었던)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구 설렌다. 다시 가슴이 뛴다.
그렇게 이끌려 걷다가, 요세미티 첫인상과 마주한다. '아, 이랬구나!'
'거대한'의 수용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초거대 빙하를 상상한다. 굉음. 하늘과 땅이 마구 흔들리는 듯하다. 짜릿한 두려움에 몸이 살짝 떨린다.
한걸음 더 더 다가선다.
시에라 고원 위로 우뚝 솟은 (가운데를 잘라서 반쪽을 버린듯한) 2,695미터 하프돔(Half Dome)에 압도된다. 요세미티의 영혼이리라.
(노스페이스 로고가 하프돔에서 영감을 얻었단다.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영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오묘하다.)
하프돔 굽은 등을 오르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로터리 당첨이 되어야 등반 허가를 얻는다. 정상까지 빨라도 10시간, 난 용기도 체력도... 없다.
움츠러든다.
(하이에나처럼 내 앉은자리를 탐내는 이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멍하니 제자리에 머문다. 화보 따윈 진정 의도치 않는다. 경외심이 느슨해진 순간의 틈 사이로 촌스러운 낭만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저, 내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지금 해가 지고 선홍색 노을이 지기를 갈망한다. 대자연 위에도 가을 햇살은 사소하게 비추고, 벌겋도록 서서히 익어 오르는 하프돔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으리다. 한없이 작은 존재. 나도 같이 햇살 받기를 소망한다.
"Wilderness is a necessity... there must be places for human beings to satisfy their souls." (대자연속에서 영혼을 채우리라.) (존 뮤어)
요세미티를 걸어 낮은 데로 내리다
존 뮤어의 말대로, 요세미티의 웅장함은 깨닫기보다, 설명하려 하기보다, 그냥 느끼는 것이 이치다. 길 잃은 아이처럼 글래시어 포인트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마침내 결심한다. 걸어서 내려가자.
'Four Mile Trail' 이정표 찾기가 어렵지 않다.
늘어선 아름드리 세쿼이아(영웅) 나무 그늘을 쫓아 걷기가 시작된다. 스니커즈를 신고 가파른 길을 걷는 자체가 겸손하지 못했을까. "어이쿠" 쭈욱 미끄러지기 일쑤다.
좀 더 서쪽으로 좀 더 아래로... 못다 본 하프돔의 위용 그리고 테나야 캐니언 이들 둘과 이별한다. 그깟 이별이 뭐라고 자꾸만 돌아본다. 본질을 모를 미련이 남는다.
하프돔이 사라진 자리에 요세미티 폭포가 새롭게 든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내리는 계절이 못되어도 소리쳐 부르면 큰 소리로 대답해 줄 듯 점점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상단 폭포, 중간 폭포, 다시 하단 폭포까지 3단에 걸쳐 739미터 낙차로 떨어진다. 북미에서 가장 높다.)
좀 더 서쪽으로 좀 더 아래로... (못 가볼) 터널뷰 반대 방향(Reverse Tunnel View) 풍경이 또 다른 장엄함으로 시야에 들어찬다.
또다시 초거대 빙하 덩어리가 천지를 뒤바꿀 듯 계곡을 헤집고 마는 태고의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절로 그려진다. 여기 빙하는 더 더 압도한다. 7부 능선에 선 이 순간이 가장 두렵다.
대자연 속에서 내가 겸손해질 수 있다면... 그때는 내 영혼도 조금은 가벼워지리라.
진정 가슴이 먹먹하다. 먹먹함이 곧 한 편의 시(詩)요, 또 곧 사유(思惟)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스니커즈가 흙먼지로 뒤덮이고 이리저리 긁혀서는 꾀죄죄하다.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작은 물줄기에 씻어내 본다.
때로는 활기차게, 때로는 무표정하게, 또 자주는 힘에 부친 듯 헉헉대며 절벽길을 올라오는 사람들. 다양한 나이대, 서로 다른 생김새. 떠나온 곳도 각기 다른 '대단한' 그들과 짧은 인사를 나눈다.
일정하지 않게 들려오는 신음과 동병상련의 인사말이 마치 요세미티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악센트' 같다.
어느새 요세미티 밸리의 평평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머잖아 노을이 질 터인데 그제야 위로 오르는 이들을 마주한다. 기꺼이 행운을 빌어준다. 그들 앞으로 펼쳐질 여정이 눈에 선하다. 그 모든 고통과 기쁨을 다 알고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리라.
천 미터 수직으로 높은 곳, 내가 몇 시간을 걸어 내려온 그 길을 올려다본다. 내가 자연이었던 듯 자연이 나였던 듯 압도된 채 지나쳐 온 모든 것들이 다시 그립다. 그리운 감정이 바로 나의 소울(Soul)이 발현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 세속에 머물러 있네. 일찍 일어나 밤늦도록
벌고 쓰면서, 우리는 힘을 소진시키고 있으니.
우리는 거의 보지 못하네. 우리 것인 자연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슴을 내팽개쳤네. 너절한 축복이여.
(윌리엄 워즈워스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중에서. 양현철 역시(譯詩))
옛 시인의 지혜처럼,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 속에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사유해 본다. 때로는 기고만장하였고, 때로는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굴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알량한 자존심에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참 별것 없는데.
언젠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사소한 일인 듯, 내가 마치 한줄기 바람 같던 요세미티의 장엄한 대자연을 떠올려 보리라.
비록 낮은 곳에 내려섰지만, 요세미티 하늘 위로 그토록 그리던 노을이 지기 시작할 것이다.
미련하게도, 폭포가 끝나고 호수와 만나는 곳, 요세미티 깊은 은밀한 곳에서 '요세미티의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울 기회가 다시 오기는 할까 싶다.
에필로그
수 천년 요세미티 밸리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은 스스로를 아와니치(Ahwahneechee)라고 불렀다. '아와니(Ahwahnee)'는 'Gaping mouth-like place' '크게 벌린 입 같이 생긴 곳'이라는 뜻이다. 요세미티 밸리를 바라보노라면 크게 벌린 입과 다르지 않다.
초대받지 않은 침략자들(마리포사 기병대)이 요세미티에 찾아들어 장엄한 이 땅의 이름을 물었다. 대답은 '곰'을 뜻하는 Yosemite였고, 그 후로 침략자들에 의해 굳어진 이름이 '요세미티'라고 한다. 유력한 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