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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Jul 06. 2024

생말로, 중세를 떠다니는 노을 진 바다... 등지다

세계여행 에세이: 프랑스 브르타뉴 & 노르망디

바다, 노을, 갯바람... 이런 낭만적 요소의 농밀한 결합은 실패 없는 위로를 준다. 앉은 때에도, 일어서려는 순간에도, 특히나 이 모든 것을 등지고서 걸어 나올 때에는... 더 그럴 것이다. 체념을 돕고, 용서를 낳고, 희망을 꿈꾸게도 한다.


아버지란 존재감이 없는 이다. 내겐 그렇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나도 그럴 것이다.) Bradley J Nordell 시인의 'Father’s Sunsets: A poem to my father'(아버지의 노을: 아버지에게 부치는 시)를 읽으며 섣부른 짜증을 키운다. 마음 가는 대목을 마음 가는 대로 옮겨 본다.  


노을이 지고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견디기 힘든 날들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아마도 남은 맥주 다 들이켜고

심판에게 고함 빽 지르고는 소파에 고꾸라질 거예요.

...

이제 우리 아버지는 날이면 날마다

노을 지는 풍경을 사진에 담아요.

우리 형제들에게 문자를 보내지요. 거기엔 아버지의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 붙어있어요.

마지막 보다 앞엣 말이 더 소중하지요. 특히나

"내 아이들을 생각하며"라고 썼을 때는요.

지난날들이 저물도록 내버려 두니

노을 사진이 눈물에 가려 흐릿하네요.




몽생미셸을 떠나오며, 오랜 로망이 이루어진 뒤탈인지, 헛헛한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훌륭한 여행자는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완벽한 여행자는 어디서 오는지를 모른다고 했던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태로 노르망디(Normandy)와 브르타뉴(Brittany)의 짧은 경계를 넘었다.


노르망디 '몽생미셸'과 브르타뉴 '생말로' (출처: 한겨레)


'프랑스 서북부 해안의 최고 하이라이트'라는 매우 실용적인 소개에 이끌려, 멀지 않은 생말로(St. Malo)로 발길을 옮기는 길이었다.


4월의 한낮은 햇살이 무척이나 따사로웠다. 하지만, 영국해협 프랑스 해안선을 끼고도는 길 위에서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바닷바람만큼은 아직 차갑기만 하였다.


왕의 허락을 받아 해적질을 해대는 사략선(私掠船)이 바다를 누비고 항구를 드나들었다. 중세의 생말로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생말로 전경 (출처: view.ceros.com)


빼앗는 자에겐 지키는 일도 중요할 터, 2 킬로미터에 이르는 성벽이 '코세어(Corsair) 해적'의 본거지를 꽁꽁 싸매었다.


그것만으로는 은밀할 뿐일 텐데, 심지어 푸르른 바다에 임하여 드넓은 모래갯벌도 품었다. 생말로가 매혹적인 이유였다. 콧대 높은 휴양도시가 되었다.



바다로 먼저 향했다. '아, 이곳이구나.' 싶더니 얼마지 않아 바다내음이 무딘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만조와 간조 사이의 조차(潮差)가 10 미터를 훌쩍 넘는다고 하였다. 바닷물이 무섭게 밀려들면 높다랗게 솟아오른 방파제를 넘어설 듯 차오르고, 다시 밀려나노라면 드넓은 모래갯벌이 베일을 벗는 곳이었다.




때마침, 모세의 기적과도 같이, 서슬 퍼렇던 바다가 저기 작은 바위섬으로 가는 길을 터 주었다.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얼른 끼어들었다.



바위섬 위에는 중력을 거스러는 듯 요새(Fort)가 올라앉았다. (이미 철갑을 두른) 생말로를 지키겠노라 17세기말에 지어진 포트 내셔널(Fort National)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바위섬만 보면 성을 쌓는 것 같아." 몽생미셸에 견줄 바가 아니지만,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할 만도 하였다.



요새의 문을 활짝 열고서 도슨트(Docent)가 무료 가이드 투어를 해 주는 참이라고 하였다.


갯벌을 지나고 갯바위를 오르내린 이들이 모두 요새 안으로 들어서자 성문이 굳게 닫혔다.


탄약 벙커를 둘러보며 바다 저 멀리에서 몰려오는 영국 함대를 상상하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도슨트 효과이겠다.



요새의 성문은 투어가 끝나는 30분 동안 굳게 걸어 잠겼다. 바다를 등지고, 파수를 보다 한눈파는 듯, 코세어 도시의 칙칙한 역풍경을 바라보았다. 한참 걸렸다. (오래전 이 섬은 사람을 산채로 불태워 죽이던 곳이라고 했다.)


작은 아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요새 안엔 그곳이 없고, 성문을 중간에 열 수는 없다고 거절이 돌아왔다.





이 도시의 매력을 (지키려 했던 것들의) 역방향으로 더듬고 있었다. 모래갯벌을 지나고, 높고 긴 성벽을 넘었으며, 그다음으로 성벽 뒤로 감춰진 미로 같은 중세의 골목을 걸었다.





에든버러가 그러했었다. 갇힌 사이로 밀집하던 도시는 위로 솟아올랐다. 때로는 뾰족하고 때로는 완만하였다. 스카이라인이 멋진 이유다.


세계대전 때 많이 부서졌다더니, 중세의 색과 빛깔 사이로 근대의 터치가, 주의하여 살펴보면, 티가 났다. 그게 또 사람 사는 흔적이리라.


동전 넣는 공중화장실조차 성벽 아래 동그랗게 구멍 내고 들어앉았다. 줄지어 선 사람들이 늦게 나오는 이들을 일사불란하게 째려보았다.



아이들은 중세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하였다. 그만큼 익숙한 탓이겠다.


해변으로 돌아가자 보채었다. (제철은 아니지만) 브뤼셀의 레옹(Chez Leon)과 비교해 볼 요량이었던 홍합요리는 잠시 뒤로 미루어야 했다.


(벨기에, 노르망디를 지나 브르타뉴에 이르는 바닷길은 부쇼(Bouchot) 홍합이 흥하다. 조수간만 차이가 크고 물살 센 곳에 말뚝을 세우고 주목망을 설치해 고기를 잡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바다에 박아둔 나무 말뚝에서 홍합이 절로 자란다.)




"내 인생에 일주일의 시간이 남아있다면 생말로에서 보내고 싶다." (앙드레 말로)



높다란 제방 아래 촘촘히 꽂아둔 (아이들 키의 몇 곱절은 될 듯한) 부쇼 말뚝을 따라 걸었다. 일렬로 늘어서서 홍합을 품었던 것인지 거센 파도로부터 제방을 보호했던 것인지 겉만 봐서는 모를 노릇이었다.


바다로 향하는 대화가 바닷바람에 흩날렸다. 바람은 다시 부쇼 말뚝 사이로 사라졌다. 연꽃에서 바람이 불면 붉은 향기가 나듯이, 대화가 지난 자리에 난 정()에서 부는 바람은 푸른 향기로 그윽하였다.  



갯바위로 곧장 달려갔다. 곧 있으면 바닷물 속으로 다시 잠겨버릴 그곳에서 미끌미끌 아슬아슬 바위를 타는 것도 신나는 놀음이었다.


바다가 다시 밀려오기 시작함을 뚜렷하게 보았다.




갯벌을 달렸다. 바다가 계속 몰려오고 있음을 목격하였다.


두 아이의 주체 못 하는 장난기가 근처에서 놀던 또래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일면식도 없던 아이들이 한데 어울렸다. 시간은 느긋하게 아니 가속 페달을 밟은 것처럼 빨리 지나갔다.



그냥 놔두면 해 지도록 놀 터였다.


깊었다 낮았다 오가는 넓디넓은 또 길고 긴 해안선 고즈넉한 풍광을 따라 한갓진 여유로움이 자욱하였다. 이곳 바닷가 우리의 추억은 높고 낮은 부쇼 말뚝 보다도 많고도 높을 것이다.



갈매기 소리, 파도의 소리를 들으며 갯벌을 걸었다. 바쁘게 달리기만 했던 일상의 마음을 멈춰보았다.


미세하게 변해가는 빛과 수분 가득 머금은 바닷공기, 그리고 시나브로 길어지는 그림자와 거뭇해진 갯벌에 노을이 가까움을 직감하였다. 구름 사이를 드나들던 태양이 서녘에서 뉘엿거릴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마침내 중세 코세어 도시를 떠다닐 노을 져 오는 바다와 등을 지고 걷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에너지가 약간은 굽은 등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갯벌 위에 희미하게 남겨지는 발자국들 그 안에 아쉬움을 가득 담았다. 너무 무거워 차마 떼지 못할 것 같은 발걸음이었다.


노을이 머물다 떠난 바닷가엔 내일이면 바람 같은 그리움이 서성이다 흩어지지라. 이제 다시 못 올 생말로여, 안녕.


(차를 몰다 어느 이름 없는 레스토랑에 들를 것이다. 화이트 와인 향기 품은 부쇼 홍합탕을 먹어볼 것이다. 맥주도 한 잔 기울일 것이다. 존재감 없는 미래의 아버지를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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