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밍드림 Jul 09. 2024

물 따라 바람 따라... 내 마음의 풍차

세계여행 에세이: 네덜란드 킨더다이크 & 잔세스칸스

내 마음 깊은 곳의 풍차


누구나 가슴 한편에는, 알게 모르게, 저마다의 풍차가 돌아간다. 하나같이, 늘... 물 따라 바람 따라 빙글빙글 원(Circle)을 그려 하염없이 도노라면, 윤회(輪廻)의 수레바퀴인양 어느새 커다란 사이클(Cycle) 되어 데구루루 구른다. 정작 나만 모를 뿐이다.


바람이 멈추는 날엔, "사랑도 했다, 미워도 했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넋없이 지내온 기나긴 세월을" 오래된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돌지 않는 풍차'가 되리다. 물이 마르고, 빻을 곡식이 더는 남지 않은 날이면, 사이클의 궤적은 동력을 잃어 멈추거나 본디의 길과는 어긋나 버린다.


나의 풍차는 오늘도 안녕할지, 내 마음의 바람만...이 알겠다.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이정하 시인의 '바람 속을 걷는 법' 중에서)




내가 꿈꾸는 풍차는 대개는 심심하고 가끔은 드라마틱하다


물랭루주


가끔은,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빨간 풍차 '물랭루주(Moulin Rouge)'에 가고 싶다. 물 퍼낼 일도 밀 빻을 일도 않을 것이다. 그저 끈적이는 리듬과 농염한 댄스에 몸을 싣고 삐거덕 돌기만 할 것이다.


(바람이 너무 세면 풍차의 날개를 붙들어 매야한다. 자칫하다간 그 바람에 부러지겠다.)


라만차 풍차


때로는, 스페인 라만차(La Mancha) 드넓은 평원 어디메쯤 툭툭 내던져진 새하얀 몰리노(Molino)이고 싶다. 햇볕에 데워진 흙먼지바람을 맞으며 메마른 땅 위에 잘 자라는 올리브 나무들을 바라볼 것이다.


어쩌면 돈키호테의 내찌르는 창 끝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겠다. 그러려니 할 터이다.


미코노스 풍차


어떤 날에는, 그리스 미코노스 섬 바닷가에 호젓하게 서 있겠다. 비린내 풍겨 나는 지중해 푸른 해풍을 맞서며 생선 실은 어선과 곱게 빻은 밀가루를 실어내는 항구를 바라만 보고 있겠다.


수평선 너머 가보지 못한 세상도 꿈꾸리라.



(출처: AnimeNewsNetwork.com)


나의 풍차는 꽤나 연륜(年輪) 깊은 동심이기도 하다. "먼동이 터오는 아침에..." 청량한 노랫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면, 풍차 방앗간 집 아로아와 가난한 네로 그리고 파트라슈의 이야기에 틀림없이 코 끝이 찡해 올 것이다. 여전히 말이다.






킨더다이크(Kinderdijk)의 물길 둑길... 걷다


풍차를 바라볼 때면, 심연(深淵) 같은 나의 내면 속 풍차를 빼꼼히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 


네덜란드


풍차 로망은 그때그때 방향이 확 바뀌는 야누스적인 감성을 띠어 종잡기 힘들다. 하지만, 내 마음속 제일가는 풍차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이 가까운 킨더다이크('어린아이 둑')에서 굳건하다. 십 년 전이나 불과 한두 해 전이나 봐도 봐도 변함없다.


(그 옛날, 대홍수에 휩쓸린 어린아이와 고양이 둘을 태운 요람이 이곳 둑에 닿아 용케 살았다. 요람이 뒤집힐 위기엔 고양이가 균형을 맞추었다. 전설도 깃들었다.)



킨더다이크 그곳엔 언제나 바람이 흐른다. 흰색과 회색을 규칙 없이 마구 칠한 듯한 하늘이 낮게 드리웠고, 바람 길 따라 둑길 따라 풍차가 줄지었다. 물길 따라 흐르는 윤슬 위로 바람과 풍차와 적막한 시간의 그림자들이 찰랑인다.


암스테르담 멀지 않은 잔세스칸스(Zaanse Schans)엔 예쁜 풍차들이 박제된 듯 진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킨더다이크를 찾는 이유다.



선도 풍차의 지휘 아래 풍차들은 일제히 원을 그린다. 가장 낮은 땅의 물을 조금 더 높은 곳의 저수지로 퍼 올린다. 그래야만 초지, 농지를 지키고 살아가는 집터가 물에 잠기지 않을 것이다.


저수지에 고인 물은 더 높은 곳의 강으로 퍼 올려진다.



고단한 사이클이다. 이제는 풍차의 일을 거대한 디젤 펌프가 대신한다. (풍차가 하나 둘 사라져 간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킨더다이크는 그나마 다행이다. 세월을 버텨온 이곳 풍차들은 여전히 원을 그릴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거창한 타이틀이 한동안은 이들을 지켜주리라.



풍차의 주인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풍차가 로망인 이들이 한달살이 체험인양 풍차를 빌려 그곳에 찾아든다.


구경 온 객들에게 속을 내어 보여주는 풍차가 몇몇이 있다.



잔세스칸스의 내부 관람 풍차는 곡식을 빻는 원리(기계)를 보여주고, 이곳 풍차는 사람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풍차집 창가에 작은 탁자가 놓였다. 아이들 외할아버지는, 마치 연출 장면인 듯,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여기 풍차의 주인장이라 해도 믿겠다. 



난 그저 밖에서 바라보는 풍차의 모습이 좋다.


둑길 아래 낮은 땅 물줄기를 따라 위엄 있는 날개를 펼친 풍차가 줄지어 섰다. 


마음이란 붓으로 열두 폭 풍경화를 그린다. 수채화도 좋고 수묵화도 괜찮겠다.



람은 둑길을 만들고, 바람은 풍차로 하여금 원을 그리게 한다. 끝내는 물길의 사이클이 흐른다. 그것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때로는 불에 타고, 때로는 부서지며, 다시 고쳐 세우기를 수백 년. 물, 바람, 그 곁의 풍차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크게 변하지 않은 본질적 풍경이리라.


풍차와 나란히 걸어가는 둑길엔 이름 모를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발길 따라 바람이 스치 분다. 가까이 선 풍차가 느닷없이 날개를 움직인다. 아마도 바람이 좋아 주인장은, 하릴없는 객들을 위해, 옭아맨 빗장을 풀었으리라.


산들바람에 내 마음의 풍차는 삐그덕 삐그덕 열두 폭 사운드로 돌아간다. 유년시절 기억의 한편에서 추억의 한 자락처럼 꺼내 놓곤 하는 내 마음의 풍차는 킨더다이크 이곳에 산다.

 




에필로그


스팅이 읊조리듯 노래하는 'The Windmills Of Your Mind'(당신 마음의 풍차). 이 노래(음률)를 좋아하였다. 당최 무슨 뜻일지 이해되지 않는 가사를 흉보면서 말이다. 언제부턴가 그 가사가 심오하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내 마음 가는 대로 번역(이해)을 해 본다.)


Pictures hanging in a hallway and the fragment of a song

벽에 걸린 사진들과 기억 속에 조각난 노래 한 소절

Half remembered names and faces, but to whom do they belong?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그 이름, 그 얼굴. 대체 누구더라?

When you knew that it was over, you were suddenly aware

이젠 모두 끝나버렸음을 알고 나니

That the autumn leaves were turning to the color of her hair!

그새 가을 낙엽은 그녀 머리색을 따라 변해버렸다.

Like a circle in a spiral, like a wheel within a wheel

나선을 그리는 둥근 원처럼, 바퀴 안에서 돌아가는 바퀴처럼

Never ending or beginning on an ever spinning reel

돌고 또 도는 얼레에는 시작도 끝도 없어라.

As the images unwind, like the circles that you find

풀어진 심상(心象)처럼, 당신 마음의 풍차...

In the windmills of your mind!

그 안에서 둥근 원을 찾으리다.

('The Windmills Of Your Mind' 중에서)

이전 05화 생말로, 중세를 떠다니는 노을 진 바다... 등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