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에세이: 노르웨이
노르웨이 피오르드는 멀고 먼 예까지 나를 불러 놓고선, 외마디 격찬의 순간을 붙들어, 오래도록 풀지 못할 마법의 주문을 걸어버렸다.
험준한 산들과
깊고 차갑고 푸른 바다
피오르드항(港)은 나의 집 나의 고향
때로는 혹독한 겨울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Stephen Hollins의 'The Eye' 중에서)
피오르드라고 어디 허구한 날 꽃노래만 부르겠냐만, 산 푸르고 꽃이 피고 물도 푸른 축복받은 계절의 노르웨이는, 겨울 한철 못 버티고 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쩔 도리 없이 내겐 천국이었다.
길을 찾는 사람 (求道者)
빌룬(Billund) 마을을 빠져나와 레고랜드의 추억은 머플러로 매몰차게 뿜어내며, 차는 비뚤어질 일 없이 북진을 한다. 굴곡 없는 덴마크 땅이 지루해진다. 기다렸다는 듯, 지난 몇 달 동안 편치 못했던 마음과 (집과 회사만을 오갔던) 건강치 못했던 몸의 기억이 새삼 다시 떠오른다.
'대체 왜 그리 힘든 건데?'
'몰라서 물어? 알아서 또 뭐 하게? 능력이 없으니 매일 그렇게 일에 치이는 거지.'
'아, 그만해. 듣기 싫어.'
레고랜드가 소외당한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형편없는 독백만큼이나 초췌한 내 몰골에서 나를 건져 올리기 위해 (오랜 로망이었던) 길고도 먼 노르웨이 유랑(구도) 길에 오른다.
북해 건너 노르웨이
히르샬(Hirtshal)에 이르자 차는 더는 덴마크의 심심한 노면을 달리지 못한다. 북해와 맞닥뜨렸다.
Color Line의 Superspeed 2호 카페리에 승선을 하자, 노르웨이 최남단 크리스티안산(Kristiansand)을 향해 거대한 배가 미끄러져 나간다.
북해의 초여름 햇살 한 조각이 얼마나 고마우면 다들 갑판 위에 나와 섰다.
배 안 면세점에서 세일 옷 두어 벌 사서 나오니, 세 시간쯤 걸렸을까, 노르웨이 울퉁불퉁 해안 절벽이 눈앞이다. 반가움에 쭉 뻗은 손끝을 간지럽힌다.
노을 낚는 강태공
서둘러 북진할 수도 있겠지만, 크리스티안산 해변 오두막 하나 빌려 하룻밤을 든다.
새로 산 레고 조립에 정신없는 아이들의 성난 등을 떠밀어 바다로 나온다.
바지춤 추어올리는 것조차 잊고서, 잡은 물고기를 세는 노르웨이 소년의 구부린 등 위로 북구 여름의 긴 저녁 어설픈 노을이 스며든다.
차마 같이 보자는 말을 못 건네고 애먼 바다 경계만 내려다보는 아들내미가 안쓰럽다.
물고기 통을 가슴팍에 꼬옥 껴안고서 황혼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노르웨이에서 바라볼 줄이야.
피오르드는 아직 멀기만 한데, 나름대로 세상 시름 잊고 여행의 풍미에 젖어들기에 모자람이 없다.
북북서(北北西)로 진로를 돌리다
이튿날 이른 아침, 울빅(Ulvik)을 향한 멀고도 험할 길을 떠난다. 일곱 시간은 족히 걸리겠다. 그저 나의 여행이 만드는 평온함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기를.
흔히들 해안선 따라 스타방에르(Stavanger)로 향한다더만, 무언 심사인지 알려진 것 별로 없는 허허로운 북북서 방향 고원을 넘는다. 히치콕 스타일 미스터리를 의도한 것도 아닐 터인데.
피오르드 멀고 먼 마음은 어찌 벌써부터 먹구름 잔뜻 낀 삭막한 풍광에 동(動)하고 마는 것일까. 무작위적 이미지의 갑작스러운 공습에 길 가기를 그만두고 눌러앉고 싶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지붕 위로 풀이 자란다. 거역하는 집이 없다. 작은 휴게소에 들른 차에 그 까닭을 물어본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단다. 대답의 끝맺음을 한다. 풀을 깎아 줄 때가 되면 지붕 위로 염소 한 마리 올린단다.
차에는 디젤을. 먼 길 갈 내겐 웃음을 주유한다.
흩뿌리는 빗방울 속에 어른이나 아이나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다. 이름 모를 마을 조그만 호텔로 들어선다.
이른 오후의 레스토랑엔 오로지 우리만이 존재한다. 연어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슬기로운 결정이다. 결코 잊지 못할 미각의 행복을 맞는다.
"이거 너무 호사스러운데..." 멋쩍은 웃음이 창너머 교회 첨탑까지 닿는지 풍향계 위에 올라탄 수탉이 빙그르르 돌아선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을 저곳 산꼭대기 잿빛 푸른 빙하를 바라본다.
피오르드의 조용한 습격
북북서 내 생각이 옳았으리라. 잔뜩 흐린 하늘 아래 내심 바라던 것들이 순서에 따라 리드미컬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고개 하나 넘고 나서부터 작은 피오르드의 시작을 만난다. 반복된다.
홀린 듯 차를 멈추어 내리자 (겨울이면 슬러시만큼이나 축축해지리라 직감하는) 무거운 공기 속을 떠도는 황홀경이 (결코 그 겨울을 나지 않을) 이방인에게 친근하게 슬그머니 다가선다.
보링포센(Voringfossen) 폭포를 거쳐간다. 거친 물줄기가 높은 곳에서 지그재그로 떨어지며 물보라가 인다. 굉음도 거드니 하늘도 쏟아져 내릴 태세다.
메말랐던 월급쟁이 가슴을 차고 넘치도록 시원하게 적신다.
가다 보니, 소떼가 차들의 길을 걷는다. 오는 차 가는 차 모두 소들이 비켜나기까지 인내한다. 어느 누구도 경적 따윈 울리지 않는다. 쩔렁쩔렁 소방울 소리가 한가롭다. 갈 길 여전히 멀어도 굳이 서둘러 뭐 하랴.
체리 블라썸의 유산
울렌스방(Ullensvang)에 이른다. 오늘의 목적지 하당게르 피오르드가 멀지 않았다.
이 마을은 도처마다 과일나무다. 만개한 체리 블라썸의 계절은 아까웁게 지났어도, 체리색만큼이나 유혹적인 짙붉은 색 캐노피를 세워 올린 체리 노점상을 만난다. 고단한 길 위의 이 체리 맛을 또 어찌할까.
때로는 길이 사라져 배에 차를 싣는다. 인내를 배우면 길이 열린다. 쉬운 이치다.
마침내 울빅에 도착한다. 반나절만이다.
노르웨이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하당게르 피오르드를 조우한다.
하당게르 피오르드
피오르드는 크고 길지 몰라도 마을은 작다. 그런 마을에 아주 잘 어울리는 호텔에 체크인한다.
촌각의 시간도 아까워라. 호텔을 빠져나온다. 고즈넉한 시골의, 가문비나무 타는 연기가 피어오를 듯한, 어둡지 않은 이른 밤을 걷는다.
물안개와 낮은 구름이 산 허리를 감싸 안은 마을은 '평화', '쉼', 두 단어를 내게 선물한다. 얼마 만에 받아보는지 기억도 없다.
마을을 왼쪽으로 끼고돌아 고갯마루 올라서니, 깊은 밤으로 기울어가는 풍경은 선계(仙界)를 닮았겠다. 피오르드 겨울을 견뎌내곤 했을 피오르드가 낳은 시인은 나는 모르겠다. 내게는 축축하고 어둑한 그 여름의 블루 같은 풍경이다.
좁은 방 창을 열면 바로 손이 닿을 곳에 시냇물이 흐른다. 그 맑은 소리에 밤늦도록 뒤척이다 새벽녘에나 잠이 든다.
새로운 날이 밝고, 하늘이 개고, 호텔을 나와 바라보는 하당게르 피오르드가 선명한 빛을 낸다.
송네 피오르드
또 다른 아침이 열리고, 새로운 호기심으로 또 길을 떠난다.
산길을 한참 달려 보스(Voss)를 지난다. 주유소 편의점에서 Voss 생수를 사들고 나온다. 두바이 에미레이트 항공 비즈니즈 클래스 라운지에 거만하게 줄지어 선 그 물과 뿌리가 같다. 물 목 넘김도 기쁨이 될 수 있음을 배운다.
높고 험한 고개를 넘고 다시 넘는다. 여태껏 실컷 놀랐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송네 피오르드의 꽃이라는 내뢰이 피오르드의 시작점. 구드방겐(Gudvangen)에는 바이킹 살던 흔적을 남겨 두었다. 플롬(Flam)으로 향한다.
866미터 뮈르달(Myrdal)까지 오르는 플롬스바나(Flamsbana) 산악열차에 오른다. 융프라우 오르는 열차에 견줄 만큼 뭇 여행객들이 모여든다.
키요스 폭포(Kjosfossen)에 이르러 폭포 한 귀퉁이에서 주술을 시전 하듯 나타나 주는 노르웨이 훌드라. 관광열차의 매뉴얼이리라. 주는 대로 즐긴다.
요괴라는 소개에 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엄마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제 서서히 산을 내려설 시간이다.
이내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송네 피오르드와 조우한다. 200km가 넘는다.
겨울이 되어야 울부짖을까. 이 협만(峽灣)은 방해받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나른한 오후를 즐긴다.
그간 움츠렸던 고단한 감정들이 1,300미터 송네 피오르드 해저로 가라앉는다.
세상 평온한 송네 피오르드 바닷물은 천천히 노르웨이 해로 흘러들 것이다. 거친 노르웨이 해를 만나면 언제 고요했었냐는 듯이 높은 파도로 일렁일 것이다. 그런 광경이 갑자기 명백하게 보인다.
도시의 강렬한 회색으로 복귀하더라도, 자신이 있든 없든, 능력이 있든 없든, 출세할 가망이 있든 없든, 이젠 '그러려니'의 슬기로움을 엄격하게 수용해 보아야겠다.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지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만 자리를 뜬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가장 멀어서 가장 거칠고, 가장 거칠어서 가장 아름다울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찾아 북진한다. 과욕으로 더 더 북으로 오르면, 운이 좋다면, 머리 위에선 녹색, 붉은색, 보라색 얼룩의 오로라가 천상의 춤사위로 밤하늘을 밝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아쉬워한다.
피오르드 순례 사흘째 밤은 게이랑에르 유니언 호텔에서 보내리라. 오로라 못지않을 대자연의 걸작을 바라보리라. 기대에 찬 꿈은 항공유만큼이나 무결점 연료가 되어 다시 네 시간 넘게 차를 달리게 한다.
북구의 여름은 밤이 깊어도 칠흑 같은 암흑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일찍 도착하리란 욕심을 버렸다. 스케이(Skei) 어느 호텔에서 한가로운 저녁을 먹는다. 한 무리 한국인 관광객들과 마주한다. 그분들도 참 멀리까지 오셨다.
게이랑에르까지 삼십 분 남았다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와 함께, 불쑥, 전혀 상상치 못했던 대자연의 위용을 길 위에서 마주한다. 거듭 차를 멈춘다. 도착은 갈수록 뒤로 물러난다.
밤 열 시가 되어서야 저 멀리 어슴프레 다가오는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피오르드가 호텔 방 창너머 명백하게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다가선다.
뷰 값으로만 거금을 치른 다음날 아침이다.
Superspeed 2호 카페리에서 그리 했듯이 노르웨이의 명백한 피오르드의 아름다운 자태를 향해 손을 뻗어본다. 그 모든 풍광에 손끝이 간질거린다. 월급쟁이 뻔한 주머니 사정을 회고할 미련을 철저히 짓뭉개 버린다.
달스니바에 올라 게이랑에르를 조망한다.
피오르드 험한 겨울을 힘겨워하던 시인도 명백한 본질의 아름다움 앞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나 보다.
피오르드 태생임을 한껏 자랑한다.
세상 고단함이 일순간에 모두 사라진다.
푸른 나뭇잎 캐노피, 잎사귀 틈을 파고드는 햇빛,
이끼 덮인 나무, 생명이 꿈틀거린다.
보석 빛깔 새들은 날갯짓마다 지저귄다.
우뚝 솟은 절벽 아래 청록색 웅덩이로
수정같이 새하얀 폭포수가 뛰어든다.
달콤한 그 소리를 어찌 말로 표현할까.
내 귀에 그 진동은 꿀멜론 맛이 난다.
(Stephen Hollins의 'The Eye' 중에서)
달스니바를 내려오면, 이제 카페리에 모든 걸 싣고 게이랑에르 협만을 미끄러져 골든루트 궤도에 오를 것이다. 피오르드 너머의 노르웨이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