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밍드림 Jul 20. 2024

명백한 시선 너머 노르웨이 순애보(純愛譜)

세계여행 에세이: 노르웨이

노르웨이 남쪽 바다 크리스티안산을 딛고 북진하여 오로라 경계 가까이 게이랑에르 피오르드까지 올랐다. 산과 바다와 과일나무와 사람들을 만나며 아낌없이 칭송하였다.


이제 오슬로를 향하여 동진(東進)과 남진(南進)을 반복한다. 방향을 휙 틀 때마다 아쉬움이 기우뚱 흘러내린다.


피오르드 보다 솔베이지의 순애보(殉愛譜)가 더 오랜 감성이다


아서 래컴의 삽화 '오제의 죽음(Death of Aase)'


못 말리는 탕아(蕩兒) 페르귄트(Peer Gynt)는 자신을 사랑하는 가여운 여인인 어머니 오제(Aase)와 연인 솔베이지(Solveig)를 떠나 평생을 '목적'없는 방랑(방황)을 하였다.


어머니의 임종 앞에서도 철이 없었고, 노인이 되었고, 모든 걸 잃었다. 죽음을 앞둔 절망의 순간에야 솔베이지를 찾았다.


나잇값이 무엇인지도 모를 공자 지학(志學)의 나이에 나는 '솔베이지의 노래'에서 위안을 찾았다.


뚜렷한 기억으로, 그리그의 선율은 청승맞았다.



흐릿한 기억으로, 입센의 시는 시대착오적이며 지고지순한 사랑의 모범 같았다:


The winter may pass and the spring disappear,

길었던 겨울 지나자 이젠 봄이 져가네.
the summer too will vanish and then the year.

여름마저 사라져 가면 한 해도 스러지리다.
But this I know for certain: thou’lt come back again;

그대 다시 돌아올 날 기어코 있으리다. 내 약속처럼,
And e’en as I promised, thou’lt find me waiting then.

그대를 오늘도 기다리노라.
(영어 가사 출처: oxfordsong.org)



페르귄트(Peer Gynt)의 고향에서 격세지감을 느끼다



아무래도 오랜 노르웨이 로망 근저에는 솔베이지와 페르귄트가 똬리를 틀고 앉았겠다.


그래서인지, 일이 바르게 돌아가듯, 빈스트라(Vinstra)라는 해발 1천 미터 산속을 찾아든다. 아마도 (요툰 거인이 산다는) 요툰헤임의 끝자락쯤 될까 보다.



바로 페르귄트의 고향이다.


노르웨이 숲이 저 멀리 바라보이는 산정호숫가에서 하룻밤 쉬어갈 (150년 된) 목조 숙소를 발견한다.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들은 페르귄트 호래자식 얘기에 관심이 없다.



페르귄트의 고향엔 두 여인을 닮은 듯 들꽃이 예쁘게도 피었다.


학문에 뜻을 둘 나이에 세상 꺼져가는 노르웨이 선율에 영혼을 내맡기던 소년이... 오늘은 노르웨이 숲을 바라본다.


솔베이지의 순애보(殉愛譜)에 이어 망나니 자식 순애보(純愛譜)를 마지막 날숨으로 눈을 감는 오제를 떠올린다.


(애통하게 들리기는 '솔베이지의 노래' 보다 '오제의 죽음'이 훨씬 더 하다. 어릴 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레퀴엠을 알기엔 아직 일렀으니까.)


오슬로에서 '절규'를 두려워하다



오슬로를 찾아든 이유는 뭉크의 '절규(Scream)'였다. 직관하면 어떤 감정이 일렁일지 궁금하였다. 나 만큼은 절규를 잘 이해할 줄 알았다.


충만한 호기심을 앞세워 뭉크 뮤지엄(Munch Museet)으로 들어선다. 오래지 않아 밖을 나선다.


붉게 출렁이는 하늘, 여러 번 휘어진 몸, 얼굴을 으깨는 두 손, 과도하게 큰 눈... 크지 않은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명(Scream). 공포에, 고통에, 분노에, 묘한 쾌락에, 기본적 슬픔에 이르기까지 온갖 감정들이 계량하기 힘든 혼란의 농도로 실렸다.


하나라도 버거울 감정들이 뒤죽박죽 유기적으로 반응한 후의 아웃풋을 상상하니 무척 두렵다. 내 글쓰기 수준을 보아하면, '절규'를 이해하기란 '오제의 죽음' 보다도 훨씬 더 어렵겠다.




노르웨이 기행 이야기를 리셋(Reset)하려고 한다.


여행 방식의 전향(転向)


"부모가 내 삶의 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억을 잃어가고, 어제 할 수 있던 일을 오늘은 할 수 없을 때, 여전히 부모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기시미 이치로가 던지는 화두가 떠오를 때면 나는 늘 답을 찾지 못하였다.


노르웨이였기 때문이겠다. 우리끼리 다녀온 후 장인 장모가 계속 눈에 밟혔다. 겨울 지나 여름이 되기를 기다리고, 또다시 심심한 덴마크 노면을 내달았다. 그분들은 친손주가 또 눈에 밟혔나 보다. 노르웨이 가는 여객선에 우르르 승선하였다.


이번엔 오버나잇 여객선이다. 스타방에르(Stavanger)를 향하여 밤새 노르웨이 해 거친 파도 위를 달린다. 널찍한 홀에서 때마침 마술쇼가 열린다. 몇몇 관객이 마술사의 부름을 받아 무대에 오른다. 서슬 퍼런 칼날이 아이들 엄마 머리를 순식간에 관통한다. 실감 나는데도, 그녀의 부모, 그녀의 아이들, 누구도 동요하지 않는다.


부모 된 도리처럼 여행하는데 익숙해져 왔겠다. 어설프더라도, 이번엔 자식 된 도리로 바뀌어 보리라.


선경(境)의 아이티너러리(Itinerary)


스타방에르에서 하선한 차는 송네 피오르드를 향해 달린다. 역시나 먼 길이다. 이번엔 내 마음대로의 일정 잡기를 버리려 한다. 효도 여행 앞에 만용을 내려놓는다.



송네 피오르드 가까워지며, 스탈하임(Stalheim) 호텔로 오른다. 이 자리는 이백 년을 내리 기꺼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다른 이들도 그랬을 것처럼, 내로이(Naeroy) 협곡 상하좌우 각 지점을 주목하며 칭송을 한다.


지난번 산악열차에 몸을 실었던 플롬이 근처임을 알아차린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의 존재를 인식하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한다.


스테가스타인(Stegastein) 전망대에 오른다. 아울란드(Aurland) 피오르드가 까마득한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었을 장인은 산을 응시하고 다시 바다를 응시한다. 말을 않는다.



산 말고 바다 말고 바라볼 게 하나 더 늘었다. 계속해서 어른들의 눈치를 살핀다. 눈치 속에 노르웨이 대자연의 잔상과 그 곁에 선 그분들의 잔상이 함께 머문다.


날은 아직 밝아도 밤으로 기울어 간다. 하룻밤 유할 히테(오두막집)가 가까워지자 도로가에 염소가 앉았고 양이 누웠다. 사람이 살아간다.



8월인데도 벽난로에 불을 지핀다. 가문비나무 장작 타는 냄새에 취한 듯 노르웨이의 밤이 깊어간다.


날이 밝으니 구름 낀 하늘도 맑고 푸르다. 푸른 빙하 보러 가기 좋은 날이다.



북으로 더 올라 요스테달브렌 국립공원에 들어선다. 작은 보트에 올라 빙하호를 건넌다.  


나가르드 빙하다. 빙하의 벌어진 틈 사이로 시퍼런 물이 무섭게 흘러내린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은 이미 결정된 여름날의 섭리일 테지만, 새삼 그 섭리가 두려워 온다.  



이제 1,495미터 달스니바 전망대에 오른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의 숨 막히는 절경과의 재회다.


장모는 압도적인 높이에서 막힘없이 내려찍는 절경 때문인지 걱정스러울 만큼 몸을 떤다. '절규' 속 하나의 감정이겠다.


하산을 재촉하는 사이, 아이들은 천길 낭떠러지 경계에 누군가 쌓아 올린 돌탑 꼭대기에 돌 하나씩을 더 올린다.



작은아이는 제 곁에 붙어선 아비 흘끗 쳐다보더니, 큰 소리로 "엄마 아빠 오래 살게 해 주세요"라며 돌 하나를 더 올린다.


(교토 이나리산 붉은 토리이 길을 오르며, 그날과 같은 말을 듣고 싶어 했다. 어디까지나 재미를 목적으로 했겠지만, 더는 같은 말을 듣지 못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가 가까워진다. 지난번 보다 훨씬 강도가 센 플렉스를 앞둔 유니언 호텔을 바라보며 서서히 긴장한다.


체크인을 마치기 바쁘게, 극()적 선()한 도리를 실천한다. 넷이 앉아 선경(仙境)을 바라보던 그 자리에 오늘은 여덟이 앉는다. 변한 건 오직 하나 사람의 많고 적음 만이다.



새로운 아침은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미끄러지듯 흐르는 헬레실트(Hellesylt) 향 카페리 선상에서 맞는다. 25km 선계의 바다를 건넌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르는 듯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의 'Time to Say Goodbye'가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 배를 뒤따르던 갈매기들의 날갯짓에 몽환적 선율이 퍼져간다.



절경과 우아한 음악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최선의 고객 봉사이다.


카페리에서 내려 골든루트 길 위로 올라선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배로 건너던 피오르드가 내려다 보인다.


"잠시 쉬어가자." 장인의 지시로 차를 멈춘다. 일제히 차에서 내려 지나온 산과 바다를 바라본다. 아이들은 쫑알거리고, 장인은 또다시 말하는 법을 잊은 듯하다.


산사태로 앞길이 막혔다. 복구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다.


다행히 '트롤의 사다리' 트롤스티겐(Trollstigen)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사진으로는 진실된 묘사가 불가능할 천길 낭떠러지를 끝없는 지그재그로 내려가다 보면, 북구의 괴물 트롤과 한 번은 마주칠 것만 같다.


'트롤주의' 표지판이 도로 곳곳에 서 있다.   




다시 도시로... 가야 할 길을 가다


선경을 지난 후, 못다 떨친 순애보 미련에 (누가 찾을까 싶은) 페르귄트의 고향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이번엔 다르다. 도시를 향해 곧장 남으로 간다.



베르겐(Bergen)에 닿아 도시의 바다와 피오르드의 바다를 비교한다.


숨 가쁘게 달려온 여정에 잠시 쉼표를 찍으려 한다.



삼백 년 된 번성의 흔적을 쫓아 부둣가 브뤼겐(Bryggen) 역사지구 폐부로 들어선다.


'라르고(느리게)' 템포, 아니면 '안단테(조금 느리게)' 템포라도 좋겠다. 쉼표를 찍고 싶다.



삼백 년 목조 건물 앞에 아이는 아예 멈추어 섰고, 주변의 모든 것은 네 배속 활동사진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베르겐 어시장을 찾아 기어이 맥주 한 잔 걸치고 마는 장인 주위로도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장인 장모 눈치 살펴 선경 안으로 끌어안아야 했던 노르웨이 긴 여정도 막을 내려간다.  


푸니쿨라를 타고 플뢰엔 산 전망대에 오른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곳에서 베르겐 시내와 항구와 바다를 내려다본다.



베르겐을 출발하여 덴마크로 돌아가는 야간 여객선은 노르웨이 해 거센 파도 위에서 밤새 선미(船尾)가 들렸다 내렸다 출렁거린다. 깊은 잠자긴 당초에 틀려먹었다.







극()의 선()을 흉내 내던 노르웨이 리셋 기행 이야기는 칠레 시인 네루다의 시 한 대목을 되새기며 끝을 내려한다.


Well, now,

그래요 이제

if little by little you stop loving you

당신이 당신에 대한 사랑을 서서히 멈춘다면

I shall stop loving you little by little

나는 서서히 당신에 대한 사랑을 멈출 거예요

If suddenly

문득

you forget me

당신이 나를 잊는다면

do not look for me,

나를 바라보지 말아요

for I shall already have forgotten you.

내가 이미 당신을 잊었어야 했기에

(파블로 네루다 'If you forget me(당신이 나를 잊는다면)' 중에서)











이전 08화 명백한 시선 너머 노르웨이 피오르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