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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Jun 22. 2024

기품 넘치는 쉼, 여유(旅游)... 누리다

세계여행 에세이: 체코 카를로비바리

여전히, 레트로 감성이다


未練涙(みれんなみだ)を湯けむりの向こうに流す紅椿

미련의 눈물을 온천 수증기 저편으로 흘려보내는 붉은 동백꽃

ああ湯の宿に雨が降る

아~ 온천 여인숙에 비가 내리네

笑顔咲かせば湯けむりの向こうに明日(あす)が見えますか

애써 미소 지으면, 온천 수증기 저편으로 내일이 보일까

(椿の宿(동백 여인숙) 중에서)


내게 온천이란 대개는, 케케묵은 엔카 가사처럼, 내가 객(客)인지 동백인지 빗물인지 모를 축축한 레트로 감성이다.


유럽 온천을 향한 감성은 좀 달라서 대체로 습습하다. 독일 슈바르츠발트(검은숲)에 안긴 바덴바덴이 그러했고, 피레네 산맥에 숨은 안도라에서도 그러했다. 부티크 쇼윈도에 나붙은 가격표가 길가 풀포기에 어린 서릿발과 같아서 애써 외면하게 되는 그런 고고함도 갖추었다.




쉼, 여유(旅游), 그리고 조화로움


어떤 감성이든 온천은 '휴식'과 '여행'이 조화로운 곳이 아닐까. 운이 좋다면, 삶에 다친 마음의 그늘까지도 위로가 닿을 수 있겠다.


프라하에서 독일 쪽으로 두어 시간 움직여야 하는 카를로비바리(Karlovy Vary)를 찾은 이유가 그러했다. '뛰어난 온천'의 보증서처럼(영덕 백암온천처럼, 일본 나스온천(시카노유)처럼) '사냥', 상처 입은 '사슴', '치유', 이 세 가지가 조화로운 칠백 년 된 전설이 있다 했고, 보헤미아의 이름 높은 도시가 참 우아하다 했다.


운전자 잘못 만나 몸 버린 코발트블루 파사트. 그 옆의 호텔


호텔부터 여행한다. 꼭대기층엔 (어른을 위한) 스파와 (아이들을 위한) 작은 수영장, 더할 나위 없다. 중심가 가까운 훔볼트 파크 호텔에 들었다.


쉴 만도 한데 이내 낯선 도시의 속살을 들춰보고 있었다. 피곤할 터이지만 어느 누구도 군소리 따윈 꺼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라젠스키 포하레크가 필요해



고색창연한 스카이라인이 뒷배가 되는 바로크풍 도시 풍경에 한순간 마음이 홀렸다. 세련된 풍경과 단아한 풍경 그 사이로 '테플라 강'(따뜻한 강)이 거만하게 흐르고 있었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고 보면, 온천 가까이 이른 듯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생긴 것도 크기도 색깔도 어느 하나 같을 게 없는 컵을 하나씩 들고 있는 풍경이 아주 생경하였다.  


누군가는 홀짝이며 컵을 들었고, 또 누군가는 하나를 손에 쥐고도 노점의 다른 녀석들을 (탐내는 듯) 흘깃거렸다. 우리도 본능적으로 '라젠스키 포하레크', 부르는 이름마저 우아한 온천용 컵을 취향대로 하나씩 집어 들었다.




몸통에서 유려하게 뻗은 앙증맞은 주둥이가 곧 빨대요, 벌컥벌컥 마시지 못할 뜨겁고도 비릴 온천수를 마법같이 메이크업해 줄거란 믿음이 절로 났다.


차마 버리지 못할 추억의 증거가 될 것이기에, 작은 포세린 컵 하나조차 골드와 로열블루 품격 있는 종이백에 넣어두어야 (이 도시 풍경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5월의 끝자락에도 보헤미아의 이름 높은 온천 도시는 쌀쌀(쓸쓸)하기만 하였다. 출처 애매한 레트로 감성이 도지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레트로 감성에 끼어서도 잘 노는 아이들 배경으로 먼 훗날 내리사랑을 치사랑으로 되갚아 주지 않을까 싶은 미련한 기대가 기어올라, 테플라 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옅은 수증기와 겹쳐 보였다.


내 결핍의 발로. 얼른 고개를 저었다.



자애로운 다섯 콜로나다


온천수를 찾아 걷는 이들 위로 다섯 개의 고색창연한 열주(列柱) 회랑이 드리웠다. 콜로나다라고 불렸다.


사도바 콜로나다


사도바 콜로나다. 19세기말 미적 감성으로 아치형 지붕의 터널을 세우고 촘촘한 레이스 장식을 더하였다.


지붕 덮인 콜로나다 아래에선 치유의 온천수가 포셋(Faucet) 수도꼭지를 통해 토출 되었다.



뱀 대가리를 지나 온천수가 나오는 '뱀의 온천' (사도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뙤약볕이 내리쬐어도, 치유를 바라는 객(客)들은 큰 걱정이 없을 터였다.


빗물이 용암 지반으로 흘러들고 다시 이곳 온천수로 뿜어져 나오기까지 천 년의 세월이라고 했다. 천 년을 지낸 온천수를 처음 맛본 아이들의 표정이 떨떠름하였다. 몸에 좋다 하였으니, 뭔지 모를 욕심에 컵 한가득 채운 (청송 달기약수를 데운 듯한 맛의) 온천수를 참고 마셨으리라. 라젠스키 포하레크가 마법도 부렸을 터.


믈린스카 콜로나다


믈린스카 콜로나다. 역시 19세기말 심미안으로 세워 올렸을 코린트 양식 열주 사이를 걷노라면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 속으로 떠나는 듯했다.


천장 아래 매달린 시계 너머로, 미워도, 이곳만큼은 함께였으면 좋았겠다 싶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원치 않으니 이내 사라졌다. 결핍의 발로.  



온도가 각기 다른 다섯 개의 온천수를 다 맛보고 나서야 시간여행 같았던 믈린스카 콜로나다를 벗어날 수 있었다.


장복하면 고혈압, 당뇨, 콜레스테롤을 다스리는데 좋다 했다. 지긋지긋한 아토피에도 좋다 했다. 딱히 아픈데도 없으면서, 열흘간의 치유에 쓰일 만큼을 이틀 동안 다 마셔버릴 기세로 포셋 수도꼭지를 찾아다녔다.

 


한 컵 가득 담아서 주둥이로 한두 모금을 빨고선 남은 물을 버렸다. 다음 수도꼭지 만나 새로운 물을 받아 들고선 또 몇 모금만 마시고 버렸다. 그러는 사이, 그들만의 온천 즐기는 방식에 동화되어 갔다.


조금씩 자주 마시다 보니 어느새 비릿한 물맛에 익숙해져 갔다. 아니, 중독되어 갔다.



"행복도 내가 만들고 불행도 내가 만든다."라고 했던가.


콜로나다를 순례하는 하릴없는 시간 속에, 어디 병든 곳 딱히 있지 않음에도 복용시간이랄 게 따로 없이 온천수를 마셔댔다.


당당한 포즈로 (행복한 듯) 신통한 묘약을 들이켜는 연륜 두터운 분들의 모습 속에서, 내리사랑은 넘쳐도 나로부터 시작하는 치사랑은 선명히 드러난 결핍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 코발트빛 바다를 벗 삼아 걷고 있었다면 미처 몰랐으리라. 결핍은 아픔이고, 아픈 데 없노라 자만하던 난 스스로 치유가 필요함을 알아차려야 했다. 얼른 온천수를 들이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엇이 아픈지 분명하게(외면 말고) 써라(말하라).”라고 말했다.


이런 곳에서는 나도, 기댄다고 누가 뭐라지 않을, 마음이 어린 사람이고 싶었다. 잠시나마.



필스너 우르켈이 좋아


Park Spa Hotel Sirius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푸르른 나무들이 바라보이는 이웃 호텔 레스토랑 창가에 앉았다.


독일 슈바인스학세와 비슷한 듯 꼴레뇨(맥주에 재웠다가 오븐에 바삭하게 구워낸) 족발 맛에 다들 신이 났다. 비린 물을 그리 마셔댔으니.



 

필스너 우르켈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던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였다. (지금은 흔한 맛이 되었지만)


카를로비바리의 밤은 필스너 우르켈과 꼴레뇨와 함께 찾아왔고, 우리 호텔 꼭대기층에서 보낼 짧은 시간만이 남았다.




다시 한번, 쉼과 여유(旅游)


트르지니 콜로라다


새로운 해가 떠도, 마시다 쉬고, 마시다 걷고, 마시다 쇼핑하였다.


트르지니 콜로라다. 백 년도 넘는 스위스 감성으로 회랑을 올리고, 레이스 자수를 놓은 것 같은 아치를 가졌다. 테라스에 앉아 우아한 태도로 온천수를 마시며 도회 풍경을 바라보았다.


자메츠카 콜로나다


불편해질 마음은 다 떠나고 더는 남지 않은 듯했다.


멋들어진 거리를 걷고, 무심하게 시선을 빼앗기고 마는 유혹적인 상점들을 기웃기웃, 들락날락. 시간도 무심함에 틀림없었다.



자메츠카 콜로나다. 백 년 전 지어진 '성'과 같은 곳 속에도 온천수 포셋 수도꼭지가 숨어 있었다.


작은 아이는 정들었을 라젠스키 포하레크를 깨트리고 말았다. 사실 너무 컸었다. 이번에는 이 도시 온천 즐기기에 잘 어울리는 조그만 녀석을 데려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분주한 내 모습 또한 우아한 이 도시에 그럭저럭 어울렸을지 문득 궁금하였다.



브르지델니 콜로나다를 마지막으로 온천 놀음도 막이 내릴 터였다.


오십 년 된 현대식 건물 속엔 온천 원천지가 들어앉았다. 이름처럼, 지하 2,500미터에서 온천수가 '용솟음'친다. 힘센 온천수를 마시면 힘이 세지는지가 아이의 궁금증이었다. 다시 한 잔을 채우고 홀짝였다.


나이 더 들면(혹시, 몸이라도 아프게 되면), 카를로비바리가 다시 생각날 것이다. 함께 했던 사람,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도 떠오를 것이다.




뉴에이지 감성이 어울리는 날들



카를로비바리를 곧 떠나기에, 치유의 온천을 품에 안은 단아한 거리의 사람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몸은 마음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통로라고 했다. (치유의 온천수로) 몸을 돌본다 치면 마음이 감사할 일이고, 마음이 감사할 일은 몸도 따라서 감사할 일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여 걱정과 번뇌가 가라앉으면, 그다음으로 '쉼'과 '여유(餘裕)'가 풍요로워지는 게 또한 법칙이리라.


Macaques bathe here.

마카크 원숭이 놀던 이곳에

But today it's just us:

오늘은 우리가 있어.

investment analyst,

투자분석가,

fund manager

펀드매니저

and stockbroker,

그리고 주식중개인,


far from the hurly-

자본시장 난장판을

burly of markets,

멀리 떠나와

now weightless,

이제야 깃털처럼 가벼워져.

boiling slowly

온천욕장 속에서

in the cauldron,

느리게 달아오른다.

(Paul Archer 시인의 Onsen(온천) 중에서)


이제와 생각해 보면,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산골 온천장의 비릿한 수증기 냄새를 맡고 처마 끝 낙숫물 듣는 소리로 '체념'을 깨치고픈 감성은, 여전하기는 하지만, 많이 퇴색하였다. 대신에, 지친 일상을 잊고 잠시 '쉬었으면', '여유(餘裕)가 생겼으면' 싶다.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어떤 온천 마을에서.




온천수 메디컬 케어 (출처: Park Spa Hotel Sirius)

에필로그


(물론, 카를로비바리에서도 피부병 등은 온천에 몸을 담가 치료를 한다. 호텔 내에 온천수로 메디컬 케어를 하는 곳이 드물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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