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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Apr 22. 2024

모뉴먼트 밸리 '붉은 얼굴을 한 자들의 영혼' ③

세계여행 에세이: 미국 서부 모뉴먼트 밸리 (최종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 시인 (1901~1943년)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열 꼬마 인디언 소년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열 꼬마 인디언


어릴 적 딱 일 년 보이스카웃 단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이라며 인디언 수를 세던 노래를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Ten Little Injuns라는 이 노래 최초 버전 (1868년)에서 인디언 소년들이 한 명씩 사라지다 끝내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데, 그 과정의 노랫말을 보면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 수준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One broke his neck and then there were six; 목이 부러져서 한 명이 줄고,

One got fuddled and then there were three; 술에 취해 헤롱 댄 한 명이 줄고,

One tumbled overboard and then there were two; 카누 타다 물에 빠진 한 명이 줄고,

One shot t'other and then there was one; 총에 맞은 한 명이 줄고...



들은 빼앗겼어도 봄은 빼앗기지 않았으리라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의 회고처럼,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의 땅을 먹었다." 그러자, 원주민들은 자유도 잃었다.


땅을 빼앗긴 긴 세월 동안 원주민이 받았을 핍박을 짐작해 보면, "모뉴먼트 밸리 참 멋있다!"가 이곳 여행의 끝맺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찰나의 인연으로 만난 투어 가이드의 말 한마디에서 비록 땅은 빼앗겼어도 영혼은 지키려 애썼을 그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와 또 그 부모의 부모를 떠올려보았다.


"거의 매일 저녁, 아이의 부모와 조부모는 과거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이나 신화 한 가지씩을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아이는 미래에 자신이 나아갈 바를 더욱 분명하고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가 있었다." ('인디언의 영혼' 중에서)



멀고 먼 길을 돌아오다


나바호족이 살던 땅이 1848년 미국 영토로 편입될 당시 콜로라도에서 금맥이 터지자 사람들은 나바호 땅에도 엄청난 금이 매장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다. 1864년, 미국 정부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결사항전하는 나바호족을 제압한 후 600km가량이나 떨어진 뉴멕시코 지역의 수용소로 쫓아냈다. 그리고는 농사를 짓게 하고 기독교로 교화시키고자 했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후에야, 1868년, 미국 정부는 세 곳의 거주지 선택권을 주면서 나바호인들이 원하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고, 나바호인들은 동부의 비옥한 땅, 수용소 인근 목초지, 그리고 모뉴먼트 밸리 지역 중에서 조상 대대로 살던 모뉴먼트 밸리 지역을 선택하였다.


데피안스 요새에서 보스크 레돈도 수용소까지의 Long Walk (출처 :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모뉴먼트 밸리의 기념물들


태초에 바닷속이었던 분지가 융기하여 솟아올라 사암으로 이뤄진 고원지대가 되었다고 한다. 다시 오랜 세월 바람과 물에 깎여 연약한 지층이 부서져 흙이 됐고, 상층의 단단한 부분은 탁자와 기둥의 모습으로 남아 메사가 되고 뷰트가 되었다고 한다.


가이드 말로는 황량한 이곳에도 비가 오면 물이 차올랐다고 한다. 갈라지는 물이란 마을 이름도 그리해서 지어진 것이겠다.


좌측 Mitchell Mesa (미첼 메사) 남동쪽 끝에서 보이는 Three Sisters (서로 손을 잡고 있는 세 자매). 우측 Elephant Butte
John Ford's Point (모뉴먼트 밸리를 서부극 주무대로 삼고 존 웨인을 스타로 부상시킨 영화감독 존 포드)


Water Birth Cliff (물이 탄생한 절벽)와 Sun's Eye Arch (태양의 눈 아치) 지역은 신성한 땅이라서 원주민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입장이 불가한 지역이다. 이곳엔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의 선조들이 남긴 암각화가 아직도 여럿 남아 있다. '바위 둘레 하얀 줄무늬'라고 내가 번역했던 모뉴먼트 밸리를 부르는 나바호 이름이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는 듯하다.



토템폴 (Totem Pole)과 Yei bichei (Yébîchai) 암석 지역 또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신성한 지역이다. Yei bichei(예이비차이, 이비차)는 나바호인들을 창조하고 우주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하고, 토템폴은 제단으로 사용되며, 아직도 일부 원주민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좌측 토템 폴(Totem Pole)과 Yei bichei. 우측 North Window


붉은 얼굴을 한 자들의 영혼


“백인들은 우리 고유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자기네처럼 살게 만들려고 했다. 우리가 백인들에게 인디언처럼 살라고 했더라면 그들도 반발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원주민과 백인의 만남은 전혀 다른 가치관끼리의 충돌이자 기계 문명의 '야만성'에 대한 일방적 탄압이었다.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피의 역사는 정복자들의 위대한 개척사가 되었고, 원주민들은 살아서도 ‘보호구역’에 갇혔다.


세월이 흘러, 아이러니하게도, 원주민들의 사상은 이제 다시 지식 계층의 얼굴 하얀 자들이 배우려 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 하지만, 한 번 빼앗긴 땅을 되찾기란 가능해 보이지 않고, 원주민의 후손들은 현대 미국에 점점 동화되어 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이유로 나바호 땅에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을 만났을 뿐이지만, 아직도 조상 대대로 지켜오고 있을 그들만의 영혼을 느끼고 내 가슴은 뛰었었다.



포레스트 검프는 왜 모뉴먼트 밸리에서 달리기를 멈추었을까


영화에서 포레스트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3년 이상 미국 땅을 달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영감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던 그가 문득 달리기를 멈추고서 "너무 피곤해요. 이제 집에 가야겠어요."라고 말한 곳이 바로 '모뉴먼트 밸리'이다. 하필이면 왜 모뉴먼트 밸리를 '과거를 과거로 남겨두고 전진하기 위해서' 달리기를 멈춘 상징적 로케이션으로 정했을까...


163번 도로 Forrest Gump Point



에필로그: 세상을 살아가는 각기 다른 방식


"얼굴 흰 정복자들은 우리 인디언들은 가난하고 단순하다고 경멸해 왔다. 소박한 인디언 현자의 눈에는 수많은 인구가 한곳에 집중해서 모여 사는 것이야말로 타락의 근원이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도덕적으로도 그러했다." ('인디언의 영혼' 중에서)


모뉴먼트 밸리로 오기에 앞서, 로스앤젤레스에서, 나도 아이들도 류현진 선수가 때마침 등판한 야구 경기를 신나게 관람하고, 볼거리와 탈거리로 가득 찬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더없이 즐거운 '세속적인' 시간을 보냈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각자 태어난 운명 속에서 또 자라는 환경 속에서 행복한 순간도 있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나바호 땅에 태어나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상상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바호 땅에도 와 봤었고, 자기들 방식으로 느끼고 깨닫는 게 있었고, 그런 것들이 살아가면서 어둡고 거친 바다를 만났을 때 문득 생각이 나서 등대와 같이 긍정적인 삶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볼 뿐이다.


좌측 유니버설 스튜디오. 우측 LA 다저스 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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