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포루스의 고등어 케밥 장수

어른 성장통

by 블루밍드림

"젊은 날의 유혹, 그 유혹을 참아내어 참 다행이었다. 싸구려 식당 구석진 자리에 홀로 앉아 밥을 먹던 어느 중년 남자에 대한 시를 쓰고 싶었던 유혹 말이다. 세상에 친구라곤 한 명도 없을 것 같던 그 남자는 계산도 아마 동전을 세어 치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수십 년을 참고 기다린 게 너무 다행이었다."*


엄마가 웬일인지 내 어린 손을 끌어당겨 서문시장 깊은 골목 국수 좌판에 앉혔다. 미리 삶아 똬리를 틀어둔 국수는 세심히 보면 겉이 말라비틀어졌고, 국수 장수는 뜨거운 물에 그놈을 토렴 하여 양푼에 담더니 물 한 바가지를 붓고 고명도 없이 양념장을 끼얹어 널빤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멸치라도 한 마리 띄울 것이지.."


엄마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없었다. 맹물에 말아낸 국수가 제맛을 낼 리가 없었다.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려 30도쯤 각도로 국수 장수를 올려다보았다. 곁눈질로 보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되돌아온 표정은 아주 오만하였다. 되려 더 날카로워진 호객 소음과 내 등을 스치는 행인들의 무음의 수군거림 사이에서 나는 멸치처럼 처절하게 찌부러졌다. 동전 짚어 세어내는 엄마의 손끝도 미세하게 떨릴 것임에 틀림없었다.


"쓸데없는 기억에 마음을 쓰지 말아라."


엄마는 이따금 야단을 하였지만, 그 기억을 어디다 둬야 할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도 옅어지고 또 흩어지고.. 엄마 보다 더 오랜 날들을 살았어도, 노을빛 바람이 부딪히는 카페 창가에 앉았어도.., 새하얀 리넨 식탁보, 가지런히 놓인 실버 커틀러리, 포슬린 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음식, 마주한 앉은 이와 리드미컬하게 눈웃음을 교환해 보아도.., 쓸데없는 기억은 극복의 노력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질겼다. 나도 그만큼 오만해져 갔다.


바짝 약 올랐던 편견과 오만도 수십 년 세월 앞에선 고개를 숙이고서, 싸구려 음식도, 길거리 음식도.. 구석진 곳에서도, 혼자서도.. 이제는 잘만 먹게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해학의 회고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해피엔딩 같았다. 하지만 불편하였다. 오만하지 않다는 건 겸손하다기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라 하건만, 나는 어떨 때 부끄러웠었는지 되돌아보면.., 둘 곳 모를 부끄러움 나부랭이를, 하릴없이, 세월의 그림자 아래로 툭 툭 차버려야 했다.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발릭뒤륌 고등어 케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골든혼 바다 너머로 모스크와 도시와 바다가 조화롭게 반짝였다. 곧이어 기도의 부름이 황혼의 시작을 몰고 오는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스탄불의 택시는 혼잡한 탁심 광장을 유연하게 스쳐 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타 타워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너머로 짙푸른 바다가 겨르로이 드러누웠다. 11월의 게으른 해가 보스포루스 해협 어디쯤에서 이른 오후와 늦은 오후 사이의 경계를 막 넘어설 무렵이었다.


언제였던가, 이스탄불에서의 동화 같은 며칠이 끝이 나던 날, 작은 아이는 이 도시가 너무 좋다며 눈물을 흘렸었다. 그 아이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할는지 문득 궁금하였다. 익숙한 풍경 탓이라 여겼다.


갈라타 다리 위의 낚시꾼


갈라타 다리 앞에서 택시를 멈춰 세웠다. 다리를 완벽하게 점령한 낚시꾼들 곁을 기웃거려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골든혼 바다를 다 넘도록 어째 공친 이들만 보였다.


유럽과 아시아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여객선이며, 유쾌한 유람선 호객꾼이며, 정신없는 관광객이며, 서로를 경계해 마지않는 소란스러운 틈을 비집고 갈매기가 낮게 날았다.


에미뇌뉘 선착장 풍경


여객선도 유람선도 아닌 이상한 배들은, 마치 공장처럼, 파도의 리듬에 맞춰 고등어를 굽고, 겉이 딱딱한 터키빵의 보드라운 속살을 가르고, 고등어를 끼워 넣어 '발릭에크멕' 케밥을 연속적으로 찍어냈다. 터키가 튀르키예로 개명한 긴 세월에도 에미뇌뉘 선착장의 풍경은 변한 게 없었다.


목이 긴 질그릇에 양고기며 채소들을 집어넣고 밀봉한 뒤 화로에 천천히 익혀내는 클레이 팟 케밥 정도는 되어야지.. 사실 난 길 위의 고등어 케밥 따위에 흥미를 둘 이유를 오랫동안 찾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나라 저나라 미식을 소개하는 한 잡지에서 '발릭뒤륌'(바게트 빵 대신 '난' 같은 납작 빵에 구운 고등어를 싸서 먹는다. 발릭에크멕의 변종이랄까.) 예찬을 우연찮게 보았고..


에미뇌뉘 쪽에서 바라보이는 갈라타 타워와 갈라타 다리


"발릭뒤륌을 처음 개발한 건 제가 아니었어요."

"이 특별한 요리의 천재성은 바로 에민 우스타의 것이지요."


기자가 한껏 추켜세운 유명 식당 주인의 기이한 고해성사에 내 오랜 길거리 터부에 금이 갈 정도로 뜻밖의 호기심이 무의식으로 꿈틀거렸다.


위스퀴다르행 여객선이 기적을 울렸다. 때맞춰 바다 건너 갈라타 타워 그림자 아래 조금은 한가할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슈퍼 마리오 에민 우스타'라는 그 고등어 케밥 장수를 찾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열심히 노력해도 반드시 그 결과가 좋으란 법은 없는 인생에서는 뭔가 비범한 능력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비범한 능력은 별것이 아니다. 평범한 일들을 특별하게 바라보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에 바로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 있다."**


납작 빵을 굽는 슈퍼 마리오 에민 우스타 (사진 우측 아래)


햇살 속에 나앉은 슈퍼 마리오의 화로에 한걸음 다가섰다. 빛바랜 분홍빛 회칠 벽에 그려진 두 갈래 콧수염과 어두운 살갗의 뚱뚱한 남자, 그리고 눈앞에서 납작 빵을 굽고 있는 또 다른 남자를 신속하게 대조하였다. 닮은 듯 아닌 듯.. 세월 탓이 분명하였다.


에민이란 이름의 우스타('아저씨'랄까 '달인'이랄까)는 고집스러운 이스탄불에서 참으로 엉성한 시도를 하였다. 고군분투가 아니었을까. 겉이 딱딱한 빵을 버리고 '유프카' 납작 빵으로 고등어를 돌돌 말아냈다. 보스포루스 길거리 음식의 사생(私生) 걸작 '발릭뒤륌'('생선말이'라는 뜻)의 탄생이자 슈퍼 마리오 영웅담의 서막이었다.


발릭뒤륌 @mcconaughey Hetana Blog


한쪽 손으로는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다른 손으로는 느긋하게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뒤집었다. 아마도 수십 년을 그래 왔겠다. 고등어 가시를 바르고, 구운 양파와 토마토와 양상추를 얹고, 석류 사워 소스 같은 걸 더하였다.


비범한 능력이란 게 참 별것 없다 싶어 헛웃음을 피식거렸다.


바다를 경계 짓는 파라솔 그늘 아래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았다. 화로가 뿜어내는 등 푸른 생선의 향기는 바닷바람에 올라타 거만하게 흔들리고.., 늦가을 한 때의 겸손한 빛은 어느 순간 흩어질 테고, 아잔 소리 드높을 때 바다 건너 모스크와 번잡한 도시는 붉은색으로 반짝거릴 터였다.


수십 년이나 유혹을 참아낸 그 시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해피엔딩을 원하는 것처럼, 길거리 음식을, 어정쩡하게 앉아, 추릅추릅 잘도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해괴하게도, (기억의 오류를 완벽하게 배제하지 못하는) 난장의 맹물 국수와는 또 다른 원인으로 오만의 길을 탐색하였다.


'지금에라도 '자수성가로 성공하는 법' 같은 책을 한번 읽어봐야 하나?'


아무래도 내겐 슈퍼 마리오 케밥 장수 같은 비범한 능력 따윈 없는 것만 같았다.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어린 아들과 함께 있을 때면 너무나 행복합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이따금씩 아들 대신 제가 슬퍼합니다."***


어쩌다 온 가족이 고깃집에 간 날이면 아내는 습관처럼 아이들 앞접시를 채우기에 바빴다.


"엄마 없는 놈은 어디 서러워 살겠나."


웃자는 말이지만, 어느 날엔가, 대답 없을 물음을 진지한 독백으로 던져보고 싶었다.


'아주 옛날에 말이야.. 엄마에게 난 어떤 아들이었어?'


엄마 품에서 서린 칼날 같이 매정한 세상을 회피하던 아이가 이제는 다 큰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였던 나, 아버지인 나, 에피소드처럼 나뉜 그 둘 간의 상관관계가 무엇일지.. 고민되었다.


이것은 나의 과거,

내 결코 버리지 못하리라.

이것은 나의 이상(理想).

이것은 아주 어렵지.

James Fenton의 시 'The Ideal'(이상) (1983) 중에서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아이들 틈을 비집고 고기 한 점 집어 올렸다. 대화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 채 보스포루스의 슈퍼 마리오 케밥 장수를 만나본 거며, 자수성가 백일몽 이야기며, 꺼내볼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작은 아들, 너 옛날에 터키 갔을 때 말이야, 집에 돌아가기 싫다며 막 울던 거 아직 기억나니?"



*Billy Collins의 시 'Old Man Eating Alone in a Chinese Restaurant' (2007)을 재해석하여 번역하였음

**아라키 히토미의 '기분 좋은 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서평 중에서

***Joshua Rothman의 'Becoming You' (202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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