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의 연, 가자의 미사일

by 블루밍드림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선생님.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이 아파르트헤이트* 벽을 세우고 우리의 마지막 하늘까지 점령해 버린 그 이후의 삶에 대해 가르칩니다.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선생님."**


2009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가자(Gaza) 전쟁이 멈춘 게 고작 반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피폐한 날이기도 하였다.


수 천명의 아이들이 폭발물 검사를 꼼꼼히 마친 가자지구 북쪽 해변을 가득 메웠다. 전쟁, 파괴, 고립 따위를 숙명으로 알까 봐서, 행여나 '정상적인 것'에 관한 감각을 잃을까 봐서, 유엔은 가자 아이들이 하늘 높이 연을 날려 올리도록 힘껏 독려하였다.


3,170개의 연이 고립의 높이 보다 훨씬 더 높은 고도에서 하늘을 날았고, '가장 많은 연을 동시에 날린' 기네스 세계기록이 수립되었다.


가자 지구 알와하 해변에서 연날리기 세계기록을 수립하는 팔레스타인 아이들 @UN Photo


"오늘만큼은 우리도 자유를 누릴 수 있었어요."


지난 공습 때 집을 잃었다는 열네 살 소녀의 긴장한 손끝에서 연줄이 팽팽하였고, 연은 오랫동안 높은 고도에서 하늘을 누볐다. 연이 바람을 이겨내는 숨 찬 소리는 하늘과 아이를 이어주는 영적인 메시지였다.


이듬해에는 6,198개의 연이 가자 하늘을 힘껏 날았다. 그 정도의 위세라면 이스라엘 쪽에서도 아주 잘 보일게 틀림없었다.


연날리기 세계기록을 수립하는 가자의 소녀 @UN Photo


2011년 어느 봄날, 또 하나의 절망적 소식이 들려왔다. 중국 산동성 하늘 위로 만 개가 넘는 연이 날아올랐단다. 가자 아이들의 자랑이자 존재의 희망은 몇 해를 못 버티고 무너져 내렸다.


그해 어느 여름날, 만 오천 가자 아이들 표정엔 결의가 가득하였다.


제대로 날지 못하고 땅으로 곤두박질친 것들을 빼고도 무려 12,350개의 연이 하늘을 빼곡히 메웠다. 수 천 수 만개의 꿈을 실어 연은 날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은 초강국 중국을 이겨냈다.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유엔 난민캠프를 공격한 지 불과 몇 시간 후의 기적이었다.


"우리가 세계기록을 깼어요.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똑같은 존재'.. 무엇이 겨우 열하나열둘열셋열넷 먹은 아이들에게서 아이다울 권리를 빼앗고 성숙의 프레임을 씌운 것일까. 연을 거두고도, 여러 날, 나는 꽤나 갑갑하였다.


몇 번의 여름이 다시 오고.. 가자 하늘의 연에 관한 기억도 시나브로 옅어져 갔다.




"침략자들은 꽃에 관한 시를 쓰지요. 난, 데이지 꽃이 되려다 말고 이스라엘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아이들.. 그 얘기를 할 거예요."***


몇 번의 여름이 다시 지났다. 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어울려 요르단 땅에 살고 있었다.


성지순례 지인들을 이끌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세례를 받았다는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를 찾다 보면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는 요르단 강을 훌쩍 뛰어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어설픈 도움닫기 만으로도 가능한 거사이지 싶었다.


미련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딱 한 번, 베다니 북쪽의 킹 후세인 브리지 국경을 넘어, 강을 건너, 육로로, 이스라엘로 넘어갔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에워싼 벽 @independent


텔아비브로 가는 길은 뜻밖의 고난이었다. 젖과 꿀은 대체 어디서 흐를까의 문제는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서안(West Bank) 지구 경계를 따라, 신작로를 따라, 높이를 모르게, 끝나는 곳을 알 수 없게, 거대한 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벽 안에 또 벽이 있어 그 길이가 700 km를 넘는다 하였다.


차를 향해 돌이 날아들기도 한대서가 아니라, 고립된 사람들이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보는 게 그냥 갑갑하였다. 비행기를 타고 벽이 선 자리 위 높은 고도를 날았다면 굳이 몰라도 될 일이었다.


"나는 '벽'이 강대국 중 하나가 몰래 개발한 신무기일 거라고 추측했다. 아마 그 무기는 땅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고 사람과 동물만 살해하는 이상적인 무기일 것이다."


마를렌 하우스호퍼의 소설 '벽'에 대한 갑작스러운 기억은 끔찍한 불청객이었다. 벽 안에 갇혀 사는 게 당연한 숙명인 줄 알도록 언젠가 사람들의 기억이 조작될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한 두려움이 뒤를 이어 따라왔다.


서안지구가 이럴진대, 던지고, 쏘고, 터지고, 다치고, 죽는.. 그런 종류의 소식만 들려오는 불가촉의 가자 땅은 훨씬 더 끔찍한 고립무원일 게 분명하였다.


몇 번의 여름이 지났길래, 가자 하늘의 연은 완전히 잊힌 줄만 알았다.


그런데, 거대한 아파르트헤이트 벽 너머로 수 천 수 만 개의 연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무시무시한 환영을 보았다.




"사이공의 하늘은 수백 가지 종류의 아이들 웃음과 멋진 건물로 변해가는 콘크리트의 향취를 품었다. 그 위로 점점이 연이 날아올랐다. 연이 나는 풍경은 자유로운 힘을 관찰하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었다."


몇 번의 여름이 새로 오고 또 지나갔다. 그리고, 난 중동을 떠났다.


사이공이란 옛 이름이 여전히 잘 어울리는 호찌민에 열흘 넘게 머물고 있었다. 그때껏 할 줄 아는 베트남 말이라곤 감사하다는 뜻의 '깜온' 밖에 없었다. 그것도 중국말 '감은'(感恩)이 어원이라는 흥미로운 특징을 기억한 덕이었다. 쉐라톤 카지노 마저 지겹던 어느 날 호텔 컨시어지가 투티엠(Thủ Thiêm)을 소개하였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먹고 마시고 연을 날리는 곳이라고 하였다. 기대라곤 1도 없이 "깜온"을 말하였다.


연, 사이공 투티엠 하늘을 날다


도시 개발이 성한 듯 건물들이 높은 고도의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스카이라인이 경외로운 지경에 이르기까지는 열댓 번의 여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도 싶었다. 아직 개발이 안된 개발 지구를 위해 도로가 먼저 놓였고, 그 옆으로 빨강 파랑 플라스틱 의자가 매혹적 구도로 배치되었다.




헬륨풍선, 과일주스, 군것질거리, 빨강 의자에 앉은 남자, 파랑 의자에 앉은 여자, 하이톤의 현란한 억양이 뒤섞여 거리를 만들고.. 똑같은 패턴이 투티엠을 뒤덮어 보편적 풍경을 이루었다.


그 모든 혼돈을 비집고 아이들의 손끝에서 연이 날았다. 연줄이 풀리고, 연줄이 감기고, 아이의 소망은 가볍고, 부모의 소원은 무겁고.. 눈부신 태양이 연 머리에 내려앉으면, 아이들 웃음은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여름 오후' 색깔 크레파스로 그려낸 사이공의 하늘이 수백 개의 연을 한꺼번에 품었다. 비쌀 필요가 없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 그래서였을까..


다를 것 없는 하늘인데도

사이공의 아이는 연을 날려 웃고

가자의 아이는 연을 쥐고 절망한다.

다를 이유 없는 바람인데도, 서로 다른 숙명을 실어 나른다.

숙명은 서로 다른 시를 쓴다.

연은 존재의 자유를 시험하고

미사일은 존재를 망각한다.

연은 희망을 묻고

미사일은 대답을 지운다.


바송 다리에서 바라보이는 사이공 도심과 사이공 강


열댓 번의 여름이 지났길래, 이제 그만 잊은 줄 알았다.


투티엠을 떠나 호텔로 돌아오는 길.. 도도하게 흐르는 사이공 강이 슬펐다.


세계기록의 그 아이들은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었겠다.




"내게 여름은 순환하는 계절이었다. 그 아이들은 어땠을까?"


2024년의 어느 여름날, 가자로부터의 속보는 날 몸서리치게 하였다.


"걔는 아직 어려요. 덩치만 큰 거라고요!"


아이의 왼팔은 뼈가 드러났고 벌어진 상처에선 피가 쏟아졌다. 군인들이 떠나고 엄마는 아들을 껴안았다. 온몸이 피로 얼룩졌고 바닥은 축축하였다. "괜찮아요.." 작별 인사를 품은 여린 눈빛이 위로 향하였다. 엄마를 샅샅이 훑던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그 여름날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자지구 누세이라트 난민캠프의 아이들이 죽어나갔다. 죽은 아이들은 숫자로만 존재하였다. '최소 64명'이었다.


"내 몸은 텍스트 바이트와 단어 수의 제한에 맞춰진 TV 속 대학살의 장면과 같습니다.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선생님!"**


가자발 속보는 늘 '사망 몇 명 부상 몇 명' 짧은 길이 텍스트와 숫자로 타전되었다.


시체가 병원으로 옮겨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가자의 소년들 @Euro News


2023년 10월부터 2년간 아이들 죽음의 숫자는 '최소 2만 명'이었다.**** 가자 하늘을 날던 세계기록 연 보다도 더 많았다. 용케 살았어도, 어디 외상성 부상만 괴롭겠는가.


올여름 가자로부터의 속보는 정말이지 날 몸서리치게 한다.


토요일 새벽 이스라엘 군의 플레어가 가자의 하늘을 밝히며 공습을 시작하였다 @NBC News


가자의 하늘은

아잔과 공습 사이렌 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하늘은

뜨거운 금속의 포효로 쩍쩍 갈라진다.

폭력 공포 피난 굶주림 죽음 상실은

플레어 섬광에 선명해진다.

집 희망 꿈 미래는

미사일 파편이 집어삼킨다.




세계기록의 그 아이들.. 플레어와 미사일이 쏟아져 내리는 검은 하늘을 뚫고서라도.. 다들 별 탈이 없어야 하겠건만.


아이들의 아이들도 연을 날릴 수 있을까.. 엄마아빠처럼 또 하나의 기적을 세울 수 있을까..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백인우월주의를 공식화하고 흑인을 차별하고 억압하였던 정책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억압적인 정책과 제도를 비판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Rafeef Ziadah의 시 'We Teach Life, Sir' 중에서

***Noor Hindi의 시 'Fuck Your Lecture on Craft, My People Are Dying' 중에서

****'세이브 더 칠드런' 통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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