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 문구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
일반 사람들의 묘비 문구는 따스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차가우며,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성격이 다르듯 묘비 문구도 제각각 다르다.
1902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우스운 묘비 문구(Funny Epitaphs, 저자 Wentworth Hamilton Eaton)"에는 이런 묘비 문구가 실려 있다.
"여기 리처드 덴트 잠들다.
이곳이 리처드의 마지막 공동주택이다."
_리처드 덴트. 남성. 끝내 임차인으로 죽은 19 세기 미국인.
요즘도 '영끌'이니, '내집마련'은 포기했니 말이 많다.
백 년도 전에 살았던 미국인 리처드에게서 나는 지금을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본다.
리처드는 내집마련이 하고 싶었나 보다.
노력도 하고, 불평불만도 늘어놓았을 거다.
그러나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임차인으로 생을 마감했겠지.
얼마나 평소에 내집마련 노래를 불렀으면,
주변 사람들이 묘비 문구로 이 사실을 남겼을까.
사실 임차인의 역사는 오래 됐다.
이천 년 전인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도 월세를 내고 사는 공동주택 임차인들이 있었다.
높은 층으로 올라갈 수록 물을 구하기도 어렵고, 대소변 처리 문제로 위생이 엉망이었다.
무엇보다도 고층으로 갈수록 화재가 났을 때 생존 확률이 뚝 떨어져,
도시 빈민들이 사는 장소가 되었다고 했다.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알베르토 안젤라. 까치. 2012.)
백 년 전 미국인 리처드나, 이천 년 전 로마 빈민이나 임차인의 설움은 마찬가지였다.
씁쓸해지기도 하면서, 리처드에게 묻고 싶은 말이 생긴다.
"임차인은 많지만, 모두가 묘비 문구로 임차인의 설움을 남기진 않아요. 당신은 이사를 몇 번이나 했나요? 대체 무슨 사건을 겪었나요? 왜 이 문장이 마지막 문장이어야 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