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 라이팅'을 읽고
명료하면서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카피라이팅 책을 연달아 읽게 됐다.
얼마 전 리뷰한 '카피라이터의 표현법'에 이어 오늘은 '컨셉 라이팅'이라는 책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책의 저자인 노윤주 작가는 한컴, 이노션, 대홍기획 등의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이자 기획자(AP)로 일한 20년 차 광고 전문가이다. 전문성을 살려 2019년부터 글쓰기 워크숍 <인생 첫 카피>를 진행해 왔다. 자신의 경험, 그리고 워크숍 수업 내용 및 수강생들의 카피라이팅 사례를 엮어 책으로 출간했다.
“갈수록 설득해야 할 사람이 많아지는데, 제가 쓰는 문장이 명료하지 못한 것 같더라고요.”
“회의시간에 비슷한 말을 하는데 제 말에는 주목도가 떨어지는 거예요.”
“회사에서 엑셀만 보다 보니 숫자라면 자신 있는데 글을 쓰려면 멍해져요.”
“업무상 메일을 많이 쓰는데요. 제 메일을 읽게 하려면 제목부터 달라야겠더라고요.”
저자는 <인생 첫 카피> 수업을 시작할 당시 마케터가 주요 수강생일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수강생의 직업은 천차만별이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회의에서 남다르게 말할 수 있는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메일을 열어보게 하는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구성원에게 비전을 공감시키는 한 줄이 바로 카피였던 것이다. 사실상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카피라이팅 기술이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리는 문장에는 기발함이나 논리력보다 ‘문제 해결력’이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무척 공감한다. 누군가 장황한 보고를 할 때면 “그래서 한 줄로 설명하면 뭐죠?”라고 되묻게 된다. 이 말에는 ‘그래서 당신이 하려고 하는 게 나(또는 우리 회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죠?’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보고 상황뿐 아니라 세일즈 피칭이나 마케팅 메시지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설명해도 고객은 크게 관심 없다. 가장 듣고 싶은 한 문장은 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는가이다. 저자는 이를 '컨셉'으로 정의한다. 컨셉에 '문제 해결력'이 담겨 있어야 듣는 순간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고, 긴 설명 없이도 주변에 퍼져나가기 쉬운 한 줄, 즉 팔리는 한 줄 카피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컨셉이 생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컨셉을 만드는 도구로 다양한 글쓰기 게임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제목을 '컨셉 라이팅'으로 지은 이유이다. 지난번 리뷰한 ‘카피라이터의 표현법’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말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저자는 ‘메모(글쓰기)’를 강조한 바 있다. 오랜 기간 카피라이터로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글로 끄적이는 습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연습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서로 다른 세 개의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어 보는 게임이다. 예를 들어 ‘숨’, ‘러브’, ‘다이브’라는 단어의 조합이 ‘숨 참고 러브 다이브’라는 아이돌 노래의 제목이 되었다. ‘무계획’, ‘완벽’, ‘계획’의 조합은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야’라는 기억에 남는 대사가 되기도 한다. ‘술’, ‘좋다’, ‘여행’이라는 세 단어의 조합은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라는 에세이 속 문장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소설가 윌리엄 플로머는 이런 말을 했다. “창의성이란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것을 연결하는 힘이다.” 그의 말처럼 낯선 단어 연결하기 게임은 창의적인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연습이 된다.
책에서 소개한 내용은 아니지만, 낯선 단어를 연결하는 나름의 방법을 만들어 봤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가볍게 산책에 나선다. 간판, 배너, 광고, 벽보 등 거리에서 보이는 단어를 휴대폰에 메모한다. 특별한 규칙은 없다. 눈에 띄는 아무 단어나 적으면 된다. 아래는 오늘 산책하며 눈에 들어온 단어들이다.
[산책하며 발견한 단어]
국밥, 소통, 수다, 대가, 탄탄면, 박물관, 공방, 무단, 평범, 비범, 돌봄, 해산
다음으로 관심 있는 주제의 단어들을 나열한다. 자기 사업이나 브랜드 관련 단어일 수도 있고, 취미나 관심사 단어도 좋다. 아래는 내 글쓰기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관심 단어]
"글쓰기", "독서", "일상", "브랜드", "창업", "스타트업", "콘텐츠"
이렇게 나열한 단어들 중 세 개를 뽑아 조합을 만든다. 산책하며 발견한 단어 두 개와 관심사 단어 한 개를 조합하거나 발견 단어 한 개와 관심사 주제 두 개를 조합해도 된다.
소통, 해산 + "창업"
대가, 돌봄 + "브랜드"
무단, 박물관 + "콘텐츠"
비범 + "일상", "글쓰기"
이제 세 단어의 조합을 활용해 자유롭게 문장을 만들어 본다.
소통, 해산 + "창업" → 소통의 실패는 창업팀의 해산
대가, 돌봄 + "브랜드" → 브랜드 돌봄의 대가 되기 → 브랜드 육아 마스터하기
무단, 박물관 + "콘텐츠" → 무단 사용 가능한 콘텐츠 박물관
비범 + "일상", "글쓰기" → 평범한 일상이 비범해지는 글쓰기
잠시 산책하며 발견한 단어를 관심 있는 주제와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다채로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독서, 유튜브, 광고를 보다가 눈에 띄는 단어들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낯선 단어와 관심사 단어를 조합하다 보면 기존 생각으로 떠올리지 못 한 창의적인 문장을 만들거나 새로운 주제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카피라이팅 관련 책으로 저를 이끌고 있네요. 최근 읽은 책이 모두 20년 이상 카피라이터를 지낸 분들이 쓴 책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글쓰기를 주제로 다양한 책 소개와 함께 제 생각과 경험을 글로 옮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