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2번째 나라, 2번째 도시
뉴욕에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까지는 메가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신, 이모님께서 버스 안에서 먹으라고 도시락을 싸주셔서 맛있게 먹으며 잘 도착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도 추웠던 뉴욕과 달리 워싱턴 D.C. 의 날씨는 굉장히 따뜻했다.
뉴욕에서 버스로 5시간 걸려 왔을 뿐인데 초여름 날씨라니..
첫날도 따뜻했는데 우리가 워싱턴 D.C에 머무는 내내 이상 기온으로 2월임에도 낮 최고기온 27도, 최저기온도 9도일 정도로 날이 좋다 못해서 더워서 반팔에 봄 재킷 정도만 입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니게 됐다.
어쨌든 막 도착했을 때 추워서 잔뜩 경직되고 웅크려져 있었던 몸이 온화하고 따뜻한 날씨에 펴지는 거 같고 따뜻한 봄이 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 좋은 기분으로 유니언 역에서 숙소로 가기 위한 교통카드를 구매하다가 우리의 세계 일주 여행 중 처음으로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일을 당했다.
교통카드를 구매하는 기계 앞에서 남편과 내가 자리를 잡고 티켓을 구매하려고 하는데 한 현지인이 다가오더니 본인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친절한 현지인의 도움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돈을 넣고 나서 티켓을 뽑기 위해서 아래 티켓 분출구로 시선이 내려간 틈에 화면의 취소 버튼을 눌러서 위에 현금 넣는 곳에서 환불되는 돈을 챙겨서 가버린 것이다.
미국 대륙에 오고 나선 낯선 이의 친절에도 긴장을 풀었는데 그러자마자 눈뜨고 20불을 날리니 화가 났다. 그 사람을 쫓아가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잡아봐야 그 사람이 그런 적 없다고 발뺌을 하면 현지인과 이방인인 우리 사이에서의 다툼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큰 짐을 메고 있었고 또 덩치 큰 남자가 혹시라도 위협을 가하면 그게 더 위험하니 포기하기로 하고 다시 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그냥 적선했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낯선 이의 친절에는 감사하되, 우리의 소지품과 돈은 잘 간수하는 긴장모드를 다시 켰다.
사기를 당한 후 남편이 역에 있던 역무원에게 사기꾼을 만난 일을 설명하며 워싱턴 D.C. 의 첫 이미지가 사기라 너무 아쉽다고 했다. 사실 난 역무원한테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역무원이 우리가 사기꾼에게 날린 금액만큼은 아니어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역사에서 수기로 발급하는 임시 교통권(Trip Pass)에 본인의 서명을 넣어 두 사람분을 만들어줬다.
출발지 역에서는 그 종이를 보여주고 도착지 역에서 그 종이를 역무원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어 금전적인 손해도 덜 봤고 사기꾼으로 인해 생긴 워싱턴 D.C. 에 대한 부정적인 첫인상을 지울 수 있었다.
우리 숙소는 워싱턴 D.C. 의 행정지구 쪽이 아닌 주거지역에 있는 단독주택이었고 1층의 방과 욕실은 주인이 사용하고, 반 층 밑의 방 2개와 욕실은 투숙객이 사용하면서 거실과 주방을 함께 쓰는 집이었는데 우리가 머무는 기간 중 하루는 다른 투숙객이 있었지만 다른 날은 우리만 있어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유쾌하고 사교성이 있는 젊은 남자 혼자 사는 집인데 집이 굉장히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무엇보다 미국인임에도 한국처럼 신발은 현관 앞에 벗어두고 집 안에서는 맨발(또는 실내용 슬리퍼)로 다니도록 해놔서 집 전체가 먼지가 없어서 좋았다.
따뜻한 날씨와, 예상치 못한 역무원의 도움, 그리고 깨끗한 숙소와 성격 좋은 집주인 덕분에 별 기대 없이 미국의 수도란 이유로, 그리고 정치, 테러 등 미국 정부 기관과 관련된 영화에 한 번씩 나오는 백악관과 워싱턴 기념탑은 미국에 왔으면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여행지에 넣었던 워싱턴 D.C. 가 첫날부터 마음에 들었다.
첫날부터 사기를 당했음에도 이렇게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전환될 수 있다니! 같은 일을 당해도 그 후에 만나지는 사람과 행동에 따라서 그 장소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우리도 우리나라, 우리 동네에 오는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고 도움을 구하면 기꺼이 응하자는 마음을 먹게 됐다.
첫날은 집에 가까운 마트가 어디 있는지 집주인에게 들은 정보로 저녁거리와 아침거리만 간단하게 장을 보고 이동하는 날 배낭으로 인해서 지친 몸을 쉬며 다음날 아침부터 또 바쁜 여행자 모드로 돌아다닐 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