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2번째 나라, 3번째 도시
워싱턴 D.C. 에서 야간 기차 17시간을 타고 시카고에 도착했다.
동양인들보다 전반적으로 키도 크고 덩치 큰 사람도 많은 미국치고 국내선 항공기는 좌석이 넓지 않아 의아했는데 기차는 내 경우 다리를 쭉 펼 수 있을 정도로 좌석이 넓었다.
기차에 짐을 놓는 곳이 따로 없고 우리 배낭이 너무 뚱뚱해서 우리 좌석 위의 선반에 올려지지가 않았는데 남편은 두 다리 사이에, 나는 내 다리 밑에 배낭을 놓고 가도 불편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또, 지난번 워싱턴 D.C. 에서의 사기꾼 사건(미국, 워싱턴 D.C. 1편) 이후 이동하는 날 짐도 많고 신경 쓸 것이 많을 때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했는데 마침 큰 배낭 두 개를 서로 자물쇠로 연결한 후 우리 밑에 두고 갈 수 있으니 야간 기차에서 잠이 들어도 도난에 대한 불안함이 덜했다.
시카고에서는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 시카고에 살고 있는 내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여행 자체보다 친구 집 방문이 더 기대가 됐고 남편도 같이 아는 친구라 나뿐 아니라 남편도 친구를 만날 생각에 들떴다.
여행 막바지가 되어가니 체력 회복, 특히 장거리 이동 후에 컨디션이 좋아지는 시간이 더뎌져서 이틀 밤은 친구네 집에서 쉬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차가 없으면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라 친구의 남편이 시카고 유니언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친구 남편이랑은 친구의 결혼식과, 집들이로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라 친구 없이 먼저 만났음에도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가득했고 대화를 나누며 가다 보니 집까지 금세 도착했다.
친구 남편이 공부를 하는 대학은 목사님들이 더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다니는 신학교다 보니 가족단위로 유학을 오는 경우가 많아 가족이 함께 올 경우 우리나라의 빌라 같은 구조의 집이 기숙사로 제공되고 있어서 우리가 머무는 이틀 밤은 두 사람의 딸 방을 우리가 사용하기로 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친구가 정성껏 차려준 밥으로 식사를 하고, 야간 기차를 타고 온 여독을 풀기 위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친구랑 어떻게 지내는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 그 시간 동안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하셨는지를 나누고, 친구는 남편분이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한인교회에서 부목사님으로도 섬기고 있는데 외국에 있는 한인교회 목사 사모님으로의 생활은 한국에 있을 때와 어떻게 다른지, 자녀 양육은 어떻게 하는지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이런 시간이 오랜만이라 흐르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친구네 토요일에 도착해서 다음날 예배를 가야 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더 늦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 예배를 위해서 친구가 친구 가족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한인교회에 같이 가서 예배를 드릴지, 아니면 대학 내 현지인들이 드리는 예배를 같이 드릴지 선택지를 줬을 때 우리는 따로 대학 내 교회를 가는 걸로 결정했다.
목사 부부로 원래 성도들을 신경 써야 하는 친구 부부가 우리까지 챙기게 되길 원하지도 않았고, 한번 가면 그곳에서 저녁 일정까지 소화하고 돌아온다 하여 우리는 현지인 교회에서의 예배를 드린 후 기숙사 근처를 자유로이 둘러보기로 했다.
대학 내 기숙사 주변에 할 것이 많지 않아 소소하게 마트를 다녀왔는데 말이 "소소하게"지 모두 차를 타고 다니는 동네다 보니 가장 가까운 마트까지 가는데도 걸어서 30분 거리였다. 넓은 미국이다 보니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 브랜드의 마트가 들어가 있어 뉴욕과 워싱턴 D.C. 와는 또 다른 마트까지 산책 겸 천천히 걸어가서 구경하다 보니 이것 자체가 하나의 여행같이 느껴졌다.
다시 30분을 돌아가야 하는데 많은 짐을 들고 걷는 건 어려울 거 같아서 최소한의 간식만 사서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친구네 있는 동안 우리의 일정은 "쉼"이었다.
마트까지 산책을 하거나, 농구 코트에 굴러다니는 공을 주워서 잠시 농구 놀이를 하기도 하고, 친구 딸이랑 대학교 내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도 갔다.
그리고 저녁엔 친구의 식사 준비를 돕고 친구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나누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별거하지 않았는데도 2박 3일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다시 헤어지는 시간이 됐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겪은 좋은 사람들과의 이별해야 하는 시간은 몇 번을 겪어도 적응이 안 되고 서로 멀리 살고 있어 다음 만남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헤어짐을 애틋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