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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쟁이 Jun 24. 2024

#5. 나쁜 일은 항상 한꺼번에 일어나더라.

그날의 기억

나쁜 일들은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했던가?     


 눈 상태가 그렇게 되고 나서 아마 5월쯤이었을까? 급격한 스트레스로 이석증과 전정신경염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새벽에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 깼는데, 침대에 앉았더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일어서서 눈을 뜨니 온 세상이 다 뱅글뱅글 돌아서 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 눈을 감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이석증이라고 하셨다. 이석증은 귓속 돌(이석)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원래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귓속 림프액을 이리저리 돌아다 엉뚱한 자리에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병이다. 병원에서 이석치환술을 받아 원래 자리로 돌을 집어넣었는데도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시간이 지나도 어지러운 증상은 가실 줄을 몰랐다.   

  

 어지럼증으로 유명한 또 다른 로컬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를 해 보았더니, 전정신경염과 이석증이 같이 와서 어지럼증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거라 하셨다. 우리 귀 안의 전정 기관은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몸의 위치를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전정 기관에 염증이 생겨서 그런 거라 하셨다. 약은 증상을 덜 느끼게 해 줄 뿐 치료제가 아니라서 집에서 푹 쉴 수밖에 없다고 고개를 돌릴 때 조심하라 하셨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어지럽고 숙여도 어지럽고 걷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머리가 조금만 흔들려도 세상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왜 나만 이렇게 오래가는 거지?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러다 어지럼증이 영영 낫지 않으면 어쩌지 싶었다.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어지럼증이 계속되자, 로컬 병원 원장님은 본인이 사사받은 교수님이 계신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해 보라셨다. 대학병원 어지럼증 센터 정밀 검사를 해 보았더니 ‘전정신경 장애’ 란다. 이미 왼쪽 귓속에 있는 전정 기관은 기능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고 하셨다. 오른쪽과 왼쪽의 균형 감각이 맞질 않으니 계속 어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과 왼쪽의 불균형을 뇌가 적응을 하면, 조금씩 좋아질 거라고 하셨다.           


또 왼쪽이라니. 왼쪽 눈에 이어 또 왼쪽 귀. 연이어 왼쪽이라니...

귀 이상도 눈 때문인 것만 같아서 뭐라 형용할 수 없이 절망스럽기만 했다.   

    

 눈을 떠도 감아도 왼쪽 눈 옆에서는 광시증으로 천둥번개가 치듯 번쩍번쩍거렸다. 일어설라치면, 어지럼증으로 온 세상이 뱅글뱅글 돌았다. 앉아 있어도 잔잔한 어지러움이 계속되어 구토가 날 것만 같고,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어지러웠다. 조금만 걸어도 뇌가 흔들릴 때마다 세상이 흔들린다. 누워서 고개만 조금만 돌려도 어지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 그냥 계속 어지러웠다.


 어지럼증 약을 먹으면 멍하니 잠만 왔다. 잊으려면 약을 먹고 잘 수밖에 없다. 약은 치료제도 아니고, 어지럼증을 잊게 해 줄 뿐이라는데 약을 먹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싶어 억지로 약을 먹지 않고 버텨도 봤다. 눈 떠 있는 내내 어지러운데, 눈을 떠 있는 내내 옆 쪽은 자꾸만 번쩍거리는데 내가 뭘 하고 싶었을까. 뭘 할 수나 있었을까. 눈을 뜨게 되면 맞이하는 세상이 이러니, 자꾸만 눈을 감고 싶고 자꾸만 제대로 살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봐 두렵고 겁이 났다.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무책임하게 병가를 내고 들어갔다고 동료들에게 욕을 먹었다. 직장 상사 C는 대체 인력이 바로 구해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힘들다며 여기저기 말씀을 하고 다니셨단다. C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으시겠다 싶었다. 힘들면 나랏님도 욕한다는데, 본인 일이 번거로워지셔서 그럴 수도 있으셨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충격이었다. 그냥 나오지. 왜 병가를 냈는지. 꾀병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뉘앙스로 말을 흘리셨단다. 꾀병이라니... 온 세상이 어지러워 삶의 의욕마저 꺾이고 있는 나에게 꾀병이라니.. 말 한마디가 천냥 빚도 갚는다지만, 그 말 한마디로 한 사람의 마음에 천근의 비수를 꽂기도 한다.


 또 한 번은 직원들이 다 모여있는 직원회의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하셨단다. 휴직은 절대 못 쓸 거라며. 두고 보라며. 내가 못쓰게 할 거라며 말씀을 하셨단다. 그 말을 들은 몇몇 동료가 나 때문에 직장 상사가 힘든 것 같다며 뒷담화를 했단다. 정작 내 뒷담화를 한 그분은. 족저 근막염으로 잘 걷지 못하겠다며 병가를 내고 몇 달 동안 직장에 나오지 않았던 분이셨단다.      


 몰랐으면 좋았을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나는 다 듣고 말았다. 다 전해 듣고 말았다. 친한 동료 A가 나에게 전해 주더라고.. 어쩌면 안 듣는 편이 더 나았을 뻔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사람들은 참 잔인하다. 참 친절하고 좋은 존재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잔인한 존재다. 앞에서는 한없이 친절하고 좋은 말 대잔치였던 분들이, 뒤에선 욕한다. 사실 관계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주위 사람이 욕하기 시작하면 같이 동조하기 시작한다. ‘관계’의 이중성이라고 해야 하나.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 ‘연결’ 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좋은 행동을 함께하기도 하지만,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나쁜 행동을 같이 하기도 한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으면 그렇게도 사람 좋아 보이던 분들이 본인에게 조금의 피해만 가도 돌아서는가 하면, 본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이 욕하면 사실은 제대로 알려고도 보려고도 하지도 않고 주변 사람의 욕이 사실인 듯 믿어버리고 같이 욕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욕들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전해주는 사람도 있다.          


" 정말 좋은 사람인데... 욕을 먹고 있어서...

좋은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정말 너무 안타까워요. 있잖아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늘 이런 식이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 번.

내가 딱하다면서, 안타깝다면서, 들으면 비수 되어 꽂히는 아픈 이야기들을 아픈 나에게 전해주었다.   

 

처음에는 정말 내가 걱정되어서, 안타까워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세상에는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어왔거든.

그래서 A는 내 곁에 있어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친구가 그랬다.     


“좋은 사람인데 왜 그런 말을 전해 주는 거래?

그럼 그 동료들한테 욕하지 말라고, 니가 정말 아프다고 말을 해 줘야지.

그 동료들이 말할 때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다가

그런 이야기를 왜 아픈 너에게 전해 주는 거야?

뒷담화하는 사람보다 그걸 전해주는 그 사람이 더 나빠.”     


“그러게. 맞네. 말을 전해주는 사람이 더 나쁘네.

나는 나 생각해서 해 준다는 말이 정말인 줄 알았어.

아니었네...”     


그런데 A에게 이젠 그런 이야기들을 나에게 전해주지 말아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의지할 곳 없던 나는 그저 그 A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말아 달라고 하면, 나를 떠나갈까 봐 무서웠다.

하지 말아 달라고 하면, 직장에서는 이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어지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혼자 설 수 있어야 했는데, 혼자 서지 못했다.

관계의 주도권을 남에게 맡긴 채 그저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했던 나라서,

혼자 설 엄두도 감히 내지 못했다.   

   

그저 다 내가 잘못한 것만 같았다.     


‘내가 너무 잘못한 건가 봐. 그러게 왜 아파서 왜 계속아파서 남들한테 민폐를 끼쳐 버린 거지?’    

 

한없이 나를 나락으로 추락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냥 다 그만둬야 하나?     


어지럼증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병이라 남들 보기엔 그랬나 보다 싶었다. 남들 눈엔 보이지 않아도 내 안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는데, 겉으로 보기엔 증상이 없어 보이니 꾀병으로 보였나 보다 싶었다. 아픈 날들이 계속되는 것도 힘겨웠고, 욕을 전해 듣는 것도 힘겨웠고, 이렇게 사는 것도 힘겨웠다. 안팎이 엉망이라 엉망인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힘들기만 했다.      


아주 깊은 구덩이에 빠졌다가 위로 올라가보려 기를 쓰고 애써 봤는데, 자꾸만 밑으로 떨어지고만 있는 기분이었다. 기를 쓰고 애쓰며 올라가려 뻗은 손을 누군가가 밟고 있는 기분이었다.       


베란다 밖을 쳐다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여기서 떨어진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 사라지면, 이런 고통도 사라지겠지?’


베란다 밑을 쳐다봤다가, 아차 싶어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죽고 싶지도 않았다.

제대로 살고 싶지만, 제대로 살고 싶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말하는 거지?

 왜 난 아픈 바람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욕을 먹고 있는 거지. 왜.. 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엘리자베스 쿼블로 로스라는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는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분노의 5단계’라고 표현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세상, 타인, 혹은 본인을 향해 분노하고. 그러다 타협하고 우울해하다가 결국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수용하게 된다는 분노의 5단계. 이 단계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뿐 아니라 큰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난단다. 누군가에게는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하고, 한 단계가 몇 번 걸쳐 나타나기도 하며, 순서가 바뀌어 나타나기도 한다는 분노의 5단계.  

   

 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했다. 타인을 향해. 세상을 향해. 그러다 계속 나를 원망했다. 계속 자책하기만 했다. 현실과 타협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우울해했다. 수용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부정, 분노가 반복되었던 삶을 살았다.     


 지금이었다면, 그렇게까지는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을 거다. 사람은 좋은 면과 함께 나쁜 면 못난 면도 다 가지고 있는 복합 다면적인 존재라는 걸 알게 된 지금이라면, 그렇게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을 거다. 의지할 누군가를 찾아 관계의 주도권을 그 누군가에게 맡기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온전히 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이라면 그렇게까지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을 거다.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 오해를 할 수 있으니, 내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이라면 그렇게까지 오해를 사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타인을 원망해도 나 자신을 원망해도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그저 온전히 일어난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이라면 그렇게까지 힘들어하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아픈 나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대로 받아들이고 안아줬어야 했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자책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험담에 마음 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내 바람이 다 무너졌다는 생각에 온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민폐를 끼치지 않고, 뭐든지 제대로 해내야 했는데 아픈 바람에 다 내가 망쳐버린 것만 같아서 한없이 나를 자책했다.


 수동적이었고. 타인의 시선을 너무도 의식했으며, 겁이 났다. 갈등이 싫어 피하기만 했다. 몸과 마음이 다 지쳐버려 그저 다 놓아버리고 싶기만 했고, 결국엔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마음이 무너져가고 있었는데도 정작 나는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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