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05
예상은 빗나갔다. 모든 일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그런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 멋진 풍경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거기가 천국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곳엔 언제나 평화롭고 행복한 일만 있을까? 멀리서 보면 한없이 평화롭기만 한 푸른 초원도 가까이가보면 개똥과 쇠똥이 뒹굴고 온갖 독충들이 서식하고 있다. 어쩌면 그 아름다운 풍경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천국에는 죽음이 없다고 한다. 죽음이 없으니 종족보존이 필요 없을 테고 결혼은 자동폐기처분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알콩달콩 지지고 볶는 삶이 이승에서나 맛보는 유일한 축복인 셈이다.
첫손주의 돌잡이에서도 그랬다. 재물을 상징하는 돈, 의사를 상징하는 청진기, 법조인을 상징하는 판사 봉, 장수를 상징하는 무명실타래, 그 밖에 요즘 트랜드에 따라 마이크나 축구공 같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상에 올려놓았다.
내 아이를 셋이나 키웠으면서도 돌잡이가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없다. 호기심이 많은 손자 미카엘(세례명)은 눈에 잘 띄라고 펼쳐놓은 선망의 물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덥석 묵주를 집어 들었다. 악, 소리를 지르며 남편의 안색이 달라졌다.
에미가 놀라서 아이를 끌어안는 순간에도 남은 한 손으로 마저 무명실타래를 낚아챘다. 인생의 긴 터널을 사시(司試)에 집착해온 남편이다. 지난 날 수없이 빗나갔던 화살 한 개가 그의 심장을 관통했던 것일까.
다 잊고 비운 줄만 알았던 과녁의 상처들이 무의식 속에서 끝내 그를 고꾸라트렸다. 놓치지 않으려고 꽉 쥐었던 마지막 보물 한 개를 첨벙 물속에 빠트려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온 몸을 나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직장과 도서관밖에 모르는 극히 단세포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그다. 한번 필이 꽂히면 멈출 줄 모르는 그가 바람기나 도박기가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평생 세상물정 모르는 불치의 큰 애일 뿐이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려고 식탁에 앉았다. 녀석은 무엇이든지 우리 부부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 잔재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그가 녀석에게만은 싫다 그르다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영락없는 명배우다.
개미가 신기한 미카엘!
덩달아 소꿉친구가 된 기분이다. 오늘은 미국으로 이민 간 후배한테서 걸려온 통화 내용을 화제로 삼았다. 예일대 출신의 참한 신부깜이 있는데 우리 집안과 꼭 인연을 맺어주고 싶다는 말을 꺼내 놓자,
다짜고짜 하버드대 출신이 아니라서 안 된다고 전하라는 것이다. 가당찮아서 하는 소린 줄 뻔히 알기에 “아, 그러세요? 댁의 아드님 참 불쌍하게 됐네요.”라며 말을 잘랐다.
그러자 구미가 당기는 새 먹잇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난데없이 아이의 귀에다 대고 “이봐 미카엘, 예일대 갈래? 하버드대 갈래?”하는 것이다. 아이는 서둘러 입안의 밥을 꿀꺽 삼키더니 큰 소리로“스쿼시대 갈래!”라고 외쳤다.
처음엔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해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치고는 또렷한 발음이 신기했다. 가만히 곱씹을수록 온 몸에서 파장이 일었다. 나중에서야 웃음보가 터졌다.
눈물 콧물 쏟아가며 얼마나 웃었을까. 무엇에 짓눌렸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어른들의 속물근성에 한 방 쐐기를 박은 절묘한 대답에 통쾌하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예상대로라면 “하버드대 갈래”가 정답이다.
그이는 아마 녀석에게 그 소리를 꼭 듣고 싶었을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물어보는 공식은 따로 있다. 두 단어 중에 마지막 단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계란말이와 고등어구이를 좋아하는 녀석에게 이런 방식으로 그 날의 메뉴를 정하기도 한다.
한 번도 빗나가본 적이 없었다. 스쿼시대는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제 서야 떠듬거리며 하는 말을 조합해보니 지난 토요일에 아빠 스쿼시대에(회) 가서 엄마랑 신나게 응원도하고 재밌었단다. 그래서 자꾸자꾸 가고 싶다고 했다.
미카엘, 넌 아직도 묵주를 차고 있구나! 아우스딩, 형과 잘 자라 줘서 고마워~
처음 아이를 맡았을 땐 겨우 허리 펴고 살 나이에 고생을 사서하는 거 같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오래지 않아 그것이 곧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절박했던 시절의 옛 어른들은 우직한 가슴으로 삶을 일구어내지 않았던가.
요즘 젊은 세대는 명석하고 사리에 밝아 자식을 낳아 키울 계산을 미리 해보고 하려니 엄두를 못 내고, 부모들은 아이 돌봐줄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한다. 어차피 인생은 정답이 없다. 매순간마다 새로운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할 수 있는데 까지는 도와주기로 맘을 바꾸니 세상이 달라져 보였다. 늘 완고했던 아빠가 부담스러운 큰애는 점점 안개 속을 헤매는 길 잃은 짐승 같았고. 나는 가정사에 무심한 남편에 대한 화풀이를 그 애한테 일갈했다.
그래서인지 미카엘에게는 끔직한 아빠다. 이른 나이에 아빠가 되어 원망을 늘어놓을 만도 한데 “아이는 키울만하다고” 말하는 큰애가 참 고맙다. “작은 것에 감동을 받고 싶거든 결혼을 해라. 물론 상처받을 수도 있다.
상처보다 감동의 울림이 크면 절반은 성공하지 않았는가?”란 어느 작가의 이 한마디로 수없이 큰애를 설득시켰던 기억이 난다.
폭염에 시달려 잠 못 드는 2012 런던올림픽이 열리는 한여름 밤이다. 예상이 빗나가서 슬픈 영웅들이여, 내일도 태양은 다시 뜨리니 빛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법, 빗나가서 더 큰 영광이 그대들을 꼭 맞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