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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교향곡 4

제2부  시베리아에 빠지다  10

by 정숙 Ja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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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rhaben/숭고한

      

눈보라가 일상인 타이가 숲의 긴 겨울은 온통 하얀 세상, 깊은 잠에 빠진 듯 묘지석처럼 서있는 나무들 오랜만에 햇살이 숲을 깨우고 오색딱따구리 노부부가 둥지에서 포르르 날아올랐어요. 빨간 모자가 돋보이는 할아버지와 까만 모자의 할머니가 햇볕을 쬐며 깃털을 다듬고 있네요. 해마다 겨울여행은 시호테알린 남쪽에서 보냈지만  올 겨울은 더 혹독한 북쪽으로 힘겹게 날아왔어요. 


ㅡ이 숲은 참 깊고도 오묘하오! 

  그러게요, 우린 숲의 법칙을 따를 뿐이에요.

  고맙소, 당신과 내가 어느새 겨울 나그네가 되었구료


시간이 가슴을 에둘러 뼈 속으로 흐르는 동안 삶속에 녹아내린 요란했던 고통도 잔잔한 행복도 한 점 바람이었다는 것을. 부부는 제일 높은 물푸레나무 우듬지에 올라 멀리 숲을 바라보았어요. 간밤에 짐승들이 사냥을 하느라 눈 위에 찍힌 현란한 발자국과 낭자한 핏자국의 흔적들, 평생 살아온 숲속의 일상이 이토록 낯설게 다가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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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구름이 몰려와 사방이 어둑하니 여우가 사냥을 나왔군요. 피 냄새에 주위를 맴돌다 오색딱따구리 부부를 발견했어요. 킁킁 냄새를 맡더니 사라져버리네요. 숲의 기운은 점점 가라앉고, 까마귀 떼가 잿빛하늘을 돌며 요란하게 울어대는군요. 새들이 나뭇가지를 물어와 주검위에 소복이 놓아 주네요.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숲속 가득 울려 퍼져요. 함박눈이 무덤을 완성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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