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14
응, 뭐 되더라.
나는 영어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능력인지 몰랐다.
그저 외국어 중 하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뉴질랜드에 와보니 알겠다.
영어를 한 다는 건 이 지구에서 내가 언어 때문에 도전해보지 못할 일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이제라도 영어를 내 인생에 들여보기로 했다.
그럼 왜 이제까지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나.
우리 부모님은 복습은 있어서도 예습은 절대 없는 분들이었다.
특히나 우리 아버지.
수업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집중하고 그 후에 복습을 하는 게 중요하지 미리 공부를 해서 수업시간에 딴청 부리는 건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행학습도 절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모른 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다행히 1학년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자음 모음 쓰는 법부터 차근차근 이 가르쳐주셔서 무사히 까막눈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2학년 때 당연히 알파벳도 모른 체 첫 영어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알파벳을 모르는 애는 나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미 친구들은 선행학습을 통해 간단한 문장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소심이 그 자체였던 나에게 당시 담임선생님이 반친구들이 다 보는데 너는 애플도 못 읽냐고 'APPLE'은 애플이라고 읽으니 그냥 외우라고 해던게 그렇게 창피했다.
분명 1학년때 내가 한글을 모르는 게 전혀 부정적인 기억이 아니었는데 그때 알파벳을 몰라서 곤란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를 따라다닌 거 보니까 퍽 상처가 깊었던 거 같다.
수업진도를 맞추려면 나하나만 붙잡고 설명해 주는 게 어렵다는 걸 지금은 이해하지만 당시 9살이었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창피함이었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고 엄마한테 가서 나만 알파벳 모른다고 울었고 엄마는 그날 바로 영어 공부방을 등록해 줬었는데 나는 이미 기가 죽어서 영어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후였다.
소심한 성격이어도 호불호가 분명해서 어렸을 때부터 싫은 건 곧 죽어도 하기 싫었다.
거기에 대안교육에 진심이셨던 우리 부모님은 영어수업 사건 이후로 학교에 대한 흥미가 짜게 식은 내가 학교를 그만둘 수 있게 해 줬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로 학교를 그만뒀던 시기이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애의 성격과 인생이 제법 골치 아팠을 게 느껴질 거 같다.
그렇게 나는 영어에 열성인 대한민국에 살면서 왜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하게 된 이유다.
물론 한자가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영어를 선택했을 건데 말이다.
내 인생에서 곧 죽어도 영어는 없다고 여겨왔던 내가 스스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는 게 모순적이지만 영어의 절대적인 힘을 너무 알아버린 이상 더 이상 영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중국어가 사용량 1위 언어이지만 중국이라는 인구가 많아서 절대적인 사용량을 보여주는 거지 전 세계에서 통용되지는 않는 거 같다.
하다 못해 중국 애들도 영어 공부하겠다고 필리핀에 오는 마당에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사는 내가 영어를 무시하고 사는 건 아직은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