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16
내가 이 지구를 여행하는 방법의 하나는 '클라이밍'이다.
7년 전 정말 우연히 체력을 좀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필라테스를 등록하러 갔다가 너무 비싼 가격에 좌절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지하에 있는 클라이밍장을 봤다.
홀린 듯 들어가 코치님(지금 나의 클라이밍 스승님)에게 상담을 받고 다음 날 3개월 회원권과 강습권을 등록했고 작년에는 생활스포츠지도사(등산) 자격증도 땄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클라이밍이 내 삶에 이렇게 크게 자리 잡힐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워크숍을 들었는데 강사님이 빌레이 시스템(안전 확보)에 관해서 설명해 주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등반자는 올라가다 실수해서 떨어져도 다음이 있지만,
빌레이(확보자)는 실수하면 다음이 없다.
그렇기에 빌레이(확보자)라는 행위는 세상에서 가장 이타적인 행위이다.
나는 클라이밍 특히 리드 등반이 가진 인류애적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15미터 이상 높이를 오를 때 서로 줄을 잡아주며 목숨을 맡기는 운동을 하는데, 타인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시작할 수 없다. 줄을 매고 등반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 파트너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는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할 것을 다짐하며 인류애를 충전한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혼자 여행하다 보면 귀에 딱지가 앉게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여자 혼자 위험하니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사람 조심해'라는 말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 불편한 이 말을 들을 때면 크게 반발하지 않고 '응 조심히 다닐게~'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런 내가 클라이밍을 하러 갈 때면 말이 달라진다.
클라이밍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조차 조심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하나 없다.
내가 힘겹게 문제를 풀고 있으면 뒤에서 등반하는 사람보다 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힘껏 응원해 주는 목소리를 클라이밍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알 거다.
세상 살아가면서 이렇게 대가 없는 응원을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싶다.
또한 서로의 목숨줄을 잡아주는 행위를 할 때 그 기저에는 우리가 서로에게 유해한 관계가 절대 아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클라이밍은 언제나 내가 상상하지 못 한 길로 나를 데려가준다.
7킬로 기내수하물만 가지고 여행했던 치앙마이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가지고 갔던 게 클라이밍 신발이랑 초크 백이었다.
치앙마이 클라이밍장에 10분 뒤에 한국인 친구가 올 확률과 그 친구가 비건일 확률을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꼬따오 섬이 클라이밍으로 유명한지도 모르고 섬 나가기 하루 전날 간 클라이밍장에서 내가 푸는 문제 베타 알려준다고 신발까지 대여해 온 내 사랑(하도 윙크를 해대서 내 짝꿍 되는 줄 알았는데 어떠한 연락처도 서로 물어보지 않고 클라이밍 열심히 하다가 헤어진 게 레전드)의 친절함 또한 상상해 보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방콕에 머물면서도 클라이밍을 하러 갔었다. 여러 명이 붙어서 못 깨고 있던 문제를 내가 끝내기 일보 직전까지 갔는데 이미 전완근에 펌핑이 세게 와서 속으로 포기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다들 '나이스'를 외쳐주는데 그 목소리에 힘입어 손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깨달았다.
'아 클라이밍은 내가 이 지구를 여행하는 특별한 방법이 되겠구나.'
그래서 이번에 세부에 가서도 클라이밍이 하고 싶어서 인스타와 페이스북을 뒤져서 '세부 락 클라이밍 커뮤니티'라는 계정을 찾아서 파파고로 번역을 돌려 디엠을 보냈다.
"Hello, my name is boni, and I enjoy climbing in Korea. I found this community while looking for it because I wanted to climb in Cebu. Can we climb together in Cebu? I received lead climbing training in Korea."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겨우 누른 전송 버튼이 무안하지 않게 세부에 오는 것을 환영하고 네가 세부에 도착하면 우리는 너와 함께 클라이밍을 갈 것이다.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답장이 왔다.
어디에서 튀어나온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노빠꾸로 직진할 때가 더 짜릿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거 같다.
그리고 고대하던 세부의 클라이밍을 하러 갔다.
세부 시티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칸타보코'라는 지역의 자연 암벽이었다.
한국의 돌과 다른 반들반들하고 미끄러운 라임스톤이라 손에 땀이 많은 나는 유난히 더 미끄럽게 느껴졌다.
정말 오랜만에 하는 리드 등반이라 내가 8자 매듭은 잘 맬지 클립은 제대로 할지 걱정이 많았지만, 몸으로 배운 건 쉽게 까먹지 않는 거 같다.
내 몸이 기억하는 벽을 타는 방법은 다행히 세부 등반에서도 먹혔다.
등반을 시작하기 전에 처음 만나는 벽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나는 한국에서 온 본이라고 해. 너를 만나기 위해서 내가 정말 많은 용기를 냈어.
부디 내가 등반하는 것을 허락해줘.'
이어서 등반하기 위해서 돌을 잡고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느껴졌다.
'벽이 나를 허락해 줬다.'
잔뜩 긴장해서 한껏 올라간 어깨가 내려오며 나의 목숨줄을 잡아주는 빌레이 파트너를 믿고 마음껏 세부의 자연 암벽을 느껴보고 내려올 수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자연 등반을 하러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들 위험하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럴 때면 내가 씩씩하게 하는 말이 있다.
서로의 목숨줄을 잡아주는 우리가 나쁜 사람 일리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