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21
*이건 필리핀 어학연수가 끝난 이후 짧은 필리핀 여행을 했을때 이야기 입니다.
'꾸준히'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뭐든지 금세 질려하는 성격에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건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취미도 이것저것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해본 것들이 전부였다.
그나마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좋아하는 게 클라이밍인데 이건 본인도 신기하다.
그런데 우리 언니는 10년째 변하지 않는 취미가 있다.
'스쿠버 다이빙'
언니가 첫 회사에서 퇴사하고 받은 퇴직금을 가지고 나랑 같이 동남아로 한 달 반 동안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각자 여행 다니고 기숙사 생활을 했던지라 서로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언니를 좀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한 달 반 동안 함께 여행한 이후 우리는 짱친이 되었다.
그때 스쿠버 다이빙으로 유명한 꼬따오라는 섬에 언니는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2주간 머물렀었다. 언니가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버디가 되라면서 자격증 비용도 장비도 다 준비해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끝끝내 스쿠버 다이빙을 하지 않았다.
최소 15미터 하는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는 것도 긴장되지만 혹여나 생길 위급상황에 바닷속은 내가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아니 그냥 무서웠다.
그 후로 언니는 삶이 좋을 때든 힘들 때든 즐거울 때든 지루할 때든 그냥 어떤 순간에든 바닷속에 들어갈 시간이 생기면 캐리어 한가득 무거운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들고 바다로 향했다.
그럴 때면 여전히 언니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스쿠버 다이빙의 세계로 나를 꼬드겼고 나는 10년째 뚝심 있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오기 전에 언니가 퇴사하고 열흘간 필리핀 보홀로 스쿠버 다이빙 여행을 떠났는데 열흘이 지나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거 아닌가?
그러고는 언니는 내가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기간 동안 보홀에서 스쿠버 다이빙 마스터 과정을 넘어 지도사 과정까지 끝내고서는 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되어있는 게 아닌가?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뭐든지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게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인가 싶었다.
이쯤 되니 궁금했다.
한 인간의 삶 속에서 꾸준히 머물러 있는 '스쿠버 다이빙'이 뭔지.
저 바닷속에 뭐 맛있는 거라도 숨겨뒀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혈육 찬스로 강사 언니의 프라이빗 1대1 오픈워터 자격증 과정을 들었는데
처음 들어가 본 바닷속은 감히 단언하기를…!
보물 천국이더라!
이 좋은 거 혼자 보기 아까워서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나 꼬드기고 이제는 강사가 되어서 나타나 내가 더 이상 하기 싫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게 만들어버렸구나!
근데 고마웠다.
나는 물을 좋아하지만 바다랑 친한 편은 아니었다.
깊이의 끝을 알수없는 바닷속이 주는 공포감이 유난히 컸었는데 어쩌면 내가 영영 몰랐을 바닷속 세계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언니가 소개해 준 게 기분이 좋았다.
반짝반짝 빛나던 오색깔의 물살이(물고기)들과 산호초 군락을 보고 있으면 경이롭고 황홀함이 여과 없이 밀려 들어온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