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22
*이건 필리핀 어학연수가 끝난 이후 짧은 필리핀 여행을 했을때 이야기 입니다.
한국에서 서핑은 퍽이나 즐기기 어려운 스포츠이다.
인공 서핑장도 서울에서 멀고 바다는 더 멀다. 그래서 휴무면 바다를 가기보다 방안에서 이불과 뒹굴기를 선택했던 나에게 서핑은 가까워 질래야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필리핀에 오기 전에 친구가 흘러가는 말로 "필리핀에 유명한 서핑 성지가 있데~~~" 라고 말해줬는데 이 말이 내 귓가에 계속 머물렀다.
"필리핀에 유명한 서핑 성지가 있데~~~"
"필리핀에 유명한 서핑 성지가 있데~~~"
"필리핀에 유명한 서핑 성지가 있데~~~"
그래서 찾아보니 언제나 친절한 파도들이 서퍼들을 반겨준다는 곳.
'시아르가오'
사실 필리핀 어학연수는 핑계고 나는 이 시아르가오에 가고 싶었다.
어학연수만 끝나면 시아르가오에 가서 매일 서핑하기를 꿈꿨다.
그래서 어학원 졸업과 동시에 나는 시아르가오행 비행기 티켓과 서핑스쿨에 등록했다.
그리고 도착한 시아르가오는 가히 천국이었다.
세부에 있는 동안 생활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세부는 베지프렌들리하지 못한 곳이라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다양하지 않았고 모든 물가가 비쌌다.
그런데 시아르가오에 도착하니 유럽인들이 휴가를 보내러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정말 많은 비건음식점들과 베지 프렌들리 음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세부에 비하면 물가도 나쁘지 않았다.
필리핀에 있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다.
물론 서핑은 어려웠다. 아주 많이.
시아르가오에서 나는 서핑 보드에 얌전히 엎드려 있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내 선생님이 알아서 파도가 오는지 봐주고 파도가 오면 준비하라고 신호도 주고 뒤에서 힘차게 밀어줘서 나는 서핑 보드 위에 일어서기만 하면 됐는데.
그게 안 됐다.
서핑 보드 위에 올라서서 중심을 잡고 싶은 굴뚝 같은 내 마음이 몸에 전혀 반영이 안 된다.
그래서 짠 바닷물 속으로 곤두박질 치기를 무한 반복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한국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파도를 기다리며 한 두번 타고 끝나는 것과 다르게 시아르가오는 내가 지쳐서 더 이상 파도를 탈 수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파도가 나를 찾아왔다.
3일째 되던 날 평소와 똑같이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서핑을 하러 나갔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서핑을 하니 몸에서 바닷물 짠내가 채 빠지기 전에 다시 바닷물에 들어가고 온 몸에 피로와 근육통이 쌓이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얼마나 많은 바닷물을 마실까 두려워하며 근심 걱정을 가득 안고 파도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몇 초후 흔들리는 중심을 느끼고 "아 빠지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파도가 내 서핑 보드를 딱 잡아주는게 아닌가?!!!
그 순간 느껴졌다.
"파도가 나를 허락해줬구나."
이미 바다속으로 곤두박질 해서 짠 소금물을 잔뜩 마셨어야 했는데 계속해서 내가 보드 위에 서있는 그 짜릿한 느낌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흥미를 잃고 지쳐가는 나를 파도가 딱 알아차렸나보다.
그리고 서핑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영상 리뷰를 해주시는데 선생님이 "오 오늘 서핑 재미있었겠는데요? 재미있게 탔네요." 라고 말해주는 걸 듣고 선생님 눈에도 보였나보다.
클라이밍을 하다 보면 온몸이 천근만근이라 기대도 하지 않고 운동을 하러 가는 날들이 있다.
근데 손에 접착제라도 발라놓은 것 처럼 모든 홀드들이 다 잡힐때가 있다.
그럴때 나는 '바위가 나를 허락해줬다' 다고 생각된다.
근데 그 느낌을 파도에서 똑같이 느낄 줄은 몰랐다.
아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2020년 도쿄 올림픽 서핑 송민 해설위원이
"똑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열심히 해야된다. 그게 아마 좀 인생하고 닮은 점이 아닐까?..."
라는 해설을 남기고 극찬을 받았었다.
당시 우연히 올림픽 서핑 경기를 보다 이 멘트를 들었을 때 내 삶에 서핑을 꼭 들여오고 싶었다.
그리고 시아르가오를 통해 내 삶에 살짝쿵 들어온 서핑은 정말이지 더 친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