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들과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금발의 여자아이가 파자마를 입고 가방을 메고 나왔다.
‘Pajama Day도 아닌데? 늦게 일어나서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나? 창피할 텐데?’
그러나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의 표정은 밝았고 엄마의 표정 또한 태연하고 평온했다.
비가 오지 않고 맑은 날에 레인코드와 레인부츠에 우산까지 들고 나온 아이를 본 적도 있다. 미국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원하면 의상 정도는 허용이 되는 분위기라고 느꼈다.
한국에서라면, 나라면 아이가 놀림받을 것이라고 미리 걱정해 아이를 설득하고 울리더라도 결국 평범한 옷차림으로 학교에 보냈을 것 같다. 다행히 우리 아들들은 옷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튀지 않고 그저 잘 섞여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다.
"Pajama Day가 뭐야?"
큰아이가 캘리포니아 프리킨더에 다닐 때, 안내장이 왔다. 파자마를 입고 가는 날이었다. 위아래 파자마를 입혀 학교에 갔는데 아이는 쭈뼛쭈뼛 어색한 모양이었다. 아이는 프리킨더 안으로 들어가 모두가 파자마를 입고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는 모래놀이를 했다.(등교하고 바로 놀이터에서 잠깐 노는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 영어를 할 줄 몰랐던 아이는 늘 혼자 모래놀이를 했었다.)
Pajama Day!! 이날은 친구들과 더 가까이 더 편안하게 보내는 날이다. 집에서처럼 더 친밀하게 비밀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나의 상상이다. 집에 친구를 한 번도 데려온 적 없고 잠옷을 입고 친구와 함께 뒹굴어 본 적 없는 소심했던 어릴 적 병아리 용미에게는 꼭 한 번쯤 필요했을 경험이고 로망이기도 했다.
미국 아이들에게는 파자마 파티가 있다. 친구 집에 놀러 가 하루 자고 오는 건데, 파자마를 들고 가 입고 밤새도록 아이들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논다. 우리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물론 지금은 한국에서도 많이 하지만, 남자아이들만 키우는 집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Crazy Socks Day!
딱 봐도 뭔가 엄청 튀는 양말을 신고 가야 하는 날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밤에 양말을 사러 나갈 수도 없고 생각 끝에 짝짝이 양말을 신고 가기로 했다. 당시 아이들이 어린 탓에 알록달록 무늬가 있거나 줄무늬 정도의 양말을 신고 있었다.(한국의 청소년 아들들은 흰 양말과 검정 양말 말고는 신지 않는다. 회색도 안 된다.)
휴~
스쿨버스 스탑에 나갔더니 각종 크레이지 양말을 신고 나온 아이들과 신경도 쓰지 않는 아이들, 둘로 나뉘었다.(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강제성이 없는 자유가 좋았다. 상대적인 위축감이 들지 않고 늘 당당하게 의견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 모범생 엄마를 갖은 우리 아이는 쑥스럽지만 학교 안내문
지시에 따르고 거기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자유로움을 느꼈다. 규범이 가득하고 지켜야 할 규칙들이 많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을 그 마음에, 알록달록 그레이지 양말은 한 줄기 빛처럼 일탈 같기도 하고 열린 창문으로 부는 바람 같기도 했으리라.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날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본 적은 없었다. 지금 찾아보니 학교에서 중요한 인식 캠페인을 벌이거나 기금을 모으기 위해 행사처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다운증후군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어느 학교에서는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기금 마련 행사로 크레이지 양말을 신고 한 번쯤 그들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았으리라. 지금 다시 그때를 떠올려도 감동적이다. 딱딱한 행사를 유머와 멋진 에너지 발산의 프리즘을 통과시킨 것 같아서.
그러나 공립초등학교에 아이 셋을 5년 보냈지만, 우리는 한 번도 돈을 걷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