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연간회원권
메릴랜드 볼티모어에는 내셔널 아쿠아리움이 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늘 아쿠아리움에 간다. 아이들이 물고기와 상어, 고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비용이 문제였다. 다섯 식구의 입장료는 꽤 비쌌다. 이럴 땐 연간회원권이 답이다. 두 번 이상만 갈 수 있다면 연간회원권이 훨씬 이득이었다. 특히 가족 회원이!
"오늘은 어디 가요?"
주말이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에도 답은, 연간회원권이었다.
지금 당장, 볼티모어 아쿠아리움에 다섯 식구가 간다고 하자. 가족의 하루 입장료는 219달러다. 성인 2명, 청소년 3명. 하지만, 가족 연간회원권은 250달러다. 이것은 성인 2명과 청소년 5명을 포함한 가격이다. 가끔 친구나 지인들을 데리고 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연간회원권을 구입해 아쿠아리움에 10번을 간다고 하자, 한번 갈 때 219달러였던 가족 입장료가 25달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가족 연간회원권을 구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일 년 동안 몇 군데를 정해놓고 그곳만 갔다. 한 곳만 정해 놓고 깊이깊이 파고드는 것이 우리 가족의 생존 방법이었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볼티모어 이너 하버에 있는 내셔널 아쿠아리움은 미국의 3대 아쿠아리움에 들어간다. (당시에는 전혀 모름) 입구에서부터 수족관이 있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웠다. 세 살 막내 보다 더 컸던 바다거북과 상어, 가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실내의 작은 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리 하나가 없던 바다거북은 지금도 잘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톱상어, 귀상어 등 책 속에서 봤던 상어들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작은 거북과 악어의 헤엄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해파리는 커다란 물기둥 안에 있었다. 해파리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Red- eye tree frog(빨간 눈 청개구리), 문어, 도마뱀, 뱀 등은 각각의 수족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화려한 색깔의 예쁜 개구리들이 독을 품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식인물고기 피라니아는 배가 오렌지 색이고 비늘이 은색으로 빛났다. 말로만 듣던 식인물고기였다. 그러나 너무 예뻐서 아무것도 모르고 물속에서 만났다면 난 가까이 다가갔을지도 모르겠다.
아처피시(물총고기)는 물 밖에 있는 먹이를 맞추기 위해 물총을 쐈다. 운이 좋으면 그 장면을 직접 볼 수도 있다. 수족관은 유리 하나 사이를 두고 수중 생물들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당시에는 화려한 돌고개 쇼와 바다표범 쇼가 있었다. 동물학대의 논란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강도가 약해진 쇼로 변천했지만 말이다. 돌고래는 조련사의 사인을 받으면 관객들을 향해 꼬리지느러미로 물표면을 철썩철썩 때리고 돌아다닌다. 무대 가까이에 있는 관객들은 그 물을 맞으며 즐거워했다.
펭귄과 닮았지만 남극에 살지 않고 날 수 있는 퍼핀과 날지 못하는 키위새 등도 생각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은 같은 아쿠아리움을 한 달에 몇 번씩 갔지만, 늘 새롭게 느끼고 좋아했다.
가끔 수중 생물을 만질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요즘은 해파리와 투구게 등을 만질 수 있다고 함) 카멜레온이나 도마뱀을 들고 아쿠아리움의 작은 부스에 직원이 서 있으면 아주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솔직히 아이들보다 잘 모른다. 아이들 보느라 뒤만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즐거우면 나도 행복했다.
사이언스센터도 마찬가지다.
두 번 이상만 갈 수 있다면 연간회원권이 유리하다. 볼티모어 내셔널 아쿠아리움에서 나와 10분쯤 걸어가면 사이언스센터가 나온다. 가는 길에 길거리 공연도 볼만하다.
사이언스 센터는 과학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보여 주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는 최신 로봇과 자연사 박물관처럼 거대한 공룡 뼈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모래 속에 감춰진 뼈들이 있다. 눈 보호를 위해 안경을 쓰고 붓을 들고 수 천 년 전에 죽어 땅속에 묻힌 공룡 뼈의 발굴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로 체득하고 배우는 것 같다.
수 백 개의 뾰족한 못 위에 아이들이 누웠다.
"나도, 나도."
호기심과 용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쇠구슬이 유리 상자 안에서 뱅글뱅들 돌아 나오는 것을 봤고 혼자 의자에 앉아 자기의 몸을 들어 올릴 수도 있었다. 도르래의 원리다. 토네이도를 체험해 볼 수도 있고 구름이 생기는 원리 등 많은 것들을 직접 만지고 만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의 작은 실험 부스들이 전시실 사이사이에 있어서 원하면 해볼 수 있었다.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말이다.
한 마디로 실내 놀이터 속에 재미와 배움이 있다고 할까. 매번 프로그램들이 바뀌고 업데이트 돼서 일 년 내내, 매주 간다고 해도 늘 새로웠다.
여름에는 물을 이용한 놀이가 있었다. 물길을 따라 물레방아 같은 것이 돌고 배도 띄우고 시원하게 한바탕 놀 수 있다. 작은 로켓을 날려 보낼 때도 있었고 무중력 자동차가 달리는 원리를 공연 형식으로 보여 주기도 했다.
늘 1층 로비에서는 이벤트 실험들이 꿈처럼 펼쳐진다. 내가 다시 아이가 되고 싶을 만큼 흥미로웠다. 그들은 알고 싶고 궁금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하루를 놀았다는 것에 매번 나도 신이 났다.
그때는 아이들이 마냥 예뻤다. 그 아이들이 너무나 그리워 지금은 눈물이 날 것 같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늘 엄마랑 줄다리기를 하는 막내의 그 어린 시절이 몹시도 그리워진다. 그 아이가 지금 내 앞에 덩치가 산만한 그 아이라고, 둘은 똑같다고 자꾸만 나를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