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 68. 탈일까요 복일까요

by 송유성

나는 다 기억해요. 정말로 다 기억하고 그래서 늘 탈이고 복이죠.

지리산을 가보고 싶어 한 애인이 있었고 정상까지는 갈 엄두가 안 나는 나도 있어서 우리는 중간에서 화해했지요. 지리산의 노고단은 완만해서 쉬이 올라갈 수 있고 또 늘 낭만을 좇는 나는 아주 멋진 일출 명소라길래 가기로 했지요. 나는 저녁에 일을 해서 늦게 마쳤지만 그와 함께 볼 일출에 들떠 새벽 두 시에 일어났어도 좋았어요. 나도 졸리고 애인도 졸렸지만 애인의 엄지와 중지 사이 옴폭한 곳을 꾹꾹 누르며 계속 말을 걸면서 노고단에 도착했지요. 어둡고 추운 겨울이었지만 다 좋았지요. 숨이 가빠도 당신과 함께면 다 좋았지요. 아쉽게 구름이 있어 해는 못 봤어도 붉은 융단이 산 위로 펼쳐진 듯한 하늘을 볼 수 있었지요. 그 사람과 손을 잡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보던 순간이 또렷하지요. 다들 사진찍기 바쁜데 우리는 가만히 눈으로 담는 사람이라 더 좋았던 것 같지요.

그런 장면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서 가끔 탈인가 복인가 싶지요.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4화# 67. 지독한 사랑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