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요 Oct 31. 2024

낭비같지만 진심이라서요

몸을 써요. 몸을 쓰는 일을 계속해 보아요. 나는 붉게 달아오르고 호흡은 내 것 같지가 않죠. 아니, 사실은 모든 것이 내 것 같지는 않아요.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살면서 무엇이 내 것인지에 대해서. 마음도 생각도 무엇 하나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닌 이질감 때문에 순식간에 고독해져서는 그 고독을 잘근잘근 씹다가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해 보는 것, 그건 젊거나 늙거나 상관없이 때때로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불면 속의 익숙한 손님일 것입니다.     



파래요.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지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뜻이겠습니다. 얼마 전 산책을 하면서 산책 동반자에게 물었습니다. 왜 가을 하늘은 멀다고 하는 걸까요. 지구의 크기가 변하거나 하늘이 거리상으로 정말 멀어지는 일은 없을 텐데요. 하고요. 바람이 세져 구름이 자꾸 멀어지기 때문일까요.라고 비과학적인 유추를 두런두런 해 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좋지요, 그런 말들. 쓸모없고 생산적이지 않고 생활적이지 않은 이야기들. 그런 낭비들이 너무 좋아요.    


 

젊어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죠. 돈을 모으는 일, 노후를 대비하고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평생을 담보로 주택을 구매하는 일 말고요. 나는요, 젊은 사람들이 젊음을 너무 아껴 쓰는 것 같아요. 젊음을 낭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일은 아주 섬세하고 밀도 높게, 또 광고하듯 요란 법석하게 해야 하는 일 같아요. 그래서 낭비하고 마는 이 젊음이 당연한 문화가 되고 그것들이 꽃처럼 펑펑 피어나서 연꽃이 가득한 연못처럼 젊은이들이 조금 미쳐서 늘어져 있곤 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해 봤어요.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조금 덜 먹고 덜 저금하면서도 위스키 한잔을 낭비하고 또 의미 없는 토론을 밤새 하느라 눈이 토끼 눈처럼 빨개지고 그런 것들이 팽배하길 바라요. 멱살잡이하는 어른이 되기 전에, 잘 늙으려고 하는 일이겠지요. 다시 나의 목소리를 안으로 침잠시키기 전에 해야 하는 중요한 작업이에요. 날 낭비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사랑을 낭비하다 보면 깨닫지 않을까요. 언제나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는 것을요.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잘’이에요. 나의 내면을 소진하지 않고서 ‘잘’ 낭비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제 오늘의 낭비는 잠을 적게 자고서는 운동을 아주 많이 한 일이었어요. 쉬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뜨면 이제 알아요. 내 안에서 에너지가 모인 날인지 아닌지를요. 사실은 나는 변태라서요, 아주 힘든 것들이 좋아요. 힘들여서 얻어지는 일, 사랑, 마음, 무엇이든지 나는 힘들여서 얻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가 수련을 가서 핸드스탠드 연습을 했는데, 내가 오늘은 지구를 움켜쥐는 것 같은 힘을 처음 느껴봤어요. 그러고는 잠시 공중에 체공하는 듯한 소중한 몇 초도 경험했지요. 다 낭비 덕분이에요. 돈 되지 않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요. 낭비만 한다고 손가락질당해도 상관없어요. 낭비, 낭비, 큰 낭비, 작은 낭비, 이러다가요. 문득 어, 그게 생활로 이어지는 행운도 있어요. 그래요. 남들이 보면 행운이겠지만 사실은 은밀한 나의 저금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가르칠 실습 시간을 얻었어요. 요가를 재미 삼아하는 듯, 또 공부하는 듯 달려온 시간이 만들어 준 기회겠다고 혼자 조용히 웃어보았어요.     



전화 통화만 하면 일하는 것이 지옥 같은 친구도 있고, 또 지옥을 걷다가도 승진을 위해서라면 상관없다는 듯이 살다가 술에만 취하면 쓸쓸한 노래를 들려주는 지인도 있어요. 나의 가장 현실적이었던 애인은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낭만에 대해서 그리워했던 것도 같고요. 그리고 나는 말을 줄이기로 했지요. 나의 세상을 모두에게 말할 필요가 있나요.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사는 것일 테고 나는 나의 삶을 살겠지요. 때로는 서로를 이해시키려고 대화하다가 큰 상처를 받고 돌아서곤 하는 일들이 너무 비일비재하지요. 애정만 있으면 충분해요. 그 사람의 생을 응원하고 멀리서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라고 다시금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난 나도 응원해요. 조용히 내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일을 조금씩 아주 느린 걸음으로 가고 있는 나를 멀리서 지켜봐요. 놓치는 것도 있을 테고, 또 얻는 것도 있겠지만 모든 순간에 진심이길 바라면서 나를 지켜보기로 했어요. 그것만이 또 삶을 잘 낭비하면서 살아가는 유일한 길인 것 같기도 해서요.     



멀어지는 젊음 속에서 후회치 않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게 참 두렵습니다. 잃어버린 시간들을 후회할까 봐요. 그래서 오늘의 들꽃을 보아요. 하늘의 구름의 모양을 세구요. 까치가 처마에 앉아 몸을 털고 지렁이가 흙을 잔뜩 묻힌 채로 꾸물거리죠. 그런 것을 마음에 담아요. 당신이 조금 더 다정해지고 내가 조금 더 단단해져 가는 것들을 느껴요. 그렇게 살면 또 아무 두려움이 없어요. 가는 길이 있다면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일이거든요. 단순해요. 그렇게 계속 살까 해요. 먼 길을 걷듯 아사나를 해보고 달리고 호흡을 고르게 하고, 밥 잘 먹고 잘 자고요. 언젠가 늙어있을 나에게 긴 책을 써 보낼 마음으로 그렇게 오늘을 살아요. 그러면 다 된 것 같고 그렇죠.

이전 14화 아프다가 더 환해져요, 잔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