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가게의 주방에서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을 사용하다가 슬쩍, 아주 찰나에 스치기만 했는데 오른쪽 엄지손 아래가 지금 검어졌습니다. 이틀 전 아주, 그러니까 아주 살짝 스친 화상이 검게 익어서 가까이서 보니 쪼글쪼글, 원시시대의 공룡의 가죽같기도 한 화상자국이 검게 쪼글쪼글합니다. 나는 그 자국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조금, 서글퍼졌습니다. 시간은 사람을 화석같이 만들어 가는 걸까 싶습니다.
누가 누군가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의 무상함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너무 많은 타자가 살면서 내 곁에 머무르고 또 떠나고 또 서성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당신을 잘 아는 데,라고 운을 띄우며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기에 나와 거리를 둠으로써 나를 거의 존중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 생각했던 나와 오늘 눈을 뜬 나는 같은 사람인가 싶은, 모호하고 까마득한 이질감이 시퍼런 새벽마다 찾아오곤 할 때, 정신을 바짝 차려보려고 합니다. 이 모든 애씀이 꿈인가 할 때면 바닥을 박차고 뛰어 내는 나를 만들어 냅니다. 온전히 나를 인식하는 일에 나는 자주 실패하고 늘 미숙합니다. 단지 그럼에도 생의 감각을 다시금 내 안에 들이기 위한 노력을 해 봅니다.
마음은 언제나 머무름이 없어서 몰려왔다가 몰려가고 또 쥐어진 것 같다가도 어느새 모래처럼 악력도 무력하게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나는 몸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과 달리 몸은 직관적이니까요. 피부로, 호흡으로, 또 통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와닿는 감각의 크기가 다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0월이 되니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도 어둡습니다. 해가 점점 늦게 뜬다는 것을 확실히 느낍니다. 오늘을 잘 사는 사람은 나중에도 잘 살 거라는 L 교수님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나는 자꾸 흔들려서 늘 시소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때론 누군가가 나의 시소에 함께 타주기도 했고 타주다가 무거워져서 나의 발만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적도 있고 또 싫증이 나서 금세 혼자가 되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시소에서 내려가면 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렇게 나는 내 두 발로 서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눈치채지도 못하게 진행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스름한 새벽을 끼고서 달리기 하러 출발해 봅니다. 날씨가 쌀쌀합니다. 달리니까 땀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느껴지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이내 식어버리는 것을 반복합니다. 감기에 걸리기 쉬운 날이구나 하고 생각이 듭니다. 문득, 그를 생각하며 쓴 나의 글을 읽은 그가 눈물이 났어요. 믿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하고 답을 보내온 일을 떠올려 봅니다. 나는 얼마나 가벼운 말들로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 거야. 하고 단정 지어 왔을까요. 다리를 더 빠르게 굴리며 속도를 올립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찼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숨이 차서 머리까지 하얗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 나도 함부로 단정 지었던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어.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이제껏 누구 하나도 제대로 마주한 일이 없을 거야.라고.
나를 잘 바라보기로 합니다. 산의 정상에 도달해서 터질 것 같은 폐를 고르게 호흡해서 펴 봅니다. 안개가 짙은 오늘입니다. 안개 너머로 보이는 강변과 반짝이는 물결들을 봅니다. 자연은 아무 말이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듯 변화무쌍합니다. 나는 조금 더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남은 삶 동안 내가 누군가를 ‘거의’ 알 뻔하게 된다면 그 삶은 나름 유의미한 삶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더 몸을 써야겠습니다. 더 멀리 더 잘, 또 더 오래도록 바라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변하지 않는 듯 조금씩 튼튼해지고 있을 나의 마음들을 위해 오늘도 간절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