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생일이었어요. 그 전날 저는 쓰레기를 버리다가 계단에서 크게 굴렀죠. 한 번에 많은 양을 가져가겠다고 욕심부리다가 발을 삐끗했어요. 오른쪽 머리에는 머리가 하나 더 생겼나 싶을 만큼 큰 혹이 났고요. 오른쪽 몸은 멍투성이가 되었지요.
모든 것이 내 탓 같았어요. 전날 생일이라고 축하주를 마셨거든요. 헤어지고 잘 먹지도 않던 술인데 조금 취할 정도로 먹었어요. 그날의 숙취가 몸을 둔하게 만들어서 굴렀나 싶었습니다. 몸이 아프면 자꾸 서러운 마음만 먹어요. 그 사람을 보내주기 위해 이런 사고까지 필요했던가 싶었거든요.
그리고 오늘 삼 주 전 신청해 둔 홍법사 템플스테이를 왔습니다. 홍법사에 오기 전 새벽 요가가 있는 날이어서 6시 반에 새벽 요가를 갔습니다. 부어서 아픈 머리를 하고선 며칠 만에 요가를 갔지요. 원래는 곧잘 하던 모든 아사나들을 통증 때문에 할 수 없었어요. 집으로 돌아와 나는 또 한참 울어야 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 뒤로 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막막함이 들었거든요. 하루를 다시 잘 주워 담으면 마음도 그렇게 주워 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빠져나가는 슬라임 같다고 느껴졌지요.
그렇게 톡 찌르면 곧이라도 울 듯한 빨간 눈을 하고선 홍법사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에서 경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면 저 멀리 항상 거대한 금색 불상이 보여요. 나는 절에 도착해서 그 불상이 홍법사의 불상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5월 말의 온순한 기온과 조용한 절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에 차츰 마음도 잔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절에서는 염주 만들기, 연꽃 만들기, 저녁 공양 등 여러 가지 절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중 제일 마음에 든 것은 ‘절’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절에 가서 처음으로 내가 절을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 108배 체험을 했어요. 108배의 의미를 되새기며 조금씩 달아오르는 신체를 느끼면서 천천히 하는 절은 묘하게 마음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108배를 진행하는 동안 절에서 틀어준 동영상이 있었어요. 영상에서는 스님이 절을 하는 모습이 나왔고 절 한 번에 좋은 문구를 한 개씩 읊어주었지요. 몇몇 구절은 마음에 탁 하니 박혀 자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로 집착과 구속을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며 절합니다’
‘지나간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절합니다’
‘내가 아픈 것도 약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잘 돌볼 것을 생각하며 절합니다’
‘내 생명도 소중한 생명이기에 아낄 것을 생각하며 절합니다’
108배를 하는 동안 한 문장 한 문장 마음에 새기면서 또 간절히 그것들을 생각하고 행하며 살길 바랐던 것 같아요. 머리에는 왕만한 혹이 나서 욱신거렸지만, 그것도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절식’으로 생각해 보니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최악의 기분으로 간 홍법사의 템플스테이는 의외의 것들을 많이 안겨주었어요. 내가 며칠 전에 구르고 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와닿는 일이었을까도 싶었지요. 마지막 차담 시간에 스님이 그런 말씀하시더라고요. 모든 것은 인과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라고. 우리가 이렇게 차를 마시는 일도 과거에 수많은 연이 겹쳐서 일어난 일인 것이라고. 스님의 말씀을 듣다가 그와 내가 만나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연이 닿았던 것 또한 그런 일이라 생각하니 참 감사한 일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또, 사실 감사한 일이거든요. 그 사람을 만나고 애를 써보고 이해를 해보고 그의 행복과 안녕을 빌며 보내주는 모든 과정이 저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이기도 하니까요.
템플스테이에서 우연히 같은 방 배정은 받은 스물넷의 아주 앳된 여자아이가 있었는데요. 그 아이와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제가 그랬어요. “그래도 아주 많이 사랑해 보는 일이 좋아. 결국 돌아보니 인생의 참 아름다웠던 장면들은 사랑이 준 것이더라.” 라고요.
그런 말을 하게 된 것 또한 열심히 사랑해 온 과거의 제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머리의 혹이 나서 참혹한 기분으로 절에 왔기에 더 깊이 와닿았던 템플스테이였을 수도 있겠지요. 또 지금 그를 떠나보내며 힘들지만 회피하지 않기에 미래에는 아주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고로 어쩌면 삶은 어떤 사고들이 종종 일어나야 더 와닿는 것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