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난 사랑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지칭할 때 나는 이제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하고 말하고 있는 내가 있습니다.
다친 것이 많고 다칠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자신의 울타리 넘어가면서까지는 궁금한 것도 없고 또 울타리 안쪽 삶에도 불만족하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꽤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만날 때 윤병무 시인의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라는 시집을 자주 읽었습니다. 시집을 엮을 당시의 시인이 이별했는지 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을 그리워하며 쓴 시들과 ‘당신’을 떠나보낸 뒤의 시들이 많은 그의 시집에 저는 모서리를 잔뜩 접어두었습니다. 모서리가 너무 많이 접혀 끝이 약간 도톰해진 시집을 보면서 오늘, 나는 조금 아픈 마음이 도톰해지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사람을 내 마음속 한쪽에 방을 마련하여 거주시켰습니다. 가끔 문을 두드리고 안부를 물어봅니다. 그를 방문하여 그를 생각하다 눈물이 차오르기 전에 얼른 다시 인사를 하고 뒤돌아 서봅니다. 너무 오랫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워질까 봐 얼른 생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출근하고 밥을 먹고 시답잖은 농담들을 친구들과 나눕니다.
그 사람을 사랑한 일들은 나에게 책의 한 장면처럼 기억되겠지만 기억은 사람에 의해 다르게 기록되니까, 그 사람에게는 어떻게 기억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어여쁜 당신을 맑은 해변에 세워두고 혹시나 내가 만든 썰물에 쓸려 보내곤 했을지도요.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은 그가 잘 쓸려가 편안한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길 바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이 결국에는 졌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결국 사랑이 진 이유는 또 이해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생각해 보면 퍽 좋았습니다. 상대방이 나의 말에 전부 대답하지 않더라도 나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만 있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는 경험을, 그를 통해서 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쎅쎅거리는 숨소리만 들리는 시간을 가져도 그 사람의 손을 꼭 쥐고 오를 때면 ‘아, 내가 이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구나.’ 하고 귀 말고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묵묵한 당신이 헐거워진 나의 등산화를 “잠시만요.”라는 말도 없이 내 어깨를 탁 잡아 세운 뒤 무릎을 꿇고선 꼭꼭 매주던 모습은 당신 그 자체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주 나를 마른 소금처럼 뿌리친 일과 상처줄 것을 알면서도 가랑비처럼 뱉던 연약한 말들도 당신의 어느 아픈 시절 때문임을 모르지 않아서 그 또한 괜찮았다고 여깁니다. 아는 동생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선 “언니, 나는 못할 것 같아. 그런 사랑은. 그리고 안 하고 싶어.”라고 했지만, 그건 해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사람을 만나는 동안 나답지 않은 어느 귀퉁이에 숨겨진 사랑스러움이 있다는 것을 찾았거든요. 사랑은 나약한 감정도 강하게 만들고 또 지칠 것 같은 마음도 다시 힘이 나게 하니까요. 그건 당신이 아니라 나의 사랑스러운 어떤 것을 내가 알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같거든요.
당신은 이제 당신의 마을로 돌아가 다시 살 테고 생략한 말들은 어딘가에서 흩어져 별이 됐겠지만, 나는 모든 마음을 모아 내 마을의 하늘에 뿌려버렸습니다. 매일 밤 내 세상의 하늘은 지난 애인들과 가난했던 시절과 아팠던 젊음과 그리고 당신이 빛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세상을 가져서 자주 슬퍼하지만, 또 찬양처럼 아름다워합니다. 여러 날에 실패하고 끝내는 가버린 사랑을 아파해도 실패와 아픔은 겨울을 가져오고 한 때의 추위는 어느 봄날이 오면 꽃을 만개하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나는 어쩌면 계절별로 피워 낼 사랑들이 많은가 봐요. 그런 뒤죽박죽인 사랑들이 많아서 계절별로 다정할 때가 많아서 좋은 것도 같네요. 하지만 어느 것도 버릴 것은 없죠. 이리저리 섞여 복잡하고 비옥한 나의 세상이 여러 색으로 물들며 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