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로 만난 아이들은 꽃보다 사랑스럽다
“뒤에 앉은 친구들도 잘 보이도록 선생님이 큰 화면을 준비했어요.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를 함께 읽어 볼게요. 만두하면 떠오르는 명절이 있나요?”
재능기부로 초등 1, 2학년 독서 수업을 하는 첫날이다.
기업에서 오랜 기간 교육연수를 담당했고 퇴사 후에도 중고등학교에서 많은 학생을 가르쳤다. 탄탄한 경험과 나만의 교육방식을 토대로 성공적인 독서 수업을 기대하며 질문을 던졌다. 마흔 두개의 눈동자가 나에게 집중하는가 싶더니, 사방으로 통통 튀기 시작했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선생님,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떡해요?”
“선생님, 저는 추석 때 먹어봤어요.”
“추석 때 나는 제주도 갔는데. 또 가고 싶다.”
떡국하면 떠오르는 명절을 물어봤는데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이야.
내 머릿속에는 며칠간 고민하며 만든 <수업계획안>이 휘리릭 지나갔다. 내 수업계획에는 이런 상황은 없었다. 내 질문의 답은 ‘설날’이 나와야 한다. 아이들이 ‘설날’이라고 대답하면, 설날에 가족과 하는 전통 놀이를 소개하고 ‘까치 동요’를 즐겁게 부를 계획이었다.
재능기부로 시작한 첫 독서 수업은 ‘망했다’생각했다.
순간 빠져나간 정신을 부여잡았다.
“얘들아, 나는 설날에 만두를 넣은 떡만두국을 먹었는데 너희는 추석에 만두를 먹었구나. 너희들 혹시 만두가 어느 나라 음식인지 아니?”
“저요, 저요. 일본이요.”
“아니야, 베트남이야.”
“선생님, 설날에 떡만두국 먹으니까 당연히 한국이죠.”
“정답! 유럽사람들은 밀가루로 다양한 빵을 만드니까 떡도 만들지요?”
아이들은 앞다퉈 대답을 했다.
“우와, 너희 유럽도 알아? 정말 똑똑하구나.”
칭찬 한마디에 아이들 어깨가 으쓱거린다. 앙증맞은 당돌함에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천방지축, 아무 말이나 내뱉는 아이들을 보며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몇 분 만에 아이들의 꾸밈없는 모습이, 엉뚱한 발상이, 내면의 어린 나를 부른다. 지식이 많고 정답을 논하는 딱딱한 어른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고 있음을 느낀다.
“얘들아,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봐. 선생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게.”
아이들은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했나 보다. 흩어져있던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옛날 중국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어. 백성을 위해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었단다. 그 이름은 관우, 장비, 유비야.”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 알아요. 삼국지 만화 봤어요.”
“저는 책으로 봤어요. 제갈량도 나와요.”
요즘 아이들은 게임이나 유튜브만 본다고 생각했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만두는 제갈량과 연관이 있어. 전쟁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물이 범람하여 건널 수가 없었어. 강을 건너려면 사람의 머리를 바치라는 거야. 제갈량은 그게 어찌 사람이 할 짓이냐며 밀가루 반죽에 돼지고기를 넣은 머리모양의 만두를 49개 만들어 바쳤단다.”
여기서 통, 저기서 통, 쉴새 없이 통통 튀던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강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이 이렇게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수업을 마치며 질문을 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 흥미로웠죠. 다음 시간에는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동화를 만나봅시다. 오늘 열심히 들은 친구들은 만두가 어느 나라 음식인지 알겠지. 어느 나라?”
“일본이요~~”
‘에휴, 너희들 진지하게 듣더니 한쪽으로 흘려보냈구나.’
내 생각과 정반대로 흘러간 첫 독서 수업은 이렇게 끝났다.
도서관 문턱이 닳도록 오가는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묻는다.
“도서관에서 수업하면 얼마 받아요?”
재능기부는 금전적 보상은 없다. 수업을 준비하며 쏟는 시간과 열정, 오가는 차비 등등 이득도 없이 재능기부를 왜 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나는 자로 재고 따지며 아등바등 살았다. 1+1은 반드시 둘이라는 원리원칙을 내세우며 내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면 타당한 보수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재능기부로 만난 아이들은 나에게 돈보다 더 귀한 것을 준다. 맑은 아이들 틈에서 내 시든 영혼이 생기와 발랄을 회복하는 시간. 1+1은 둘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인정해주는 너그러운 어른이 되어간다. 아이들과 동화로 만나는 시간은 나의 내면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이것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독서 수업을 하면서 나의 작은 재능과 노력이 누군가의 빛이 될 수 있고, 그 빛은 긍정에너지를 끌어내어 한 사람의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 창가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수업을 계획한다.
‘어떤 동화를 선택할까,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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