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던 노부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금요일 아침이 되면 정신없이 바쁘다. 나는 아침 밥상만 세 번 차리는 여자다.
6시50분 남편 밥상. 7시 50분 중학생 아들 밥상. 8시 30분 1교시가 공강인 대학생 딸아이 밥상. 식구들이 집을 하나둘 빠져나가면 내 정신도 반쯤 나간 상태다.
어지러진 식탁을 후다닥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아이들이 벗어 던진 잠옷과 이불을 정리하고 빨래는 세탁기에 쏟아 붓는다.
이날은 나를 위해 예쁘게 화장을 한다. 일종의 보상심리다. 날씨와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고 산책을 하거나 좋은 사람과 만나 차 한잔을 한다. 오늘은 날이 너무 좋아 산책하기로 했다. 걷다 보니 담장 옆에 자리 잡은 장미 넝쿨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 잎만 무성했던 넝쿨에 빨간 장미가 피어있었다. 햇살 한 줌에 피어난 장미가 곱고 대견해 보였다. 감탄하며 장미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살며시 다가왔다.
“저, 바쁜데 미안해요.”
낯선 노부인이 다가왔다.
“바쁘지 않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산부인과를 가는데 여기서 어떻게 가요?”
노부인의 말투에서 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어디 편찮으세요?”
오지랖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세도 많은 분이 아프다면 기꺼이 도와드릴 생각이었다.
“우리 며느리가 둘째를 낳았어요. 만삭이라 출산 전에 맛있는 밥 한 번 해주려고 올라왔는데 밤에 진통이 와서 아들하고 병원 갔어요. 아침에 아이 낳았다고 전화가 왔네.”
며느리에게 손수 밥을 해주려고 오셨다니 참 따뜻한 분이라 생각했다.
“좋으시겠어요. 얼른 가서 둘째 손주 보셔야겠네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시려면 대로까지 가셔야 하는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 버스정류장까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나는 노부인과 버스정류장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미안해서 어쩌나. 바쁜 사람을 내가 붙잡아서. 요즘에도 이리 좋은 사람이 있네.”
노부인은 연거푸 ‘고맙다. 사람이 이리 착하네.’라는 말을 했다. 칭찬받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칭찬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후, 택시승강장도 바로 옆에 있으니까 편한 걸로 이용하라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했다. 노부인은 내 손을 한참 잡고 계셨다. 부인의 눈빛에는 감사가 담겨있었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부인은 손을 흔들며 미소 지었다.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는 부인의 얼굴은 한 송이 꽃이었다. 아침 밥상만 세 번 차리고 정신이 쏙 빠진 하루를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내 마음은 꽃밭이 된다.
씨소 드로잉 <장미를 닮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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