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이 타들어가는 열기, 혹독한 여름이다. 이런날 난 고구마를 튀긴다..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아스팔트는 행인의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낮에 활동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정말 혹독한 여름이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열기와 눅눅한 습기를 먹은 여름은 아이들의 입맛을 빼앗았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입이 짧다.
야채나 고기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라면을 끓이면 밥까지 말아 싹싹 긁어먹는다는데, 우리 집은 예외다.
딸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이 라면이다. 탄수화물 덩어리를 먹고 살찌면 억울해서 못 먹는단다. 아들 녀석은 매운맛을 싫어한다. 라면 국물은 대부분 매운맛이라 먹지 않는다. 자장라면이나 우동을 찾는 경우가 있지만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일이다.
두 아이 모두 어릴 때부터 덥석덥석 받아먹지 않았다. 특히 둘째 아이는 식감이 별로던지, 본인 입에 안 맞으면 일단 뱉어내는 통에 식사때마다 혈압이 끓어올랐다.
이번 여름, 수도권지역이 37일 동안 열대야가 지속되었다. 입도 짧은 아이들이 밥맛을 잃은 것은 당연지사다. 이럴 때 먹고 싶은 걸 먹어줘야 힘이 나지 않을까.
둘째 아이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다. 듣는 순간 ‘헉’소리가 났다. 많고 많은 음식 중에 고구마튀김이라니.
에어컨을 켜도 주방은 시원하지 않다. 고구마튀김을 하다 내 영혼까지 익어버릴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생각이 휘리릭 지나갔다. 난 못된 엄마처럼 잘라 말했다.
“안돼! 이 더위에 튀김을 어떻게 하니. 마트에서 냉동 김말이나 만두 사다가 구워줄게.”
“흥, 어차피 안 해줄 거면서 왜 물어봐. 엄마 진짜 나빠! 난 냉동식품은 싫어. 맛없어.”
뾰로통한 얼굴로 에어컨 앞에 털썩 주저앉는 둘째 아이를 보니 맘이 묵직하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성격도 예민해졌는데, 입맛도 없으니 뭔 낙이 있을까 싶다.
잠시 후,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난 불 앞에 섰다. 고구마를 살짝 삶고 껍질을 벗긴 후 튀김옷을 입힌다.
달아오른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튀김옷을 입힌 고구마를 퐁당 넣는 순간, 치이익 -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질수록 나는 불판 위에 올려진 오징어처럼 쪼그라들었다.
‘으이구, 이게 웬 고생이야. 피자나 사 먹을걸!’
엄청 후회했다.
누가 등 떠밀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위해 만들기 시작했는데 고구마가 튀겨지는 내내 궁시렁거렸다.
‘에이, 묻지나 말걸. 삼복더위에 튀김이라니. 집에서 튀김 해주는 엄마가 몇이나 되겠어. 난 맘이 약해서 탈이야.’
얼굴에 맺힌 땀이 뒷목을 타고 내려가 등을 적실 즈음, 고구마튀김이 완성됐다.
“얘들아, 고구마 튀김 다 됐어. 얼른 먹자.”
“우와! 엄마 언제 떡볶이까지 했어. 진수성찬이네.”
소박한 음식을 마주한 아이들은 마치 12첩 수라상을 받은 표정이다.
“녀석들아, 엄마 얼굴 좀 봐라. 기름에 튀겨졌잖아.”
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날 향해 엄지척을 한다.
“울엄마 최고!”
난 참 단순하다. ‘엄마, 최고’라는 한마디에 부글거리는 열기가 가라앉는다. 아이들 먹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난 내 마음이 편하려고 고구마튀김을 했을지도 몰라. 좋은 엄마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모든 것이 어쩌면 나를 위한 건 아닐까?’
고구마를 튀기면서 나쁜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지만,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해준 최고의 고구마튀김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처서가 지나고 밤공기가 조금 시원해졌다. 잃었던 아이들의 입맛도 가을바람 따라 돌아올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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