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칼국수도 든든히 먹었으니, 남산에나 올라볼까...
나의 20대 후반은 참 빛나면서 바쁜 날들이었다.
스물둘, 나는 대학 1학년이 되었다. 남보다 늦게 시작한 탓에 졸업과 취업이 많이 늦어졌다. 일과 학업을 겸하면서 밤새 공부할 때도 많았고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내가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일과 공부에 빠져 살다 보니 연애 한 번 못 해 봤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대학원 다니던 시절 나와 맘이 통하는 몇몇 지음이 있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수업이 일찍 끝난 날이거나 주말이면 내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친구들과 어떤 날은 명동에 가서 칼국수를 먹고 어떤 날은 장충동 족발집으로 향했다. 언젠가는 학과 모임이 늦어져서 지하철이 끊겨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진 적도 있다.
우리는 약속했다. 졸업 후 흩어져 살더라도 10년 뒤 멋진 모습으로 만나자고.
시간이 흘러 직장동료이자 선임인 남편을 만났다.
이벤트 없는 연애를 하고, 평생 잊지 못할 프로포즈도 없이 결혼을 했다. 남편은 자그마한 체구에 유모 감각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내 이상형은 훤칠한 키에 나를 웃게 만드는 남자인데. 세상에는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그 친구들과 거리가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요즘 옛 생각이 많이 난다.
‘그 시절 그 친구들은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겠지.’
주말 아침, 남편을 위한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집안에 은은히 퍼지는 커피 향도 아침 햇살도 맘에 들었다. 기분 탓인지 나도 모르게 추억팔이를 했다. 한참을 울고 웃으며 떠들어댔다.
무반응인 남편 앞에서 독백하는 내 꼴이라니. 순간 결혼 전에도 결혼 이후도 늘 쫓기며 산 것이 억울했다. 보고 싶은 사람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세월이 다 간 것 같다. 서글픔이 몰려왔다. 젊은 시절이, 그 당시의 친구들이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아침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안방에 들어갔던 남편이 청바지에 하늘색 후드티를 입고 나왔다. 젊게 차려입은 남편은 산책가자며 나를 재촉했다.
남편 손에 이끌려 서울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평소에 무뚝뚝하고 무표정인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남편은 누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날까 슬며시 속삭인다.
“지금부터라도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며 삽시다.”
계획에 없던 서울 나들이, 무뚝뚝한 남편의 따스한 한마디.
‘어제 내가 무슨 꿈을 꿨지’.
횡재한 기분이다.
지천명에 들어선 우리 부부는 마치 청춘처럼 손을 맞잡고 20대 친구들과 걸었던 명동거리를 활보했다.
우리 부부는 젊은 연인이 되어 다정하게 남산길에 오른다.
‘안녕! 23년 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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