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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인 Jun 02. 2024

우리만의 동거 방식


 누군가와 같이 살을 맞대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초월해야 비로소 평안해지는 매번 나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고 도를 닦는 길이다. 고난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는 것이 좋아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기숙사에서도 살아봤고 셰어하우스 생활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고 나는 자만했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함께 사는 것은 또 다른 관문이었다. 살다 보니 알게 되었는데 S는 개인주의 성향이 꽤나 짙은 사람이었다. 말을 상냥하게 잘하고 이해심이 많은 것과는 별개로 개인주의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S의 개인주의 사례를 하나 꼽자면 그것은 밥상머리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시간이었는데 그는 밥을 다 먹고 바로 일어나서 본인 그릇을 설거지를 하러 가는 것이었다. 내가 아직 밥을 먹고 있는대도! 서운하다 말하니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살았다고 하면서 뭐가 문제인지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선 저녁 시간에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오늘 있었던 일, 재밌었던 일, 짜증 났던 일, 시시콜콜 이야기하며 내가 밥을 다 먹었어도 마지막 사람이 식사를 끝낼 때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그런 환경이었는데, 같은 한국에 살면서 가족 문화가 이렇게나 다를 일이었나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다. S는 그 뒤에도 습관적으로 계속 먼저 일어났고 나는 이 식사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끊임없이 말했다. 많은 대화를 통해 지금의 S는 밥을 다 먹어도 내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 시간이 많이 길어지면 힘들어 하지만.


 약간의 이기주의자와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만나 초반에는 많은 크고 작은 다툼들이 있었다. 치약 짜는 방법, 다른 청소 기준과 방식, 한 침대에서 발생되는 모든 문제들(잠버릇, 코골이, 자면서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가, 이불 뺏고 빼앗기기, 적정 온습도 선호도 차이, 이불 취향 차이), 눈뜨고 잠들기까지의 서로의 생활 패턴, 식습관, 소비습관, 경제적 가치관 등 동거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문제까지 죄다 함께하는 일이었다.


 각자 다른 집에서 살다가 한 집으로 합쳐 들어오게 되어 서로 쓰던 생활 용품들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각자 취향에 맞는 세탁 세제로 빨래도 따로 하고 나는 건성용 S는 지성용 세안 용품과 치약을 제외한 샴푸, 컨디셔너, 바디워시까지 따로 사용하게 되었다. 방세와 공동으로 쓰는 식생활비만 갹출해서 모았고 경제권을 합치지는 않았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만의 ‘따로 또 같이’ 동거 방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살다 보니 이렇게 같이 살아도 따로 쓰고 따로 하는 게 합리적이고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같이 산다는 것은 따로 하는 것보단 같이 하는 게 더 많은 쪽이었다.


 가장 별일 아닌 치약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그냥 가운데를 푹 눌러쓰는 스타일인데 S는 아니었다. 그가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 놓으면 나는 가운데를 눌러 놨고 그는 다시 끝에서부터 밀어 짜야했다. 이 치약 전쟁은 매번 반복됐고 같이 산지 근 2년 정도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는 새 치약에 한해서만 나처럼 가운데를 눌러 짰고 치약을 절반쯤 썼을 땐 치약 디스팬서 같은 걸 이용해 끝에서부터 짜기로 우리는 합의를 봤다.


 나는 추위를 잘 타고 S는 더위를 잘 타는 편이다. 나는 건조한 것을 참지 못하고 그는 습한 것을 참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의 체온이 맞지 않는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같이 잘 때 한 사람 때문에 상대방의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주 큰 문제였다. 우리는 다음 날의 컨디션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봤다. 그 결과, 여름에는 더 힘들어하는 S를 배려해 에어컨 온도를 낮추고 내가 겨울 이불을 덮기로 했다. 겨울에는 온도 세기가 양쪽 따로 조정되는 전기장판을 사용하고 적정한 습도를 위해 가습기를 사용하는 쪽으로 맞춰갔다. 다름에서부터 오는 오해가 생겼을 때 우린 대화를 나눴다. 다른 게 틀린 게 아님을 인정하니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좋게 보면 나는 생활력 있는 여자였고 나쁘게 보면 짠순이였다. S는 YOLO 느낌의 저축하지 않고 쓸 때 쓰는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서로의 지갑이 열리는 상황은 정말 달랐다. 그는 불필요한 소비를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 “이건 비싸다. 이건 쓸데없다. 살 것만 사자.”, 장 볼 때 나는 말이 많아지곤 했다. 내가 하도 딴지를 거니 결국 그는 편하게 쇼핑을 하려고 나 몰래 혼자 장을 보러 갔고 몇 차례 집에 식재료가 채워지는 것을 알게 된 내게 딱 걸렸다. 공동 생활비는 내가 관리하고 있어 어떻게 샀냐 물으니 그냥 개인 돈을 썼다고 했다. 그는 그게 서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같이 먹는 건데 개인 돈을 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불공평하다 느껴졌고 한편으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랬을까 그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는 나의 소비 방식이 무조건 옳다 생각했고 어떻게든 손해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는 더 힘들어도 우리의 관계를 먼저 생각한 것이었다.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할수록 그는 오히려 더 이타적으로 희생해 내 잘못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린 장 볼 리스트를 미리 짜 놓고 추가적으로 그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자유롭게 사기로 룰을 정했다. 그 후로 손을 꼭 잡고 함께 장을 보러 가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들 중 하나가 됐다.


 어느 날엔 매일 나만 청소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기적인 탓에 나만 참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청소 좀 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는 왜 청소하는 것 가지고 생색을 내냐며 웃으며 말했고 자기도 청소를 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했다.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 화장실 줄 눈에 핀 곰팡이, 침대 프레임 위의 먼지, 나한텐 별로 거슬리지 않고 내 기준에 우선순위가 아닌 것들을 그는 굳이 말하지 않고 청소해 왔던 것이다. S는 ‘나도 힘들면 분명 상대도 힘든 부분이 있는 거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일일이 트집 잡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긴, 내가 참아왔던 것보단 내 성질 때문에 그가 더 참을게 많을 텐데. 내가 화를 내도, 나의 감정이 격해져도, 그는 일정한 톤을 유지하며 차분하게 말한다. 그의 태도에 나는 전투력을 상실한다. 이성적인 대화를 할 준비가 됐다. 청소에 관해 서로 더 신경 써 줬으면 좋을 것 같은 부분을 이야기한 뒤 다시 한번 나의 인내심과 이해심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고 반성한다. 대부분 다툼의 패턴은 이런 식이었다.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고 글로  나열할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행히도 S 덕분인지 아님  덕분인지 문제들이 삼진 아웃까지 가지 않아 우리는 계속 같이 살게 되었다. 한국에서 같이 살면서도 종종 계속 다른 부분들이 새삼스럽게 발견되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맞춰 나갔다. 2 차쯤 안정기에 접어드니 신기하게도  이상 싸울 일이 별로 없게 되었다. 동거를 하면서 그를 아는 것만큼 나를  많이 알게 되었다. 나의 방어기제는 무엇인지, 내가 어떤 부분에 화가 나는지, 어떤 식으로 화를 내는지, 내 말투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그가 좋은 사람인만큼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노력했다. 그가 나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방식 그대로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동거는 정말로 나를 많이 성장시켰다.


 자주, 아니 가끔, 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예민해져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두더지처럼 구멍을 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또 아무도 나의 존재를 못 느끼게끔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S와 함께 산다고 해도 종종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아무도에 그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동굴 속에 들어가도 무작정 나오라고 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있을 거냐고 묻지 않는다. 내가 똑똑 손 내밀면 조건 없이 덥석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다. 세상은 살기 괜찮다며 내가 다시 나올 수 있게 다시 한번 힘을 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편히 누울 수 있는 들판과도 같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나무와도 같은, 나에겐 그런 의미다.


 S와도 1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S 옆에 있어도, 없어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길 원하고 강하고 단단하게  사람의 몫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라고 그는 말해줬다. 그에게 1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만나 진정한 하나가 되는  ‘1’  같다고, 나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했다. 그 생각도 뭐 나쁘지 않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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