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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인 May 26. 2024

결혼과 비혼 사이


 우리는 일하면서도 보고 쉬는 날에도 보고 사귀고 나서부터는 거의 내내 계속 만났다. 대부분 일 끝나고 저녁에 데이트를 했는데 나는 도시 중심부에 살았고 S는 외곽에 살아서 매번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비만 $70가 넘게 나왔다. 시간적, 경제적 이유로 그는 나를 더 자주 보기 위해 시내로 이사를 했다.


 그 당시 나는 거실 셰어라는 것을 했는데, 이는 일종의 셰어하우스로 방들 뿐만 아니라 거실까지도 공간을 분리해 거실 공간 한 부분을 빌려 사는 것이었다. 내가 살았던 거실은 옷장, 커튼, 파티션 등을 이용해 하나의 거실을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해 놓은, 천장이 뚫려 있는, 방이라고도 불릴 수 없는 그런 형태의 공간이었다. 내 옆 방도 아닌 내 옆 공간에는 다른 어떤 남자가 살고 있었다. 거실 불은 밤낮 할 거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켜졌으며 온갖 음식 냄새가 주방을 타고 거실로 풍겨 들어왔다. 옷은 무조건 화장실에서 문을 잠근 채로 갈아입어야 했으며 새벽이 되면 옆에서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 때문에 자주 잠을 설치게 됐다. S는 처음에 내가 그런 곳에서 지낸다는 것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어차피 잠만 자는 곳이기도 했고 젊어서 하는 고생은 괜찮다고 생각해 나는 그곳에 지내기를 고집했다. 다 따져보고 고르고 골라 시세 중 가장 저렴하게 구한 그곳은 살기에 좋지도 않았지만 썩 나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거실에 사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으나 돈을 모으기 위해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난 불평하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주에 $130짜리 공간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갖갖의 이유로 잠을 설친 날이었다. S는 두고만 볼 수 없었는지 자기 방에 들어와 같이 살지 않겠느냐 물었다. 그도 이사를 와서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었지만 그의 방은 주 $300에 화장실이 딸린 마스터룸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동거 제안을 받았을 땐 당황했었는데 호주에선 아니었다. 많은 다른 나라에선 동거가 오히려 일반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호주에서도 실제 주변의 많은 커플들이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같이 살자고 물어보는 게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동거는 커플들의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주거 형태였다. 둘이 $300달러짜리 한 방을 같이 쓰면 인당 $150이었고 내 기준으로 $20만 더 내면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으니 아주 합리적인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로맨틱하기보단 현실적인 이유로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다. 같이 살다 보면 서로 안 맞을 수 있으니 만약 싸우게 되면 삼진 아웃제(?)로 3번 참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다른 방을 구해 나간다는 합의 하에 나는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우리들의 문제는 대부분 투 아웃에서 끝났고 그 후로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우리는 계속 함께 살게 되었다.


 유교 국가 한국에서는 동거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 들리고 동거를 하는 혹은 했던 사람에겐 문란하다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곤 한다. 요새는 사회가 많이 변했다해서 동거를 나쁘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한들 대부분 혼인 전 동거에 한해서만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결혼하기 전에 살아봐야 된다고 혼전 동거를 많이 하는 추세인데 왜 꼭 혼인 전이라는 조건이 들어가야만 하는 걸까? 결혼하지 않고 그냥 같이 살기만 하는 것은?


 동거를 하다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망하는 것이고 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결혼이 곧 해피앤딩으로 귀결된다. 우리 커플에게 묻는 단골 질문 역시 “결혼은 언제 할 거야?”이다. 결혼을 시켜야 속이 후련한가 보다. 장기 연애를 하다가 헤어진 커플을 보는 시선. 결혼으로 골인되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비혼주의자가 연애를 할 때의 시선. 어차피 결혼도 안 할 건데 연애를 왜 해? 그 시선들은 맹목적이고 일차원적이다. 사랑의 결실은 결혼, 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결혼을 해서도 이혼하는 사람들은 쌔고 쌨다. 더 웃긴 것은 이혼해 돌아온 싱글들에게도 재혼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혼이란 제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진심 어린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18세기 산업혁명 전 영국에서는 귀족과 귀족 간의 계약 결혼이 일반적이었고 결혼을 한 뒤에 연애를 따로 했다고 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서서야 낭만적인 사랑을 전제한 결혼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 21세기 몇몇 유럽 국가의 많은 커플들은 결혼 없이 애를 낳고 살기도 한다. 서로의 관계를 인정해 주고 보호하는 법과 제도들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연애와 결혼의 형태는 점점 변하는 게 아닐까.


 결혼해서 사랑하며 잘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가 더욱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어장 안의 물고기처럼 그저 관계만 지속하는 결혼이 아닌 동거는 팽팽한 실처럼 기분 좋은 긴장감을 언제나 유지시킨다. 그래서 무작정 상대를 소유하려 들지 않고 서로에게 나태해지지 않게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같이 살기만 한다는 것은 결론이 없는 애매한 중간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끝이 나지 않은 열린 결말의 상태로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그려나가고 싶은 대로 그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해피앤딩으로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 열심히 사랑한다. 그가 내 옆에 있다는 것 자체로 나는 안정감, 유대감, 충만함을 느낀다.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사는 거라면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결혼과 비혼 사이. 동거. 난 이 상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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