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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인 May 12. 2024

비혼, 내가 했던 다짐들


 현생에서 1인분의 몫을 하는 것은 때때로 벅찼다. 대학 졸업 후 끊임없는 진로에 대한 고민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내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다. 누가 이런 어른이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느냐만은. 나의 20대 초중반은 찬란했고 빛났지만 그만큼 불안했다. 매번 결정의 기로에 놓여졌으며 단 한 번의 삐끗한 선택으로 인생이 잘못될까 압박감이 찾아왔다. 마치 끝없는 긴 작두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나는 ‘나’로 태어났으나, 태어남과 동시에 나에겐 딸이라는 역할이 주어졌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 노력했지만 부모의 기대가 아주 조금은 버거웠다. 연애를 할 땐 여자친구라는 다른 역할이 생겼다. 그 역할은 나름 나쁘지 않았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또 어떤 역할이 주어질까?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아마 엄마가 될 것이다. 며느리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하니 그게 가장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전 남자친구네 집(지금이라면 가볍게 절대 가지 않을)에 놀러 갔던 일이 떠올랐다. 그곳엔 그의 부모님이 계셨고 우린 함께 식사를 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더 밝게 더 싹싹한 척을 했다. 그렇게 처음 간 남의 집에서 사과를 깎았다. 그리고 설거지도 도왔다. 집에선 과일 깎기는커녕 밥 먹고 바로 소파에 눕는 게 일상인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어 곧 체할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가면을 쓰고 있던 것이었다. 결혼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집안과 집안의 맺음이라는데, 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며느리라는 역할은 가장 자신 없고 힘든 역할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해내야 하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1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온전히 오로지 1인의 몫을 하는 것. 누가 내 곁에 있든 없든 크게 영향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굳건하게 혼자서 나를 지켜내는 것. 나는 오롯이 ‘나’로서 살고 싶어졌다. 단단한 내가 되자 다짐했다. 그렇게 결혼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자리 잡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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