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인 May 05. 2024

비혼, 내가 했던 최선의 선택


비혼: 아닐 비에 혼인할 혼. 비혼의 사전 뜻: 결혼하지 않음. 또는 그런 사람.


 대학시절 한 대학원생 언니를 알게 되었다. 그 언니는 내가 만난 최초의 비혼주의자였다. 당시에는 ‘비혼’이라는 단어가 생소했고 그런 개념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였다.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던 내게 비혼주의는 낯설었다.


 언니는 결혼은 여자에게 무조건 손해라는 듯이 말했다. 요즘 시대에 결혼을 하면 남자도 여자도 같이 일하고 돈을 벌지만, 대부분 살림도 아이를 낳는 것도 여자만 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여자의 인생은 끝이라고 했다. ‘결혼 생활이 그렇다고?’ 어리둥절했다. 결혼은 막연히 행복으로만 가득 찰 줄 알았다. 결혼을 하는 것만 생각했지, 결혼 후의 삶에 대해선 무지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언니가 말했던 그 여자로서의 끝인 인생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언니의 말은 서글프게도 진짜 현실이었다.


 엄마는 일찍 결혼해 23살의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다. 그래서인지 최대한 늦게 인생을  즐긴 다음에 결혼하라고 내게 꾸준하게도 말씀하셨다. 어쩔  그냥 결혼하지 말고 하고 싶은  다하고 살라고도 하셨다. 물론 그땐 흘려들었다. 가끔 TV 혼자 사는 커리어우먼이 나오면 “우리 딸도 저렇게 멋있게 그냥 혼자 살아!”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엄마의 눈은 어딘가 부러움과 씁쓸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말은 마치 내가 아닌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없었다’고 했다. 엄마의 삶은 나를 낳고 뒤이어 동생을 낳고 우리를 먹이고 기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한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인생을 살았다기보다 대부분의 시간을 주로 엄마로서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나에게 결혼을 늦게 하라고 하신 걸까.


 나는 우리 엄마처럼 자식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마냥 긍정적일 수 없었다. 철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미래의 자식을 상상해 볼 때 그때의 내 기준은 좀 많이 엄격했다. 낳고 싶은 대로 낳을 수도 없는 건데 아마 내가 바랐던 건 유니콘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자녀를 두신 독자께는 이 말이 참 우스울 수도 있겠다. 우선 첫 번째, 남동생같이 무심한 아들은 탈락이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부모님께 무심한 남동생을 보며 진절머리를 쳤기 때문에 이런 아들을 낳는 다면 항상 서운한 마음채로 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두 번째, 매사 열정적이지 않고 태평한 전 남자친구 같은 사람도 싫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결혼 전에 자기 애인을 아들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결혼을 결정하라고. 사귀기도 벅찬데 그런 아들은 힘들 것 같았다. 이런 자식이 태어나면이란 상상만 해도 스트레스였다.


 통제광인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성별도 성격도 그 무엇도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생명체를 낳고 기른다는 게 점점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자식을 답답해하며 사랑해주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혼에 대한 자신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비혼이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이전 03화 결혼, 관계의 종착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