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인 Apr 21. 2024

결혼, 언제부터 하고 싶었던 걸까?


결혼. 맺을 결에 혼인할 혼. 결혼의 사전 뜻: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일 거라고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터 결혼이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막연하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결혼은  치의 의심도 없는 당연한 나의 미래였다.


 신랑은 누가 될지 종종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1월 20일이었던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꿈에서 미래의 남편을 볼 수 있다고 한 날이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날 밤 흐릿한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아침엔 꿈속의 희미한 얼굴을 애써 찾아보려고 하루종일 꿈을 곱씹어보았다. 몇 해 동안 그날이 오면 꿈을 꾸지 못했는데 딱 한번 꿈을 꾸게 되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 내가 도와주니 씩 미소를 지어주던 어떤 남자. 최대한 그 얼굴을 기억해 내기 위해 꿈속의 기억을 더듬었고 연예인 김재원이 떠올랐다. 그처럼 얼굴이 하얗고 미소가 예쁜 사람이 내 남편이 될 거라 믿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어이없는 이야기이다.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명절에 할머니는 나보고 “키만 멀대 같이 커가지고 머시매 같이 뛰어다니는데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 그래!”라고 애정 어리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잔소리를 해댔다. 그럴 때면 나는 “시집 안 갈 건데”라고 선수를 쳤다. “못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안 갈 거야!” 그렇게 한 소리를 쳐놓고도 할머니의 말이 내심 신경 쓰였는지 뛰어다니는 걸 멈추고 엄마 옆에 앉아 최대한 조신한 척 전 붙이는 걸 도왔다. 그 꼬맹이도 결혼은 하고 싶었나 보다.


 여고 재학 시절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수업 도중 대뜸 한 여선생님은 “너네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소용없어. 공부를 못해도 얼굴만 예쁘면 시집 잘 가서 성공할 거니까”라고 진리인양 말했다. 한편으론 씁쓸한 표정으로. 난 이쁜 얼굴로 성공할 위인은 아니라고 직감했다. 갑자기 억울해졌다. 왜 갑자기 그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그 말은 뇌리에 박혀 낡고 썩어빠진 생각에 사로잡히게 했다. ‘과연 나는 공부로 성공할까? 시집을 잘 가서 성공할까?’ 그 당시 취집이란 단어는 없었지만 시집을 잘 가서 성공한다는 말 자체가 너무 충격이었고 거부감이 들었다. 그때도 성공지향적 사회에 살고 있었기에 난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었다. 그 여선생님이 한 말은 반발심을 불러일으켜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왔다.


 결혼에 대한 마지막 일화는 쓰기 참 부끄럽지만 그래도 적어본다. 그건 바로 내가 인터넷 소설 주인공 이름들을 보며 미래의 아이들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무려 세 아이를 낳아 ‘오늘’, ‘하루’, ‘맑음’으로 이름을 짓겠노라 정했으며 어떤 성이 이 이름들과 잘 어울릴지 고민했다. 17세의 나는 참 패기가 넘쳐흘렀다.


 그렇게 결혼에 대한 당연한 생각을 가지고 나는 성인이 되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