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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인 Jun 09. 2024

더 이상 같이 살지 않는 우리


 4년간의 동거 생활 끝에 우리는 따로 살게 됐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가장 주된 이유는 내가 제주에서 1년 살이를 해보고 싶어 이직과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S는 내 결정을 지지해 주었고 함께 제주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같이 가는 것은 같이 가는 것이고 나는 함께 가도 따로 살아볼 것을 제안했다. 처음에 그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며 같이 살기를 원했지만 막연히 혼자 살아보고 싶은 도전 욕구가 생겼다. 그와 살면서 함께 맞춰간 것도 많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대로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점차 확립시켰고 오롯이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해 자족한 삶을 실현해보고 싶어서였다. 동거에서 별거로 우리 관계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맞이했다.


 결국 우리는 제주에 와서 따로 살게 되었고 S는 1년을 채우고 다시 육지로 돌아갔다. 나는 현재 3년 차 홀로 제주살이 중이다. 눈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것은 다행히도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같이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더 커지는 것도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애틋해지는 마음은 정말 한 순간이었다. 같이 살지 않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그와 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조금이라도 불편했던 점들이 이젠 없어지겠구나 기대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없으니 불편한 점이 더 많이 생겼다.


 한창 미니멀리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비움의 과도기에 있었다. 어떻게든 좀 더 비우기 위해 무리하게 애를 썼던 것 같다. 매일 집에 오는 그의 택배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 극복해야 할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따로 살고 보니 같이 살았을 때 느꼈던 행복감이 중요했지 그런 것 따위는 정말 별 게 아니었구나 느끼게 되었다. 문제라고 문제 삼으니 문제였던 것이다. 그가 나를 존중해 주는 만큼 나도 그의 소유와 소비 방식을 인정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동거를 하면서 많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란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움이 필요하겠구나 깨우쳤다.


 그에 대한 미안함뿐만 아니라 소중함도 깨닫게 되었다. 내향인으로서 혼자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한집에 있을 때에도 가끔 그가 말을 걸어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초반의 S는 무척 머쓱해했지만 점차 나의 충전 시간을 알아서 알아채고 나를 가만히 놔뒀다. 코비드 팬데믹 동안 재택근무를 하며 근 보름동안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나는 정말 내가 외부 세계랑 단절하고도 잘 살 수 있는 고독을 즐기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혼자 살아보니 아무런 사회적 교류 없인 힘들어한다는 것을, 나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겹게도 봐왔던 얼굴이 보고 싶어져 퍽 서글퍼졌다. 내가 온전한 집순이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함께 집에서 보냈던 의미 없다면 의미 없고 그냥 흘러 지나갔던 모든 시간들이 나의 최소한의 사회 활동을 채워줬기 때문이었다. 그의 온기가 그다지도 따뜻하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연애 기간 중 반 이상의 시간을 함께 살면서 보내서 그런지 오히려 별거 경험은 참 새로웠고 우리를 더 돈독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내가 정의하는 우리의 관계는 가볍기보단 진지하고 책임감이 없다기 보단 자유로운 관계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가고 싶은 곳이 있을  우린 언제나 같이 살수도, 같이 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제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길 꿈꾼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연애 형태는 30 거리의 다른 도시에서의 단거리 연애가  수도 있고 14시간 비행 끝에 만날  있는  해외에서의 장거리 연애가  수도 있다. 그러다 어느 해는 그냥 혼자 살고 싶어져 같은 동네에서 따로  수도 있겠지. 그렇게 지내다가 같이   있는 환경이 되면  그땐 같이 사는 거다. 선택할 자유가 있고 결정을 존중해   있는 서로가 되길 바란다. 유연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그런 관계 속에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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