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지순례의 루트는 무지성이다. 지금 있는 나라에서 제일 가깝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발길 닿는 데로 그냥 가고 있다. 지도를 펼쳐 보니 터키와 가까운 나라는 그리스로 보였다. 나는 야간 버스를 타고 그리스에 도착했다.
지중해식 음식이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음식들은 대체적으로 건강하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올리브유를 넣고 원재료를 최대한 살려 요리한 느낌. 그리스 가정식을 먹어보면 그래서인지 금방 배고파지곤 한다.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그릭 요거트가 아닐까?! 카페나 슈퍼마켓을 가면 많은 종류의 요거트들을 볼 수 있다. 좋은 그릭 요거트의 기준은 꾸덕함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현지에서 먹는 그릭요거트는 우리가 아는 꾸덕한 질감이 아니었다. 왜 그런 기준이 생긴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너무 맛있고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매일 그릭요거트를 먹었다.
그리스 빵을 생각하면 피타만 떠올랐는데 은근히 페이스트리 파이류가 많았다. 페타치즈나 시금치를 넣어 짜게 먹기도 하고 커스터드 크림을 넣고 달달하게 먹기도 한다. 짠 파이들은 가벼운 아침 식사로 많이 하고 부갓사 같은 단 파이들은 디저트로 먹는 듯해 보였다.
루쿠마데스라고 불리는 그리스식 도넛이다. 미국식 도넛과 한국식 찹쌀도넛의 중간 느낌. 그리 달지도 않고 계핏가루가 뿌려져 향이 좋았다. 따뜻한 루쿠마데스를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륵 녹는다. 이것이 바로 천국?
국경이 맞닿아있어 그런지 그리스의 식문화는 터키와 이탈리아의 것들과 겹쳐있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빵을 터키에서는 시미트, 그리스에서는 쿨루리라고 부르고, 심지어 차치키, 아이란, 바클라바는 부르는 이름도 같다. 들어가는 재료와 제형의 묽기는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거의 일치하는 맛이었다.
터키의 케밥과 비슷한 음식엔 그리스의 기로스가 있다. 케밥과 비교해 본다면 두툼한 피타 브레드에 사워크림이 뿌려져 있고 야채가 많아 좀 더 건강한 느낌이다. 유명한 기로스 맛집들도 많지만 사실 기로스는 어딜 가나 다 맛있는 편이다. 가장 저렴한 가격은 2.5유로인 것까지 봤다. 유럽에서 2.5유로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그리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이탈리아의 라자냐와 비슷한 요리들도 있다. 무사카는 튀긴 가지, 양고기, 감자를 층층이 쌓고 베샤멜을 얹어 구운 요리인데 채소가 많아 좀 더 건강한 느낌이었다. 파스티치오라는 음식은 라자냐 대신 마카로니를 넣어 만든 요리이다.
유명 관광지를 제외한 그리스 거리의 첫인상은 히피스럽다였다. 많은 곳들이 조금은 삭막해 보였지만 찾아다닐수록 예쁜 곳이 많았다. 늦게까지 여는 식당들이 꽤 있었고 버스들도 새벽 2시까지 운행 중이었다. 유럽은 밤 8시면 다 문 닫는다는 또 하나의 우스운 편견이 깨졌다. 이 번 그리스 여행에선 빵보다 음식을 더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내게 그리스 음식이 아주 잘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도 가벼워지고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한 기분. 여담이지만 한국에 가서도 지중해식 식단을 자주 먹기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