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기, 스물넷 (2021)
스물셋의 끝자락의 나는 공방을 오가며 지금의 스승님 옆에서 도예 훈련을 받고 있었다. 계속해서 기술은 배우고 있지만 나의 실력을 어딘가에 검증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들이 불쑬불쑥 자주 찾아오곤 했었다. 비 전공자로서 예술작업을 이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에게 인정받고 검증받기 위해서 이 길을 선택한 건 아니었지만.. 잘하고 있다는 애매모호한 다짐 보다도 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결과물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국가 자격증이었다.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혼자 물음표와 느낌표를 정신없이 쏘아대며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때, 동시에 우연한 기회로 평창의 한 식물원에 취직하게 되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직장 생활과 먼 타지에서의 삶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그리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월급을 받는 생활과 그로 인한 경제적인 독립은 내 마음을 움직이기엔 충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제껏 루틴을 중요시하며 지내왔기에 반복적인 직장인의 삶은 꽤 자신이 있었다. 직장생활도 해보려면 조금이라도 어릴 때 경험해 보자는 생각도 했다.
평창군 진부면, 야외 자생 식물원은 20년이 넘도록 유지되어 왔다고 했다. 바깥과 안을 이어주는 유리온실, 가지런히 모아둔 다육식물들. 실내로 들어오면 널찍한 카페와 수천 권의 책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지막으로 아담한 소품샵과 함께 도예 창작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이 나의 일터였다. 마침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딱 맞았던 근무환경이 만족스러웠다.
2021년 1월, 스물넷이 되었고 낯선 지역에서의 새 출발을 시작했다. 3월부터는 2년 내내 붙잡고 있었던 도예기능사 재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과 시험준비를 병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보다 합격에 대한 바람이 훨씬 커 있었다. 붙을 수만 있다면 하루도 쉬지 못하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주 6일 근무를 하며 쉬는 날 하루를 연습에 매진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원주까지 한 시간을 달려 또 한 번의 버스를 타야지만 자격증반이 있는 도예 작업실에 갈 수 있었다. 7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휴일 없이 일상을 살아갔다. 한 번 갈 때마다 기본 6-7시간 연습을 했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항상 축 처지기 일쑤였다. 틈이 날 때마다 당을 채우기 바빴다. 손에는 초콜릿과 캐러멜이 항상 들려 있었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줄 이어폰과는 매번 한 몸이었다.
그때의 시간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떤 날은 이상할 만큼 에너지가 솟구치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너무 힘이 들어서 버스 창가에 기대 운 적도 있었다. 남에게 힘들다고 말하기도 싫었고 누군가 나를 걱정하는 건 더 마음이 불편했던 시간들.
혼자 조금 울고 일어나 동네 편의점에서 맛있는 야식을 잔뜩 고르며 또 금방 행복해지기를 반복했던 시간들.
연습을 하고 돌아가던 밤, 작은 동네에 몇 없는 가로등 불에 의지해 검정 봉지를 신나게 흔들며 부르던 노래들이 있었다.
넌 모르지
아직 못 다 핀
널 위해 쓰여진
오래된 사랑시
헤매도 좋으니
웃음 짓게 되길
_아이유. celebrity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여전히 그 노래를 들으면 나는 그날 밤이 떠오른다. 그대로 계속해서 가면 다 이루어질 것만 같았던 밤이었다.